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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인들에게 보내는 작은 편지

영화 '하치이야기' 편

by 별의서랍

엄마바라기


(본 작품은 저의 올해 신인문학상 수필 등단작입니다)

“따르릉!따르릉!”


벨소리에서도 감정이 느껴진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핸드폰을 받자마자,


"어떡해 쭈리가 없어졌어!"


핸드폰 너머로 들린 엄마의 다급한 목소리였다.
산책을 나간 줄만 알았던 반려견 ‘쭈리’가 갑자기 없어지다니!
매주 넋 놓고 보던 드라마를 켜 놓은 채 나와 동생은 미친 사람처럼 공원으로 뛰어갔다.
‘쭈리’가 무사하기만을 바라며.
수년간 함께 했던 ‘쭈리’와의 시간들이 필름처럼 머릿속을 지나갔다.

2007년 7월.


“아빠,강아지 키우면 안돼? 너무 키우고 싶어.”


두 번째 키우던 반려견이 하늘나라에 가고 그 흔적들이 그리워질 무렵, 나와 동생의 강아지 타령이 다시 시작됐다.


“강아지 키워봐서 알잖아...손도 많이 가고 나중에 죽으면 또 얼마나 슬프니..”


아빠의 지극히 현실적이고 건조한 대답에 나와 동생은 주눅이 들었다.
한 달 정도 지났을까.
가족끼리 드라이브를 가던 중, 도로 옆 갓길에 작은 애견 분양센터가 보인다.


"아빠! 저기 한 번만 가보면 안 돼? 그냥 구경만 힐께!"


아빠는 웬일인지 그날따라 흔쾌히 차를 돌렸다.
거기서 나는 눈꽃처럼 하얀 아기 몰티즈를 만났다.
새하얀 털 사이로 유난히 반짝거리는 검은 눈동자와 마주치자, 난 그 강아지를 둔 채 집에 갈 수 없었다. 차라리 집이 여기였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영혼의 단짝을 만난 듯 한참을 그 강아지와 떨어지지 않는 걸 보고 짠한 마음이 들었을까. 아빠는 무심한 듯 애견분양센터 사장님께 물어본다.


"요 놈 얼마예요? 많이 크진 않나요?"


서글서글하고 정감 있는 외모의 애견센터 사장님은


"아니에요 많이 커야 2~3킬로 정도에요.
몰티즈 종은 털도 잘 안 빠져서 키우기 편해요.”


미간을 찌푸리며 잠시 고민하던 아빠의 경쾌한 한 마디.


“야 너희 잘 키울 수 있지?똥 오줌은 너희가 다 치워야돼!”



그렇게 우리 가족과 ‘쭈리’의 달콤한 인연이 시작되었다.
‘쭈리’는 강아지를 유난히 좋아하는 우리 가족의 3번째 반려견이었다.
남들은 개가 너무 사납다며 핀잔을 늘어놓았지만, 우리 가족에겐 더없이 예쁘고 소중했던 반려견이었다.
잠잘 시간이면 서로 안고 자겠다고 전쟁을 벌였고, 침대의 따뜻한 안쪽 자리는 늘 ‘쭈리’ 차지였다. 그런 ‘쭈리’의 하나뿐인 사랑은 바로 엄마였다.
무심코 깬 새벽에 ‘쭈리’가 어딨나 찾아보면, 어김없이 엄마의 품 안에서 곤히 자고 있었다.


한 번은 이런 적도 있었다.
여느 날 아침처럼 엄마는 출근하기 위해 지하철역으로 한참을 걸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누가 자꾸 뒤를 졸졸 따라오는 느낌이었단다.
지하철역 입구를 들어가기 전 뒤를 휙 한 번 돌아보니, 하얀색의 작은 강아지가 엄마의 구둣발 뒤에 서서, 168센티나 되는 큰 키의 엄마를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엄마가 정신이 없어 대문을 살짝 열고 나간 틈을 타 ‘쭈리’가 뒤를 졸졸 따라왔던 것이다. 타야 될 열차를 놓쳐버린 엄마의 출근은 엉망이 되었지만,그날 이후로 엄마와 ‘쭈리’는 부쩍 더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쭈리’는 엄마가 없으면 하루도 못 사는 엄마바라기였다.
7년을 그렇게 집안 막둥이 역할을 하며 우리 가족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쭈리’를 안고 잠드는 엄마의 온화한 미소와, ‘쭈리’의 새근새근 숨 쉬는 소리는 긴 새벽 밤을 수놓았다.



