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참참 Oct 14. 2023

“달이 숨네. 부끄러운가보다. ” : 뭉치면 살고

우주의 언어, 35개월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일을 하게 된다. 아이가 없을 때는 여유 없는 스케줄도 버틸만했다. 다행히 일이 끔찍하게 싫지는 않았어서. 그런데 우주와의 공존을 생각하다 보니 변수를 최대한 줄일 수 있는 선택을 찾게 된다. 우리 세 가족 모두가 가장 평온할 길. 아무튼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우주와의 공존이다. 이미 잘 아시겠지만 일을 시작하면 아이와의 완벽한 공존을 이룰 수는 없다. 나의 경우 재취업을 고민하며 마지막에는 두 가지 일을 고민했다. 하나는 하원을 시키지 못하는 일이었는데 대신 급할 때 쉬는 게 가능했다. 하나는 등하원이 넉넉히 되는 일이지만 연차라는 것이 없었다. 우주가 아플 때 같이 있어주지 못하느냐, 아니면 매일 보는 시간을 줄이느냐의 문제였다. 고민의 끝에 나는 후자를 선택했다. 일단 매일 아이와 긴 퀄리티 타임을 갖는 게 내 가치관에는 맞았다. 적응해 보니 긴박한 상황으로 부모님의 도움이 필요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전반적으로 균형을 찾은 것 같았다.


그런 와중에 가을이 온 것이다. 매년 가을은 내게 곧 충전이었는데 올해는 그럴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일이 두배로 늘어난 거다. 애써 이룬 균형은 쿠크다스처럼 쉽게 깨졌다. 어린이집 선생님이 물으셨다. “어머님, 요즘 많이 바쁘신가요?” 선생님이 보시기에도 내가 여유가 없었는가 했는데, 우주가 달라졌다고 하셨다. 친구들과 잘 놀지만 오후 시간이 되면 엄마를 찾는다고 하셨다. 생각해 보니 요즘 등원할 때도 우는 일이 있었다. 나름 씩씩하게 티 안 내고 일하고 있다 믿었는데 내 단짝인 우주에게는 딱 걸렸나 보다. 균형에 가장 큰 금이 생긴 건 우주의 참관수업이었다. 일을 뺄 수 없어 우리 딸의 첫 참관수업을 가지 못하게 된 거다. 남편도 일이 많은 시즌이었고, 이미 연차를 못쓰는 나 때문에 아픈 우주를 보기 위해 수차례 반차를 쓴 이력이 있었다. 그런데 운명의 장난으로 우주의 참관수업 일이 나의 생일이었다. 남편에게 얘기했다. “나는 다른 건 모르겠고, 우주 참관 수업에 오빠가 가주는 게 가장 큰 생일 선물일 것 같아.” 감사하게도 나는 이 생일 선물을 받았다.







속상하기만 한데 거기다 힘든 일은 한 번에 오는지 우주가 아픈 거다. 콧물이 줄줄 흐르는 우주를 데리고 병원 오픈런을 하는데 몸도 마음도 종이가 된 것 같았다. 그런데 병원을 가는 길에 우리 집 꼬마가 들뜨며 말하는 거다.


“엄마 오늘 하늘이 더 예뻐졌어!

달이 우주를 따라와.

근데 달이 숨네. 부끄러운가보다.“


우리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안고 살 때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아름다운 것을 볼 줄 아는 눈이다. 아름다운 것을 발견하는 것은 재능이지만 내가 힘들 때는 눈이 멀고 만다. 그래도 괜찮다. 내 옆에 그런 눈을 가진 사람이 있으면. 우주는 내게 그런 사람이다. 내가 삶의 아름다운 행간을 찾지 못할 때, 대신 툭툭 던져주는. 나무 뒤로 숨은 달 덕에, 그걸 소리로 표현해 준 우주 덕에 나는 가까스로 평온을 되찾았다.














남편도 바빠진 것이 우주는 마음에 들지 않나 보다. 원래는 남편과 같이 하원을 가는 날도 많았다. 그런데 요즘 도통 아빠는 하원 길에 보이지 않으니 우주도 심통이 단단히 난 거다. 아침에 어린이집을 가는데 우주가 의미심정하게 그리고 썩 기분 좋다는 듯이 말했다.


“엄마 오느른 아빠도 데리러 올거야!”


확신에 차보이는 우주를 보며 데려다주고 오는 길에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혹시 저 확신으로 우주가 상처받을까 봐. 내 말을 듣더니 남편이 당했다는 듯 웃는다. 어젯밤 우주가 남편을 붙잡고 반협박조로 이야기했다고 한다.


“아빠, 내일은 엄마랑 같이 우주 데리러 오꺼야.“


내가 그렇게 가급적 일찍 오라 해도 요지부동했던(당연한 일임을 알고 있다.) 남편은 딸의 한 마디에 일을 최대한 빨리 끝내겠다고 했다. 그날은 그렇게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하원했다. 아이가 진정 원하는 것은 무형적일 때가 많다. 그걸 이뤄주기 위해 엄마, 아빠는 뭉쳐서 노오력해본다. 사랑해 우주야!












이전 27화 “우주가 (우주를) 도와주께!“ :나를 도울 사람은 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