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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패한테 돈 뜯긴 사연

영화 '좋은 친구들' 편

by 별의서랍


“돈 있는 거 다 내놔.”

소풍을 끝내고 나와 친구 셋이 걷던 중이었다.
누군가 내게 어깨동무를 하며 나지막이 말을 걸어왔다.
그 손짓이 어찌나 자연스러웠는지, 순간 아는 사람으로 착각할 뻔 했다.
이미 내 옆 친구 두 명도 처음 보는 누군가에게 포위당해 있었다.

몸이 돌처럼 굳었다.

“몇 학년이냐?”


투박한 그의 말에 내 입은 자동응답기다 되었다.

“초등학교 4학년이요.”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그는 피식 웃으며 우리 셋을 한적한 놀이터로 끌고 갔다. 그것도 친구처럼 자연스럽게.
몇몇 어른들이 지나갔지만, 우리와 그들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있는 듯 했다.
놀이터까지 가는 그들의 표정과 몸짓은 마치 오래된 친구 같았다.
아무도 우리가 처한 위기를 눈치 채지 못했다.

“얼마 있냐? 뒤져서 나오면 백 원에 한 대다.”

엄마가 소풍 끝나고 군것질 하라고 주신 천 원이 주머니에 있었다.
떡볶이와 어묵까지 사먹을 수 있는 큰돈이었지만, 그걸 먹는 기쁨보다 지금 이 자리를 탈출하는 게 나한테는 더 중요했다.

“전 이게 다에요.”

그 무서운 형은 꼬깃꼬깃한 지폐를 보더니 옅은 미소를 지었다.

“넌 가도 돼.”

죽다 살아난 기분이었다.
난 그 형에게 가벼운 목례를 하고 뒤도 안 돌아보고 집으로 내달렸다.
집 문을 열고 들어서자, 엄마의 포근한 표정과 살아있다는 안도감이 몸을 감쌌다.
그 순간, 친구 두 명이 머릿속을 스쳤다. 무서움 때문에, 그때는 친구 생각조차 나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교실 문을 열고 친구 두 명이 씩씩거리며 들어왔다.

“야! 어제 뭐냐? 너무한 거 아냐?”

나는 영문을 몰랐다.

“난 이거 밖에 없다고 해서 집에 온 건데..”

친구들의 말은 달랐다.

“넌 돈이 이거밖에 없고 우리가 더 많다고 했다며?”

절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난 오해라며 그 친구들에게 목소리를 높였다.
머릿속은 복잡했다. 친구들이 거짓말을 한 것 같지는 않은데 어디서 잘못된 건지 감이 오질 않았다.

“전 이게 다에요…“

이 한마디가 오해를 불러 일으켰을까?

그 형들은 ‘난 이게 다고, 옆의 친구들은 돈이 더 있을 거예요.’ 로 잘못 인지할 걸까?
아님 그렇게 믿고 싶어 내 친구들을 겁 준 것일까?

얼굴이 빨개질 만큼 억울했다.
하지만 친구들은 여전히 분이 안 풀렸는지, 교실 밖으로 사라진 채 일주일 동안 나를 찾지 않았다.




그 친구들은 지금 내 30년 친구다.

가끔 술 한 잔하며 그 때 사건을 안주삼아 이야기하지만, 난 여전히 억울하다.
이제는 뭐가 진실인지조차 모르겠다.
사실 오해라는 건, 정말 사소한 한마디에서 시작된다.

영화 <좋은 친구들>은 내가 아무 생각 없이 즐겨보는 한국영화다.
오래된 친구들의 이야기라는 소재가 친근하고, 친구들과의 추억을 더듬기도 좋다.
세 명의 어린 시절 친구들이 보험사기에 휘말리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이들은 서로에게 느끼는 우선과 배신, 의심 사이에서 갈등하고, 사건이 점점 커지면서 그들의 관계는 시험대에 놓이게 된다.
이 영화는 우정, 배신, 사기 같은 감정적인 요소들이 중심을 이루며 긴장감 있는 전개가 특징이다. 가볍게 보기에 좋은 웰메이드 영화다.

친구와의 우정은 종종 시험대에 놓인다.
사소한 한마디, 작은 다툼으로도 충분하다.
그 위기를 넘지 못하면, 그 사이는 딱 그 정도로 끝난다.
넘어서면, 단순한 친구를 넘어 일생을 함께 하는 동반자가 된다.




지금까지 친하게 지내는 30년 친구들과는 다양한 사건이 많았다.
여자문제로 싸우기도 했고, 동업한 회사가 부진해 서로 씩씩거리기도 했다.
승부욕에 불타 당구장에서 치고 박은 적도 있고, 술값 하나로 다툰 적도 있었다.

작은 사건 하나하나는 우리 이야기를 더 풍성하게 만들었고,
그 이야기들은 추억이라 부를 수 있는 따듯한 공감대가 되었다.
그 작은 사건에서 우정이 깨졌다면, 그 우정은 딱 그만큼이다.

풍성한 모든 관계에는 그만의 ‘이야기’가 존재한다.

우리 관계 역시 그 이야기들의 총량일 것이다.

“야! 미쳤어! 나 안 가!”

아내는 화가 나면 나를 ‘야’ 라고 부른다.
추석 당일, 서로의 작은 오해로 화가 단단히 났다.
말끔히 정돈된 표정으로 양가 부모님께 인사를 드려야 하는데, 시작부터 난관이다.

오늘도 우리 둘만의 거칠지만 뜨거운 이야기가 하나 더 생겼다.
우리의 관계는, 오늘 이후로 더 단단해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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