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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참 Mar 16. 2023

“일어나 아침이야!” : 거짓말의 탄생

우주의 언어, 25개월

        

매일 밤은 재우려는 자와 더 놀려는 자의 각축전이다. 조금이라도 개인 시간을 확보하려는 엄빠와 조금이라도 더 놀고 싶은 우주의 욕망 전쟁이랄까. 우주를 더 빨리 잠에 들게 하기 위해선 엄마와 아빠 모두 기절한 척해야 한다. 우주가 우릴 흔들든 말을 걸든 눈을 감고 자는 척을 하며 버텨내야 한다. 지나친 메쏘드 연기로 우리도 잠들 때가 있다는 부작용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질문에 답해주거나 조금 더 놀아주려고 하면 그날의 육퇴는 늦어지기만 할 뿐이다.


사실 육아를 하는 하루 중 내게 가장 간절한 시간이 바로 아이의 밤잠 시간이다. 어린이집을 다니지 않는 아이여서 하루 종일 우주와 함께 붙어있어야 하는 운명을 지녀선지 1-2시간의 자유가 더 절실하달까. 그런데 이런 나의 조급함은 25개월 아기의 눈에도 선명한지 아주 쉽게 들킨다. 자신이 2순위로 밀려났다는 배신감과 다른 시간에는 볼 수 없는 엄마의 무심함에 대한 실망 때문인지, 우주는 더더욱 내 삶에 자신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하는 듯 가열차게 잠을 거부한다.












말로 표현하는 단어나 문장의 범위가 좁았을 땐 사실 많이 맞았다. "엄마, 아빠 나랑 놀아줘! 나 안 졸리단 말이야!"를 말하고 싶은데 설명할 수 없으니 알밤만 한 주먹이나 작은달 같은 손톱이 먼저 나가는 거다.(눈물이..) 해봤자 조그만 아기가 때리는 게 얼마나 아프겠어, 하실지 모르겠으나 눈물은 핑 돌고 아침에 일어나면 나도 모르는 상처가 생겨있을 때가 많았다. 가끔 이건 가정 폭력이 아닐까 싶었을 정도니까.


우주가 언어적 표현이 늘었을 무렾에는 또 다른 고충이 생겼다. 뭔 하고 싶은 말이 그리 많은 지 자기 직전까지 신나 조잘조잘 쉬지 않고 이야기하고, 노래를 부르는 거다. 아빠에게는 그런 언어적 공격이 소용없었다. 하나에 집중하면 그것에만 몰두하는 남편은 '잠자는 척'이라는 목표에만 집중하는 편이다. 슬프게도 나는 다르다. 하루 종일 우주의 말에 대답해 주고, 질문하는 게 요즘 나의 가장 큰 일이기도 하기에, 참다가도 일종의 직업병처럼 "아~ 우주야 그랬구나~"하고 말이 나오곤 했다.












취업을 준비하며 지원하려는 회사를 추릴 때 사람들의 기준은 정말 다양하다. 이미 취직한 선배들은 회사의 성장성, 안정성, 규모 등을 보라고 조언해 주곤 했는데 나는 그 말이 잘 들리지 않았다. 내겐 다른 요소들이 더 중요했는데 이를 테면 복장에 자유가 있을 것, 집에서 가까울 것, 외국어를 사용하는 일일 것 같은 나름대로의 기준이 있었다.


그중 꽤나 중요한 요소가 바로 칼퇴가 가능할 것이었다. 그런 나이기에 딸도 감히 칼퇴를 막을 수 없다! 그래서 우주가 어떤 말을 걸어도 다른 생각을 하기로 했다. 이 날도 '우주 간식 뭐 만들지?', '오늘 봤던 책 어디까지 읽었더라?' 등의 다른 생각을 하며 철저하게 나만의 시공간으로 들어가고 있는데, 우주가 내 위로 올라와 나를 흔들며 소리치는 거다.


"엄마~~ 일어나 아침이야!"

말도 안 되는 우주의 귀여운 거짓말에 나와 남편 모두 무장해제되었다. 암막커튼으로 빛 하나 새어 들어오지 않는 밤에 아침이라니. 얼마나 더 놀고 싶었으면 그런 말을 했을까. 우주의 강력한 한 마디로 결국 칼퇴는 머나먼 일이 되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몇 분 더 우주와 대화를 나누다가 결국은 셋 모두 잠이 들었다.











내 인생 첫 거짓말은 기억나지 않지만, 기억하는 한 가장 오래된 거짓말은 있다. 이름하야 <빨간 별표> 사건. 초등학교 1학년 때였나 받아쓰기 시험을 했는데 너무 많이 틀려서 시험지에 빨간 비가 내렸다. 엄마한테 이 시험지를 줘야 한다니 아득해져 잔머리가 발동했다. 답은 맞게 고치고 빨간 비를 빨간 별로 만드는 거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영악하기 그지없다. 빨간 별표로 가득한 시험지를 보고 "동그라미는 뭐고 별표는 뭐야?"라고 엄마가 물어봤는데 무심하게 다른 곳을 보며 대답했다. "별표는 정답인데 글씨도 잘 써서 그래."


나를 신뢰했던 엄마는 처음에 그 말을 믿었지만, 거짓으로 이어 붙인 무늬만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사랑하는 사람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는 나의 작은 바람은 뻔하게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후에 엄마한테 어떻게 혼났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엄마가 이모한테 전화해서 빨간 별표 사건을 깔깔대며 이야기해 준 것은 기억난다. 그때는 다른 사람이 망한 나의 시험을 알게 되는 것이 수치스러웠는데 지금 생각하면 엄마는 그런 이상한 잔머리가 발동한 내가 귀여웠을 것이다. 내가 우주의 첫 거짓말에 빵 터진 것처럼.










어쩌면 거짓말은 처음에 사랑만 갖고 태어나는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사람과 조금이라도 더 함께이고 싶어서, 사랑하는 사람을 실망시키기 싫어서, 각자의 거짓말이 처음으로 세상에 모습을 나타낸다. '거짓말이 다 나쁜 건 아니야.'라는 말은 거짓말의 씨앗이 뭐였는 지 이미 꿰뚫어 보고 있던 사람들의 지혜였을까. 거짓말의 크기와 방향성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는 주변 사람들의 사랑으로 결정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아침에 나보다 일찍 일어난 우주가 나를 깨운다. 내 볼을 작은 두 손으로 만지며 "엄마 일어나써?" 하며 묻는데 아침잠이 많은 깰 생각이 없다. 거짓말은 아니지만 거짓 행동으로 자는 척을 한다. 근데 우주가 "엄마 우린 친구 자냐!!"라는 말로 나를 흔드는 통에 게으름을 털고 일어난다. 결국 거짓말은 더 큰 사랑으로 진화되기도 하는구나 하며 맞이하는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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