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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rew Jan 01. 2022

충절의 고장 천안을 가다(2)

홍윤기 수필집 "예순다섯 살의 고교생"_만서 홍윤기

삶의 연륜이 묻어나는 만학도들의 경연이라서 조금은 차분하고 질서 정연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내 생각은 처음부터 잘못된 선입견이었다.

점잖은 중년, 그 보다 더 높은 노년에 접어들어 머리엔 눈부신 은발이 빛나고 밭고랑 같은 깊은 주름은 계급장처럼 이마에 그려져 세월의 부침을 겪은 이 사람들도 오늘은 영락없는 고교생들이다.

나이 지긋한 아줌마, 아저씨, 아니 집에선 이미 할아버지 할머니가 분명할 텐데 그들은 누가 보아도 교복을 입지 않은 자유 복장의 고등학생일 뿐이다. 건물 뒤쪽에서 삼삼오오 모여 흡연을 하는 불량(?) 학생들도 있었고, 또 누군가는 점심때 반주로 한잔 하고 얼큰해서 이 들뜬 분위기에 감초 역할도 마다하지 않는다.

전국에서 모여든 만큼 지역 사투리가 요란법석을 떨어도 그 소란조차 정겹다. 제주도 팀은 아침 비행기로 출발했으나, 대회장 근처 공항에 안개 때문에 착륙을 못하고 김포까지 갔다가 공항 측에서 제공한 차량으로 오고 있는 중이란다. 문명의 이기인 컴퓨터를 통해 사이버 상으로 익히 알고 있으면서도, 초면인 이날의 만남을 위해 부지런히 찾아다니는 학우들도 있었다.

국악이나 양악에 출전하는 학우들의 리허설이 한창이지만, 나는 또 내 할 일이 있으니 여유롭게 그것을 구경할 수 없어 아쉽다. 미리 나눠준 프로그램 책을 보며 내가 경연을 해야 할 교실로 이동을 하는데 벌써 그림을 그리는 학우들은 캔버스를 펴고 경연에 돌입해 있었다.


내가 참여한 문예 부분 산문은 43명의 각 학교 문우들이 글 솜씨를 겨루게 되는데, 장소가 좁아 2개 교실을 사용하게 되어 있었다. 지정된 교실에 들어가서 맨 뒤에 자리를 잡았다. 옆자리에 여학생(?)이 날 알아봐 준다. 사이버상으로 내 글들을 보았단다. 우리 학교에서 함께 참여한 여학생 학우는 먼저 와서 미리 자리를 잡고 차분하게 마음을 정리하고 있었다.

모두들 긴장했는지 교실엔 정적이 감돌고 있었는데, 난 자꾸 기침이 나니 긴장할 틈이 없을뿐더러 다른 사람들에게 미안해 참으려 해도 뜻대로 되지 않아 난감하다.

콧물이 흐르고 기침은 나지만 다행히 열이 없어 머리는 생각보다 맑았다.

누군가 내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포항에서 온 박 OO입니다." 하면서 인사를 청한다. 만학도 문학 방인 물결 문학에서 글로 몇 번 인사를 했으나, 만남은 초면인 포항고 2학년 선배다. 인사를 나누고 그가 자기 교실로 돌아간 다음 가방에서 필기구를 내놓고 시제를 기다리는 마음은 차라리 평온하다.


<내 생에 최고로 빛난 순간> <내 생에 최고로 아름다운 단 한 사람> <단 하나의 소원> 이 세 지 시제 중에 하나를 선택해서 쓰게 되는데 시작하기에 앞서 출석을 체크한다.

결시자가 여섯 명쯤 있었다. 전남 여고에서는 본래 신청한 학우의 불참으로, 3학년 선배가 참여하게 되어 다시 명단에 올린 후 본격적인 대회가 시작되었다.