여느 날 저녁처럼,
‘쭈리’와 엄마는 동네 앞 공원으로 산책을 나갔다.
그날은 아빠도 함께였다.


“너희도 같이 안 나갈래?”


평소와는 다르게 같이 산책 나가지 않겠냐고 엄마가 물었다.
당시 인기 드라마였던 ‘커피프린스1호점’을 보는 데 정신없었던 나와 여동생은


“아 귀찮아 지금 본방사수해야돼.”


하고 드라마를 보는 데 여념 없었다.
드라마가 중반부를 향해가고 있을 때쯤, 핸드폰 벨 소리가 크게 울렸다.
핸드폰을 손에 쥐자마자 엄마의 목소리가 나를 얼어붙게했다.


‘쭈리가 없어졌어!’


엄마의 다급한 그 말이 귓가에 울리고, 순간 내 마음 속엔 불안과 두려움이 쏟아져 나왔다.
태어나서 그렇게 빨리 뛰어본 적도 없었을 거다.
나와 여동생은 엄마와 ‘쭈리’가 항상 산책했던 그 공원으로 뛰어갔다.
도착해서 엄마의 말을 들어보니, 아빠가 공원에서 뛰어놀라고 ‘쭈리’ 끈을 풀어준 모양이었다. 불안해진 마음에 사라진 ‘쭈리’를 부르며 공원을 뒤지기 시작했다.


"쭈리야!" 대답이 없다.


“쭈리야 어딨어!”


이름만 부르면 쏜살같이 달려오던 ‘쭈리’가 그날은 아무리 불러도 오질 않았다.


“도데체 어디로 간거지?”
“왜 나타나질 않는거지?”


오만가지 생각과 함께 내 목소리는 점점 떨려갔다.
공원은 약 300미터 거리의 큰 규모로, 옆은 차도가 있어 자동차들이 빨리 달리는 곳이었다.
차 달리는 소리가 귀를 찌를 때마다, 공원 끝까지 가는 한 발 한 발이 더 절박해졌다.
"아냐 괜찮을 거야 별 일 없을 거야." 라고 수십 번 되뇌였다.
어둑해진 공원을 약 30여 분을 소리치며 뛰어다녔지만, ‘쭈리’의 모습은 보이질 않았다.
밤은 더 깊어지고, 공원은 고요하게 침묵했다.



당장 울음이 터질 것 같은 여동생과 엄마를 집에 보낸 후에 아빠와 내가 좀 더 찾아보기로 했다. 어둑해진 거리가 음침하게 느껴졌다.
아빠의 뒤를 힘없이 터벅터벅 걷고 있던 나는 절반은 포기한 상태였다.


“쭈리가 어디에 있든 무사하기만 했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을 하며 공원 옆 차도 쪽을 보던 순간, 나는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짙은 어둠 사이로 하얀 비둘기 같은 게 차도 가장자리에 쓰러져 있는 거였다.
붉은색 핏자국도 살짝 보인 것 같았는데, 그 순간 심장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그때 나는 본능적으로 알았던 것 같다.
그게 비둘기가 아니라는 것을.
나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그쪽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아빠에게 소리쳤다.


“아빠, 저 차도 쪽에 하얀 거..하얀 색깔 뭐가 있어...빨리 좀 봐봐...”


다급하면서도 두려운 마음에 계속 아빠만 재촉했다.
실눈을 뜨고 아빠가 그 쪽으로 가는 것만 지켜봤는데 숨이 멎을 것 같았다.
내가 가리킨 하얀색이 있는 곳에 간 아빠는 털썩 주저앉더니, 갑자기 흐느끼기 시작했다.


“아이고 쭈리야..쭈리야...어쩌다가 쭈리야...쭈리야..”


‘쭈리’를 연신 부르며 흐느끼는 아빠의 목소리만으로 현재의 상황을 알 수 있었다.
아빠는 울음을 삼키며 조용히 뒷산으로 갔다. 그의 손에는 ‘쭈리’를 품고 있었다.
마지막까지 나는 ‘쭈리’를 보지 못했다. 정말 볼 자신이 없었다.
아빠의 등 뒤에서 나약하게 흐느끼기만 하며 ‘쭈리’의 마지막을 지켜봐야만 했다.
그 날따라 아빠의 뒷모습이 커 보였다. 진짜 어른같았다.


