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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욥 May 20. 2024

어디서 무당질이야?

개박살 난 엄마의 신당


 병신. 나는 철저히 병신이었다. 그것도 내 기억으로는 20살이 한참이 넘어서까지도 말이다. 나는 사실 그때 셋째 삼촌이 택시에서 내려서 씩씩거리며 엄마의 신당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봤다. 무슨 일인가 하고 삼촌의 뒤를 따라서 들어가려는데, 신당 밖에서도 신당 안에서 무언가 부서지고 엄마가


AI 상상 이미지


" 오빠!!! "


 하며 비명을 질러대며 울어대는 목소리도 분명히 들었다.

" 이 개 같은 년이! 어디서 이따위 무당질이야? "

 하면서 셋째 삼촌의 욕설과 함께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한참이나 들렸고, 나는 신당에 들어가서 엄마를 구해낼 생각조차 못하고 밖에서 떨고만 있었다.

 무서웠다. 셋째 삼촌이 그렇게 씩씩 대며 성난 미친 황소처럼 날뛰는 것이, 그리고 중학교 3학년인 내가 어른들의 일에 관여를 해서 엄마에게 혼이 날 것만 같은 생각에 무서웠다.

 그때는 그런 나 자신이 병신 같은 일이 될 줄은 꿈에도, 아니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내 머릿속에서는 나는 그저 부모님으로부터 보호를 받아야 하는 존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나 보다. 내가 엄마를 지켜줘야 하는 존재가 되어야 하는 줄도 몰랐다. 스무 살 넘도록...

 생각해 보면 새아빠도 남편의 자리를 채워주지 못하는 인간이었다. 그 당시 내 배다른 아무개 동생은 어려서부터 새아빠의 강요에 의해 축구를 했는데, 새아빠의 목표는 오로지 그 동생을 훌륭한 축구선수로 만드는 데에 가있었다.

 김장사를 그만두고 나서, 이태원으로 이사를 오고 나서는 더욱 그랬다. 엄마가 돈을 잘 버니까 엄마가 벌어들이는 족족 동생에게 쳐 박았다. 굿판이 있는 날이 아니면, 아니 정확히는 굿판이 있는 날에도 자신이 굿판에서 필요가 없다고 느껴지면 새아빠는 엄마를 지키지 않고 늘 동생에게 가버렸다.

 그날도 하필 새아빠도 없었던 시간이었다. 새아빠의 성격도 솔직히 흥분을 하게 되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성격이었는데도 말이다. 어찌 말하면 그 자리에 없었던 것이 잘 된 일일 지도 모르겠다. 만약 있었으면 누구 하나 죽어도 죽었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삼촌이 도대체 왜 와서 엄마의 신당을 작살을 내놨는지는 지금까지도 그 이유를 모른다. 그때 당시에 내가 밖에서 들은 바대로 추측을 해보면, 엄마가 무당이 되었다는 사실을 숨겨왔다가 셋째 삼촌이 알게 되었고, 이런저런 이유에서 서로 티격태격하다가 삼촌이 열받아서 분을 참지 못하고 김포에서부터 이태원까지 택시를 타고 와서 망치로 다 때려 부서 버린 것이다.

 삼촌이 그렇게 한바탕 난리를 치고 돌아갔고, 나는 신당으로 가고 싶었지만 엄마는 날 못 오게 막았다. 아마도 그런 모습을 아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겠지.

 게다가 그 이후로도 엄마의 입에서 자신의 신당을 제멋대로 부서 버린 그 오빠를 욕을 하거나 흉을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어린 내 눈에는 그저 엄마가 그런 일을 당했는데도 별일 없었던 것처럼 평소대로 행동했고, 금방 괜찮아진 줄 알았다.

 그리고 외할머니는 엄마에게 미안해 하기는 한 것 같아 보였으나, 그 이후로 할머니의 행동이나 말씀하시는 것을 봐서는 할머니는 아들이 자신의 딸에게 그렇게 했어도 끝까지 아들 편이셨다.

 그저 성질이 불같아서 그런 것이니 숙이 네가 참으라고 오빠이니 어쩌겠냐고 그렇게 말을 하는 걸 봐서는 말이다.

 그 이후로 엄마는 신당을 고치고 부서진 물건들을 다시 자신의 돈으로 채워놓고 다시 시작했는데도, 엄마는 너무나 잘 나가는 무당이었다.

 그 당시에 한 달에 엄마가 한 굿판만 해도 평균 20-30자리였다고 하니까 말이다. 심지어 나흘 밤낮으로 연속해서 굿판을 연 적도 있었고, 한 달 동안에 최대 45개의 굿판을 기록하기도 했다고 했다.