시제로만 보아서는 세 가지 모두가 하나의 글로 표현할 수가 있다는 생각을 하니 제목을 무엇으로 할지는 고민하지 않기로 했다. 우선 써놓고 셋 중 하나를 선택하면 될 일이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지 컴퓨터를 이용해 글을 쓰다 보니 일반 필기구로 글을 쓰기가 번거롭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연습지가 없어 비치된 용지를 몇 장 가져와 써 내려가기 시작하는데 기침은 아직도 멈추어지지 않는다. 연습지에 글을 쓰다가 갑자기 귀찮은 생각이 든다. 기침, 콧물이 주체하지 못하겠기 때문이다.

빨리 끝내고 쉬고 싶다. 바로 본 용지에 지금까지 써 놓은 습작을 옮겨 써 나간다. 미완성이니 끝 부분은 또 머리에 들어 있는 것을 정리해야 한다.

지우고 다시 쓴다거나 고쳐 쓰기가 무척 번거로우니 오자가 나지 않도록 신경을 써야 한다. 무슨 말을 어떻게 는지 지금도 기억할 수 없다.

내가 쓴 글이지만 지금 다시 쓰려고 하면 자신이 없을 만큼 횡설수설한 것 같다.

주어진 시간은 두 시간 반이나 되는데 30분 정도의 시간이 지나 끝내고 담당 선생님께 제출을 한다. 선생님이 제목을 정하라는 말에 그때서야 제목을 미처 적지 않았음을 알았다. 제목은 <내 생에 최고로 빛난 순간>으로 하겠다고 체크를 하고, 재차 신분증으로 본인 확인을 한 후 경연장을 빠져나왔다.

나와서 생각하니 본문에 내 생에 최고로 빛난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으니 유보하겠다고 쓴 것 같다. 제목을 잘못 선택한 것 같기도 하고....., 여하튼 내가 할 일은 이제 끝났다. 입상 여부는 심사위원들의 몫이고 나는 이미 주사위를 던진 셈이다. 올해 안되면 또 내년도 있을 것이고, 내가 추구해 나가야 할 목표가 남아 있는 것도 그리 나쁜 일이 아니니, 결과 때문에 전전긍긍하지 않기로 했다.


이젠 이 축제를 즐기는 일만 남았다. 다른 종목, 이를테면 국악 페스티벌,  이번 경연과는 별도로 치러지는 장기자랑을 관람하기 위해 부지런히 저녁식사를 마쳐야 하므로 우리 학교 일행들과 식당으로 향한다.

이번 경연대회의 참 맛은 저녁식사 후부터 공연장에서 시연된 각 학교별 장기자랑과 그에 앞서 열린 국악 부분이다. 음악엔 문외한이라 양악은 물론 국악에 별다른 흥미를 모르는 내가 자리를 뜨지 못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자리를 지켜야 할 만큼 수준 이상, 아니 그보다 더 전문가 프로를 뺨치는 실력에 어안이 벙벙하다.

그 후에 전해 들은 이야기지만 그들은 현재 국악인으로 활동하며 방통고에 재학 중인 학우들이라고 한다. 밤이 깊어 11시가 넘었는데도 이 신나는 한판의 공연은 저마다 한(恨)을 가진 우리 학우들의 소리가 배 밑에서 터져 나오는 감동의 소리며 눈물로 점철된 통곡의 소리로 들린다.


공연이 끝나고 쏟아지는 빗속을 걸어 각자의 숙소로 돌아가는 가슴속에 파도치는 감동의 격랑이 멈출 줄 모르니 이 밤 어느 숙소에서 누가 편히 잠들 수 있을까? 내일 아침 결과가 발표되겠지만 솔직한 마음으로 연연하지 않기로 했다. 가슴속에 일렁이는 격한 감동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여운을 음미하며 숙소에 돌아오니 응원차 내려온 학생회 임원 선배들이 돌아가지 않고 푸짐한 만찬을 준비하고 있었다.

장대비가 하염없이 내리던 그 밤은 지난 세월 속에 응어리진 내 한(恨)을 충절의 고장 천안에 미련 없이 내려놓고 가벼운 마음으로 내일의 또 다른 내게 허용된 남은 삶을 다시 그리며 칠흑의 밤을 하얗게 새운 또 하나의 기념비적 날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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