우주의 언어, 24개월
“와, 애기가 엄마랑 붕어빵이네요!”
처음에는 인사치레라고 생각했는데 아이폰이 나의 어린 시절 사진과 우주를 같은 사람으로 분류하는 걸 보고 알았다. 좀 닮긴 닮았나 본데..?
우주를 처음 만났을 때, 그러니까 부모 중 누굴 닮았는지는 세상 희미하고 심지어 다른 신생아들과 구분하지 못할까봐 내심 조마조마하던 핏덩이 시절에는, 남편과 ‘발가락이 닮았다.’ 수준으로 서로 닮았다고 응원해(?)주곤 했다. 예를 들어 감은 눈이 긴 건 나를 닮고, 볼이 힘이 있이 통통한 건 너를 닮았네 정도였달까. 시간이 지나면서 작은 아이의 얼굴에 우주라는 아이덴티티가 확연해졌다.
내가 애를 가져도 되나 고민할 때마다 남편은 늘 말했다. “너랑 나를 닮은 쪼꼬만 애가 눈앞에 있다고 생각해 봐! 너무 귀엽지 않을까?” 별 말은 아니지만 맨날 들으니 이 말에 힘이 생겼나 보다. (돌이켜보니 그렇게 첫째를 갖는 것에 동의하게 된 나도 좀 허술한 사람이긴 하다.) 그 말로 영업 당해서인지 우주는 굳이 따지면 나를 더 닮았다. 첫째 딸은 아빠 붕어빵이라는데 그 흔한 공식이 무색하게 내가 짙게 배어있다.
대게는 사랑하는 아이가 자신을 닮으면 기분이 좋다. 내 눈에는 천사 같은 아이니까. 그런 아이를 내가 닮다니! 엄밀히 말하면 아이가 나를 닮아서가 아니라 내가 아이를 닮아서 행복한 거랄까. 그런데 나를 닮아서 멘붕일 때도 있다. 바로 굳이 닮지 않아도 됐을 내 모습이 우주에게 보일 때다.
아홉 시쯤 재우기 위해 누워있으면 우주는 장난기 있는 말투로 다시 앉으며 말한다. “엄마 잠이 하나도 안 와!” 새벽까지 잠을 못 잘 때면 사랑은 거둬지고 지친 내 모습만 뚜렷해진다. 나 혼자만의 시간이 중요한 사람이라 그런지 이 시간은 평정심을 유지하기 힘들다.
하지만 이내 나는 우주에게 화낼 자격이 없음을 깨닫는다. 밤에는 왜 모든 게 재밌는지 나도 이것저것 하다가 동틀 때 잔 적도 많았으니까… 규칙적인 생활이 건강하고 사회에 녹아드는 데에 필요하다는 것은 귀에 박히게 들었으나, 어쨌는 밤의 고요한 취미생활은 재미지니까.
어느 날은 또 내 쪽으로 엉덩이를 조심조심 들이밀더니 “덩 걸거줘(등 긁어줘!)”하는 통에 나와 남편이 빵 터졌다. 그 모습을 본 남편이 “이거 완전 너 아니야..? 이제 내 마음을 알겠어?ㅎㅎ“하는데 억울한데 억울하지 못해 웃음이 났다. 같이 사는 룸메이트이자 제일 친한 친구, 연인, 남편이면 등 좀 긁어줘도 되지 않나! 했었는데 막상 딸아이의 등을 긁다 보니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닌 거다. 우주의 작은 등을 긁으면서 그동안 나는 얼마나 많은 이를 귀찮게 했었나 생각하다 보면 우주는 잠이 들어있다.
한 사람을 키워내는 일이 절대 쉬운 일일 수 없다는 것은 알았다. 하지만 내면 한 구석에 처박아둔 나의 별로인 모습 중 일부를 손수 찾아 수면 위로 꺼내어 올리는 씁쓸한 과정이 이리 자주 반복되는 일일 줄이야 몰랐다.
그렇기에 육아로 인해 나의 한계에 다 달았을 때에도 그 누구도 탓할 수 없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나의 선택으로 생긴 나를 너무나도 닮은 생명체, 애초에 탓해봤자 나 아니면 남편 정도겠지. 도인처럼 그저 묵묵히 감당하며 간다는 게, 나는 아직도 적응이 안 되고 어렵다.
그런 어려움에도 나는 시간을 되돌린다 하더라도 우주의 엄마가 될 거다. 이런저런 크고 작은 고난(?)을 이길 정도로 우주는 사랑스러우니까. 결국 귀여움이 모든 걸 이긴다. 그렇다, 우리 집 꼬마는 늦게 자서 내 자유시간을 뺏고, 귀찮게 등이나 긁어달라고 한다. 하지만 잠을 재우려는 나에게 이불을 덮어주며 “자장자장 우리 아가~ 자잘 잔다 우리 아가~”하며 자장가도 불러준다. 그러니 나중에 우주가 컸을 때, “너 키우느라 진짜 고생했지.”보다는 “너 덕분에 많이 웃었지.”라고 말해줘야지 싶은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