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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참 Sep 25. 2023

“뛸꺼야!”: 층간소음, 미운 네 살, 더 미운 나

우주의 언어, 34개월

우주가 오도도 달리기 시작한다. 작은 발이 내는 진동은 작지 않다. 낮 시간이야 주의를 주고 끝났겠지만 밤에는 그럴 수 없다. 목소리가 단호해지고 표정에 온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게 된다. 그런데 이 작은 청개구리는 내가 차가워진 모습에 당황해선지 아니면 정말 웃긴 건지 더 깔깔대며 장난꾸러기가 된다. 훈육은 공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진지한 내 모습이 먹히지 않자 순식간에 나는 무서운 엄마 모드가 된다. 우주가 혼나는 것에 익숙지 않은 것처럼 나도 혼내는 것에 익숙지 않다. 혼나는 과정, 혹은 싸움의 과정은 강렬해지고 그래서 더더욱 파편으로만 기억된다.


“집에서는 그렇게 쿵쿵 뛰면 안 돼. 특히 밤에는 모두가 자는 시간이야. 뛰면 안 돼.”라고 내가 가진 가장 차가운 눈과 목소리로 말한다. 우주는 질세라


“뛸거야!!!!!”라고 선포한다. 흡사 아따아따의 단비다.


내 인내심이 바닥을 치면 데시벨이 올라간다.

“너 정말 그럴 거야!?” 괜히 우주를 쏘아본다.


이런 일련의 과정이 반복되고 내 감정이 폭발할 것 같은 날이면 나는 다른 방으로 스스로를 격리시키고 우주를 아빠와 잠을 자게 한다. 그러면 우주가 오히려 진심 어린 사과를 한다. 한참의 시간 후 우주가 자고 나면 죄책감이 밀려온다. 조금 더 감정을 식히고 말할 걸 하며. 해봤자 만 세 살이 안된 아이에게 상처를 준 건 아닌가 마음을 쓰다 보면 새벽까지 잠을 자지 못한다.











나는 사실 엄격한 엄마와는 거리가 멀다. 세 돌이 되기 전 아이들에게는 한계를 지어주는 게 훈육이라 하던데. 우리 집에서는 한계라는 선이 다른 집보다 많지 않다. 먹는 것도 비교적 자유롭고, 노는 것도 자유롭다. 그런 우리 집에서 뚜렷하게 안 되는 것이 중 하나가 ‘저녁을 먹고 샤워 후의 시간은 뛰지 말 것’이다. 층간소음은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 뺄 수 없는 문제다. 둔한 편인 나는 결혼 전까지만 해도 이웃의 소리에 무감각했다. 소리에 예민한 편인 남편과 결혼하면서 누군가는 소리에 잠을 설치기도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피해를 입는 타인이 내 옆에 살고 있으니 내가 내는 소리를 조심하게 됐다. 물론 운이 좋게 우리 아랫집에 무던한 분들이 살고 계실 수도 있다. 그래서 아이가 사는 집이니 괜찮다고 해줄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면 더더욱 뛰게 둘 수는 없다. 나는 우주가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서 지켜야 하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이는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우주가 무지함으로 상처받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도 있다.








어떤 마음이든 표현되지 않고는 상대에게 닿기 더 어렵다. 마음은 입에서 나온 언어로 바뀌어야 생명력이 생기곤 한다. 그런데 그 표현이 얼어붙을 정도로 춥거나 가시를 지니고 있을 때, 언어는 타인과 나 사이의 골을 만든다. 함께 살을 비비고 사는 가족에게 상처를 줄 확률은 당연 더 높다. 가장 가까이 있어서 가장 잔혹할 수 있는 게 가족 아닌가. 서로에게 내뱉어진 말로 인해 안식처가 되어야 할 집에서도 불안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그렇기에 내 말이 우주에게 무기가 되지 않기를 기도한다. 그런데 이 미운 네 살이 위기로 찾아온 거다. 대화는 가능하지만 이성적 대화는 안 될 때가 있는 시기. 이전까지는 우주가 말썽을 부린다는 생각을 한 적이 별로 없었다. (아니, 기억을 못 하는 건가!) 내가 이성을 잃을 것 같은 기억은 최근에 시작되었다.


그럴 때마다 정말 못난 내 모습이 나온다. 처음에는 그 못남을 아이에게만은 감추고 싶었다. 하지만 자연스러운 감정의 흐름을  어찌 매번 숨길 수 있을까. 평범한 사람이라 무너지고 실수한다. 아이에게 내 예민함을 들키는 것이 싫지만 어쩌겠는가 예민한 것도 나의 한 부분인 것을. 요즘은 섣부른 긍정으로 예민을 덮지 않으려고 한다. 아이 앞이라고 매번 좋게 좋게 덮어버리면 예민은 이불속에서 더 커져만 간다. 그냥 내가 오늘 예민하다는 것을 가장 뚜렷하게 직시해야만 그제야 조금은 누그러지고 일부가 증발된다. 이제는 내 예민함을 참고 억누르며 우주에게 무리하여 천사가 되려고 하지 않는다. 대신에 말한다.


“엄마 우주가 자꾸 그러면 화가 날 것 같아.

사실 이미 화가 나고 있어.

근데 엄마는 정말 화 내기 싫어. “


엄마도 나약하단다. 미운 네 살아 좀 도와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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