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가위손' 편
“저기, 제 앞머리 어디 갔나요?”
고등학교에 막 입학하던 시절이었다.
그땐, 앞머리가 눈을 살짝 덮을 만큼 기르는 게 유행이었다.
마치 우수에 찬,
내 두 눈을 온전히 다 보여주는 건
왠지 세련되지 못하다고 여겼던 시절이었다.
한 달에 한 번, 머리를 자르는 날.
늘 편하게 드나들던 미용실이지만,
그날만큼은 왠지 추리해 보이는 내 모습이 창피했다.
들어가기 전, 미용실 문 앞 벽거울에 비친 내 몰골을
어설프게 만지작거리며 마음을 다잡는다.
내가 사는 아파트 상가 2층에 있는 샛별미용실.
4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원장님이 환하게 날 맞아주었다.
편하게 앉으라지만, 사실 내 마음은 전혀 편치 않았다.
오늘은 꼭, 해야 할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앞머리요, 꼭 눈 살짝 보이게 잘라주세요.”
나는 단어 한 글자 한 글자에 온 힘을 담아 말했다.
원장님의 대답은 언제나 간결하다.
“그럼요, 예쁘게 잘라 드릴게요.”
머리결을 스치는 원장님의 손길은 언제나 따스했다.
그렇게 어느덧 꿈나라로 빠져들었다.
그리고 30분 뒤—
“내 앞머리가 실종되었다.”
거울 속에는, 눈썹 위로 싹둑 잘린 앞머리를 가진 내가 있었다.
울음을 참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아이.
“이번이 두 번째다.”
한 달 전, 실수로 내 앞머리를 과감하게 밀어버린 원장님.
미안한 표정에 그냥 참고 넘겼던 길고 긴 한 달.
이젠 해맑게 웃고 있는 원장님보다, 그 은빛 가위가 더 미웠다.
내일 학교에 가면 친구들은 뭐라 할까?
그냥 시원하게 잘라버렸다고 쿨하게 말할까?
내 마음은 조금도 쿨하지 않은데.
내 머리를 따스하게 쓰다듬는 햇살조차 알밉게 느껴지는 일요일 오후다.
유년시절 내 감성을 촉촉히 적셔주던 영화 <가위손>.
팀버튼 감독의 대표적인 판타지 로맨스 영화다,
외딴 성에서 혼자 살던 인조인간 에드워드가
가위손을 가진 채 마을사람들에게 발견되어 마을로 내려오게 되는 이야기.
그의 가위손은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지만, 동시에 오해와 갈등을 불러온다.
에드워드가 자신의 가위손으로 사람들의 머리를 다듬고,
정원을 아름답게 장식하는 장면은 이 영화의 백미다.
무엇보다, 그는 샛별 원장님처럼 앞머리를 자르는 실수를 하지 않았다.
“그냥 짧고 시원하게 잘라주세요.”
30대 이후, 나는 앞머리에 집착하지 않는다.
짧고 시원한 머리스타일이 최고다.
머리 감는 시간조차 아까운 일상 속에서, 모양까지 내는 건 사치다.
가끔 내 앞머리를 사정없이 자르던 그 원장님이 생각난다.
그 실수가 다른 손님들에게도 계속 이어졌다면,
아마 지금은 다른 일을 하고 계실 확률이 높다.
원장님은 가위질로 내 마음에 작은 상처를 남겼지만,
사실 눈에 보이지 않는 가위가 더 무서운 법.
날선 말로, 이기적인 행동으로,
우리는 이미 서로에게 날카로운 가위질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아 진짜 이게 뭐야 머리를 너무 짧게 쳐버렸어!”
미용실을 다녀온 아내가 머리카락을 만지며 투덜댄다.
그렇다. 아내도 어딘가에서 사고를 당한 모양이다.
이제는 이렇게 생각한다.
“헤어디자이너란 직업, 정말 힘든 직업이구나.”
전국의 헤어디자이너 분들,
특히 제 머리를 항상 시원하게 밀어주시는 프띠 원장님.
정말 존경합니다.
앞머리 그게 뭐 대수냐.
다시 기르면 그만인걸.
우리 그냥 맘 편하게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