그 날 산책을 하다 잠시나마 엄마와 떨어진 ‘쭈리’는,
너무 놀란 나머지 엄마를 찾느라 그냥 차도로 돌진해 버렸던 것 같다.
엄마가 길 건너편에 있을 거라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엄마를 좋아했던 ‘쭈리’다.
엄마가 출근할 즘에 화장을 하고 있으면 항상 옆에 듬직하게 앉아 엄마를 지긋이 바라봤던...엄마가 가는 곳은 어디든 따라가려 했던 ‘쭈리’였다.


하늘이 슬퍼하면 비가 내린다고 했던가.
‘쭈리’가 하늘나라에 가고 그다음 날 비가 많이 내렸다.
묻어둔 곳이 혹시 떠내려가진 않을까 나는 몇 번이고 공원 뒷산을 오갔다.
‘쭈리’를 잃고 난 후 한동안 아무것도 손에 잡히질 않았다. 세상이 텅 빈 것 같았다.
여동생은 일주일 정도를 매일 밤 눈이 퉁퉁 부을 정도로 울었다. 엄마와 아빠는 자신들까지 무너지면 안 된다는 생각에서인지 애써 태연한 척하려 했지만, 어두워진 얼굴빛은 감출 수가 없었다.
특히 엄마는 잠자리에 들 때마다 머리맡에 하얀색 강아지 인형을 두고 잠들었는데 그 모습이 더 쓸쓸해 보였다. “차라리 맘껏 울어 엄마..” 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각자의 방식으로 ‘쭈리’를 떠나보내고 있었다.
잔인한 일주일이 지나고 약간의 정신을 차린 나는 ‘쭈리’가 묻힌 공원 뒷산을 다시 찾았다.
거세게 비가 오던 흔적은 어느새 사라지고, ‘쭈리’가 묻힌 공간은 따뜻한 햇살 아래 평온해졌다.


"쭈리야, 잘 가.."


그날 나는 ‘쭈리’를 영원히 떠나보냈다.




그 후 15년이 지난 추석 명절날.


“띵똥”
“멍멍멍!!”


오랜만에 찾은 부모님 집 문을 여니, 솜털같이 작은 하얀색 강아지 한 마리가
꼬리를 살랑살랑거리며 나를 반긴다.
엄마와 아빠는 ‘짱이’ 라는 1살짜리 반려견을 키우고 있다.
하얀 색 몰티즈 종이다.
엄마가 강아지한테만 마법을 부리는 걸까?
신기한 건 ‘짱이’ 역시 엄마만 졸졸 따라다니는 엄마바라기다.
오랜만에 만난 나를 반갑게 맞이하는 것 같더니, 금세 엄마품에 쏙 안긴다.
결혼해서 독립한 나는 가끔 명절 때나 ‘짱이’를 보러 가는데,
2킬로도 채 안 되는 자그마한 ‘짱이’를 볼때마다.,
“혹시 쭈리가 환생을 한 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아직까지 엄마를 잊지 못해, 엄마 곁에 영원히 있고 싶어서 말이다.


“쭈리야 그날 제대로 인사하지 못해 정말 미안해...
그리고 네가 내 삶에 들어와줘서 너무 고마워.”
나는 유난히 맑은 창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조용히 말했다.


“쭈리야, 이제 진짜 안녕.”


쭈리가 나를 지켜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다시 ‘짱이’의 검은 눈동자를 보며,
“고마워, 네가 있어서 너무 행복해.” 라고 속삭였다.


이제 나는 마음속으로 ‘쭈리’에게 작별을 고할 수 있었다.

(글빛문학 봄호 수록) 엄마바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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쭈리가 무지개다리를 건넌 뒤,
마음이 허전할 때면 반려견이 나오는 작품들을 종종 찾아보곤 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오래 마음에 남은 영화는 단연 〈하치 이야기〉였다.
매 순간을 함께하던 주인이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고,
하치는 그 사실도 모른 채 매일같이 시부야역에서 주인을 기다렸다.
무려 9년 동안이나.

그리고 결국, 추운 어느 날 하치는 그 자리에서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으며, 지금도 시부야역에는
하치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나 또한 일본 여행을 갔을 때 가장 먼저 그곳을 찾았다.

반려인들은 안다.
동물은 단순한 반려가 아니라, 가족 그 이상이라는 것을.


오늘따라 선선한 바람 속에 쭈리의 숨결이 느껴진다.
쭈리야, 오늘 밤은 유난히 네가 보고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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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