 45개의 굿판이라면 30일 동안 매일 굿판을 열고도 밤낮으로 쉬지 않고 2개씩 열었다는 소리다. 그렇게 잘 나가고 있는데, 내가 중학교 3학년을 거의 마칠 때쯤 또다시 셋째 삼촌이 엄마의 신당으로 찾아왔다고 했다.

 엄마는 또다시 신당을 부수로 온 것인 줄만 알고 너무나도 긴장을 하고 있었는데, 그 삼촌이 신당으로 말없이 들어가더니 향로에 향을 하나 꽂아 넣고 그대로 신당 앞에서 절을 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삼촌은 그대로 51번의 절을 하고는 거실로 나와 엄마에게 단 한 마디를 건네고 나서는 그대로 집으로 돌아갔다고 했다.

" 미안하다. 숙아. "

 엄마는 어리 둥절했다. 흥분을 해서 신나게 신당을 망치로 때려 부술 때는 언제고 갑자기 찾아와서 이유도 뭣도 없이 절을 51번이나 하고 돌아가다니 말이다.

 그 이후로 엄마와 셋째 삼촌은 서로 화해를 하고, 엄마가 나중에 그 삼촌에게 물어봤다고 했다.

 그 삼촌에게는 단 하나뿐인 아들이 있는데, 그 아들은 나보다 3살이나 많은 형이었다. 그 아들은 어려서부터 육상에 소질이 있어서 대회를 나갔다 하면 메달을 휩쓸어 올 정도로 실력이 뛰어났다고 했다.

 그 삼촌은 그런 그 아들을 어려서부터 케어를 해왔다. 워낙에 실력도 좋고 성적이 좋아서 대학은 물론 국가대표가 되는 것은 모두들 당연한 결과일 것이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런데 시기적으로 봤을 때 딱 자신이 동생의 신당을 부수고 나서부터 그 형의 성적이 내리막길을 타기 시작했고, 내리막길을 치다 못해 성적이 바닥을 기고 급기야 그렇게 잘하던 육상에서 은퇴를 하고 대학마저 기대와는 다른 영 이상한 학과로 진학하게 된 것이다.

 그 삼촌의 말로는, 그때부터 애가 갑자기 이상하게 변했는데 알고 보니 여자친구가 생긴 것이다. 그때는 운동선수가 이성에게 한 번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면 아무리 잘난 성적의 소유자도 내리막길을 가게 되어있다고 생각하던 시절이었고, 실제로 그 형이 직접 그 본보기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 형이 여자친구에게 빠져서 훈련도 자주 빠져 먹게 되었고, 식단관리며 체력관리 등등 육상선수가 피해야 하고 금지해야 하는 것들을 하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체중이 불어버려 몸이 무거워진 상태가 되어버린 것이다.

 한 순간이었다고 했다. 삼촌이 '앗' 하는 사이에 자신의 아들이 '최고'의 자리에서 뚝하고 떨어져 버렸다고 했다. 그래서 그제야 삼촌의 머릿속에서 '내가 동생의 신당을 그렇게 만들어 놔서 그런가?' 싶은 생각이 들었고, 급기야 근처 유명한 무당집에 갔다고 했다.

" 당신 뭔 지 몰라도 죄를 졌구먼? "
" 예?? "
" 당신 말이야... 아들이 그렇게 된 건 당신이 죄를 졌기 때문이야. 쯧쯧쯧..."
" 그...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

 하고 삼촌은 그 무당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았고, 그 무당은 당장 동생의 신당에 가서 술을 따라 놓고 향을 피운 다음, 자신의 나이 숫자 대로 절을 하고 동생에게 미안하다는 사과를 하고 나오라고 그랬다는 것이다.

 그래서 삼촌은 그 무당집에서 나오자마자 택시를 잡아 타고 김포에서 이태원까지 또 쏜 살 같이 달려온 것이다.

 그랬더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고, 그 이후로 동생인 내 엄마를 무당으로서 인정을 하고 다른 형제들에게도 ' 우리 숙이는 무당이니까. 함부로 건들지 마라.'라고 선포를 할 만큼 변해버렸다고 했다.

 엄마는 예전 김장사가 잘 될 때부터, 엄마의 7남매 중에 거의 막내인데도 장남 노릇을 해왔다. 외할아버지의 제사 때도 매번 제사 비용과 제사를 지내는 올케 언니에게 용돈을 보내주었고, 집안의 대소사를 직접 관장하며 그 비용까지 혼자 감당했다.

 그런데 셋째 삼촌은 막상 자신의 여동생이 무당이 되자, 그걸 인정하지 않고 신당을 부서 버리는 만행까지 저지른 것으로 판단된다. 엄마가 지금까지도 그 일에 대해서, 또는 자기의 형제의 치부에 대해선 일체 말을 하지 않고 감싸는 사람이어서 아들인 나로서는 잘 모르는 일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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