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틀포레스트' 편
싸늘한 공기와 약냄새 가득한 응급실.
이번이 두 번째였다.
“선생님, 저 지금 죽을 것 같아요.”
첫 발작은 한가로운 주말 저녁에 찾아왔다.
방에서 한가롭게 영화를 보던 중이었다.
갑자기 온 몸에 힘이 빠지고, 이가 세게 부딪칠 만큼의 오한이 밀려들었다.
그 날은 더위가 절정을 향하던 한여름이었다.
놀란 엄마는 옷장 깊숙이 넣어둔 겨울이불을 꺼내왔다.
두꺼운 이불을 한참 뒤집어쓰고도 추위는 가시지 않았다.
겨울 패딩을 입은 듯 만 듯 걸치고, 엄마와 함께 응급실로 향했다.
수액이 몸속을 타고 흐른 지 30분 쯤 지나서야, 서서히 오한이 잦아들었다.
그땐 스트레스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다.
두 번째 발작은 지하철 안.
면접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한 달 전에 겪었던 불쾌한 느낌이 다시 몸을 감싸왔다.
이번에는 오한에 더해, 세상 전체가 새까매지는 공포가 따라왔다.
그대로 여기 있다가는, 정말로 저 세상과 만날 것 같았다.
기어가듯 몸을 추스르고 나와, 첫 번째와 같은 응급실을 찾았다.
수액이 들어가고, 몸은 다시 멀쩡해졌다.
이번에도 놀란 걸음으로 달려온 엄마는, 걱정스런 눈빛으로 내 손을 어루만졌다.
내 몸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젊은 나이에 불치병이라도 걸린 걸까?”
내 마음은 불안으로 가득 찼다.
그때 결심했다.
계획에 없던 종합검진을 받기로.
그리고 며칠 뒤 결과를 듣기 위해 병원으로 향했다.
몸은, 지극히 정상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예상치 못한 곳에 있었다.
“공황장애가 의심됩니다.”
말로만 듣던 병이었다. 대중들의 사랑을 받고 사는 연예인들이 걸리는 병으로만 알고 있었다.
나와는 평생 인연 없을 줄 알았던 그 단어 ‘공황장애’.
그 단어는 내가 정신과 치료가 필요한 사람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마음이 아픈 상태’라는 의사선생님의 한 마디는 날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정신과 치료를 받는다는 사실은, 세상 어떤 말보다 끔찍한 낙인 같았다.
대신, 더 많이 웃고, 더 많이 떠들었다.
감춰야 했으니까.
“오랜만이다, 요즘 뭐해?”
평범한 인사에도 몸은 위축되었다.
그 말은 내겐 이렇게 들렸다.
“근사한 일을 하지 못한다면 부끄러운 일이야.”
근사한 일을 못하고, 근사한 사람이 되지 못한 나는 점점 위축되었다.
내 자신에 대한 처방이 필요했고, 생각의 전환이 필요했다.
난 내 상황을 인정하고, 신경안정제를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동시에 세 가지를 다짐했다.
첫째, 꾸준히 운동할 것
둘째, 좋은 생각만 할 것
셋째, 충분한 수면시간을 확보할 것
그렇게 10년이 지난 지금,
난 근사하지는 않아도 제법 행복한 사람이 되었다.
신경안정제의 효능은 확실했고, 현대의학이 정신까지 다스린다는 점은 꽤 놀라웠다.
‘좋은 생각만 하자’는 다짐은 애초에 불가능한 미션이었다.
하지만, 이걸 가능하게 하는 게 있었다.
바로 ‘운동’ 이다.
생각을 생각만으로 잡기는 굉장히 힘들다
마음을 마음으로 잡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몸이 먼저 변하면 생각이 따라 바뀐다는 것을 그 때 깨달았다.
시원한 아침바람을 맞으며 하루를 시작하는 조깅은 내 머릿속을 상쾌하게 만들었고,
내 행동 하나하나에 조금씩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
요즘 공황장애는 희귀한 질환도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형태의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
마음이 아픈 사람이 있다면,
그걸 마음으로 바꾸려는 생각을 버리고 몸을 움직여야 한다.
아침에 일어나 이부자리를 개고, 밝은 햇살을 맞으며 조깅을 해보는 것도 좋다.
오늘은 마음이 편해지는 영화 한편을 소개할까 한다.
개봉한지는 좀 됐지만 이제야 보게 된 영화 <리틀 포레스트>
도시생활에 지친 혜원이 고향 시골집으로 돌아와 잊고 지내던 감정들과 마주하며 스스로를 채워나가는 이야기다.
<리틀 포레스트>에는 특별한 목적도, 사건도 존재하지 않는다. 직접 키운 농작물로 소중한 한 끼를 만들어 먹고, 고향의 지인들과 웃고 떠들며 그 순간을 새긴다.
그래서 이 영화는 온전히 마음속에 스며든다. 무언가를 생각할 필요도 없고, 의미부여도 필요치 않다. 마음이 힘들고 지친 당신에게 꼭 필요한 웰메이드 작품이다.
“자기야 뭐하고 있어! 운동가야지!”
아참, 운동하는 데 끈기가 부족하다면, 맘껏 나를 채찍질할 조력자가 필요하다.
나한텐 그 조력자가 아내다.
오늘 날씨가 쌀쌀해 은근슬쩍 건너뛰고 쉬려했는데, 물거품이 됐다.
그래, 혼자가 힘들면 같이 하면 된다.
그렇게 우리는, 더 끈끈한 하나가 되어가니까.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니다.
함께 달리자.
그러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