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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한국시리즈다

영화 '머니볼' 편

by 별의서랍



"프로야구 1000만 관중 돌파!"


요즘 프로야구 인기가 식을 줄 모른다.
어느덧 포스트시즌이 한창이다.

긴 여정의 왕좌를 가릴 시간.
사실, 일상에 치여 야구장에 간 게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한 때 야구전문기자를 꿈꿀 만큼, 나는 야구에 미쳐있었다.
내게 돈과 시간의 여유가 있었다면, 아마 야구장에 살았을 꺼다.

야구팬들은 안다.
야구장의 매력이 얼마나 치명적인지.

선선함 위에 싱그러움이 덮힌 어느 가을,
연애시절에 아내와 야구장을 다녀온 적이 있다.

이번 아니면 도저히 못 갈 것 같아, 그 어렵다는 야구장 예매에 도전했다.
불타는 광클과 새로고침의 연속 끝에,
귀하디귀한 야구장 티켓 두 장이 내 손에 들어왔다.


"와, 이게 얼마만이야."

벌써부터 가슴이 콩닥콩닥 요동치기 시작한다.
이미 푸른 잔디는 내 눈앞에 와 있고, 고소한 치킨 냄새가 코끝을 간질인다.
아, 거품 가득한 시원한 맥주도 빠질 수 없다.
목을 타고 내려가는 그 짜릿한 그 맛이 벌써부터 군침을 자극한다.




오후 1시, 잠실야구장 앞.
지하철을 타고 종합운동장역에 내리니, 이미 팬들의 야구는 시작된 듯했다.

응원팀 유니폼을 멋지게 차려입은 사람들,
응원봉을 흔드는 손,
예매권을 수령하기 위해 긴 줄에 몸을 맡긴 사람들까지.

"자, 치킨 2만 원! 막 튀겨 온 거에요~"

역시나 야구장에 빠질 수 없는 풍경.
상인들의 다급한 목소리와 분주한 움직임이 야구장 분위기를 완성한다.

사실 이곳엔 구매평도, 별점도 없다
그날의 느낌으로 가는 거다.
내 눈에 가장 반짝이는 치킨 상자 하나를 들고 드디어 야구장으로 들어선다.

서늘한 통로를 지나 경기장 안으로 들어가는 그 순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초록빛이 눈앞에 펼쳐졌다."


드넓게 펼쳐진 잔디,
캐치볼을 던지고 있는 선수들,
하나둘 자리를 채워가는 관중들.

우리는 예약해둔 통로 끝자리를 찾아 살짝 들뜬 마음으로 자리에 앉았다.

포장해 온 치킨과 간식거리를 주섬주섬 꺼내는 나.
방심은 금물이라며 얼굴에 선크림을 바르는 아내.
우리의 야구는, 지금 시작된다.



지금까지 야구의 감동을 영화로 표현한 작품들은 많다.
그 중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 <머니볼> 이다.

예산이 부족한 야구팀 단장 빌리 빈이 통계 분석으로 선수단을 새롭게 구성해 성공을 거두는 실화 기반 드라마다.

현장의 감 대신 데이터로 승부하는 혁신을 보여주며, 기존 야구계의 관습을 뒤집어 버린다.
브래드 피트의 열연과 함께 리더십·도전·변화의 의미를 담은 작품이다.

현대야구는 데이터야구다.
경기장 안 선수들의 움직임 하나하나는 모두 기록된다.
선수 뿐 아니라 경기장을 메운 관중들의 숫자까지도.
우리의 야구는 그렇게 기록되고, 그렇게 기억되고, 그렇게 다시 태어난다.

야구팬이라면,
아니 스포츠를 사랑하는 팬이라면 곡 챙겨보자.


“자기야, 술을 벌써 다 먹은 거야?”



맞다. 싹 다 먹어버렸다.
경기 시작이 가까워지고, 야구장이 부리는 마법에 취한 나는
정성껏 챙겨온 치킨과 맥주를 모두 비워버렸다.

야구장의 분위기는 이제 서서히 달아오르는데,
내 얼굴은 이미 달궈져 터지기 직전이다.

그래도 좋다.
선선한 바람이 내 볼을 어루만져주니까.
그 바람을 타고 들려오는 관중들의 응원소리가 내 귓가를 간질이니까.

세상에 있는 햇살을 전부 가져다 준 듯한 오후.
눈부신, 가을의 야구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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