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나의 사랑 나의 신부' 편
“저희 남편이 대출을 받았다고요?”
“네, oo님 이름으로 오백만원 받으셨습니다.”
6개월 전.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백수가 되었다.
갑작스런 일은 아니었다.
십년간 해온 영업 일이 슬슬 지겨워졌고, 고객한테 치이는 일상을 하루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무리한 실적을 요구하는 부장님의 입방정은 퇴사를 망설이던 내 머릿속 트리거를 당겼다.
퇴사결정은 의외로 심플했다.
‘어엿한 가장’이라는 타이틀이 나를 잠시 망설이게 했지만, 이직하는 게 어려울 것 도 없었다. 길어야 일주일이면 해결될 줄 알았으니까.
그런데 이직은 이사가 아니었다.
그보다 더 큰 문제가 있었다.
아내는 내가 퇴사한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래야만 했다.
매달 아내에게 주기로 한 생활비는 2백만 원이었고, 일단 한 달은 버틸 수 있었다.
이른 아침, 난 아내에게 출근인사를 하고 집 앞 pc방으로 출근했다.
새하얀 인테리어에 말끔히 청소된 pc방은 마치 내 개인사무실 같았다.
푹신한 의자에 몸을 기댈 땐 마음까지 편안해졌다.
10시간 정액권을 끊고, 마치 사무실에 출근하듯 모니터를 켰다.
약 3시간은 채용사이트에 접속해 구직활동을 했고, 좀 지루하다 싶으면 스포츠게임을 하며 시간을 때웠다.
직장에서 그렇게 느리게 가던 하루일과가 pc방에서는 순식간이었다.
이 생활이, 나쁘지 않았다. 아니 조금은 짜릿했다.
그동안 몇 군데 면접을 봤지만 내가 원하는 조건과 거리가 멀었다.
한 달이란 시간이 마법처럼 빠르게 흘러갔다.
이젠 버틸 수 있는 돈이 없었다. 빠른 시일 내에 취업할 가능성도 희박했다.
백수일지언정, 맘에도 없는 직장에 다니고 싶진 않았으니까.
아내에게 생활비를 줄 날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마음이 조급해졌다.
만약 이번 달 생활비를 못 준다면 내 현재 상황이 들통 날 게 뻔했다.
고심 끝에 결정한 건 바로, 대출이었다.
“고객님이 요청하신 대출금 5백만 원이 승인되었습니다.”
언젠가 갚아야 할 돈인데, 마치 상금을 받는 기분이었다.
난 그날, 회사에서 보너스를 받았다며 아내와 한우를 사먹었다.
내 통장에는 이제 막 들어온 따끈한 5백만 원이 있었고, 난 이 세상 누구보다 부자같았다.
다행히 두 달여가 지나 원하는 직장에 들어갈 수 있었고, 난 위기를 잘 극복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날.
근무 중 아내에게 전화가 온다.
“자기야, 혹시... 대출받았어?” 가슴에 비수가 꽂힌다.
“응? 무슨 말이야..내가 무슨 대출을...”
“그치? 그럴 리 없지? 자기가 그럴 위인이나 돼?”
손이 떨리고 식은땀이 흘렀다.
대출이라는 게 그렇다. 빌릴 때는 당장 갚을 수 있을 것 같지만, 그게 생각처럼 쉽지가 않다.
매달 내는 원금과 이자를 합치면, 월급으로는 벅차다.
이번 달 이자를 깜박했는데, 그 연체통지서를 아내가 본 모양이다.
난 그날, 아내의 우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그렇게 밝고 빛나기만 하던 아내의 얼굴이, 눈물바다가 된 날이었다.
신혼부부라는 말은 우리를 참 설레게 만든다.
그 설렘과 풋풋함으로 가득 채워진 영화 <나의 사랑 나의 신부>.
신혼부부 영민과 미영은 대부분의 커플처럼, 사랑만으로 결혼생활이 행복할 줄 알았다. 하지만 사소한 오해와 갈등이 쌓이며 서로에게 지쳐간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사랑하는 두 사람은 잠시 멀어지지만, 상대를 이해하며 결혼의 진짜 의미를 깨닫는다.
중요한 건, 극 중 영민은 대출을 받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일단 나보다 낫다.
사실, 나는 어릴적부터 신민아 님의 광팬이다. 그래서인지, 감정이입이 저절로 되던 영화였다. 그 러블리한 얼굴과 말투, 어쩌라는 겁니까? (자기가 젤 이뻐)
지금 썸 타는 중이거나, 이제 막 결혼한 신혼부부들이 재밌게 볼만한 내용이다. 하지만 결혼 7년차인 지금, 신혼 때의 애틋한 감정과 향수를 불러일으키기에도 정말 괜찮은 작품이다. 우리의 신혼은 마음 속 영원히 존재하는 거니까.
한가한 어느 날 오후.
티비를 보던 중, 배우자가 상의 없이 집 담보대출을 받아 이혼까지 하게 되었다는 내용이 들린다.
내 오른쪽 뺨이 누군가의 강한 레이저로 달궈지는 기분이 든다.
이럴 땐 어디든 나가는 게 상책이다.
분리수거는 이럴 때 하라고 만든 거다.
애꿎은 분리수거 봉투를 만지작거리자, 아내의 그림자가 밀려온다.
“휴. 내가 그때 생각하면..”
아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난 대문을 박차고 뛰쳐나왔다.
저 말을 끝까지 들으면 정신질환이 올 수도 있다.
난 그때 사건 이후, 아내의 얼굴에 눈물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런데 말이지, 오늘은 내가 좀 울고 싶다.
날씨는 또 어찌나 추운지,
눈까지 시리다 시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