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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곡가 이승규 Sep 23. 2020

광주가 품어낸 삶과 가치

로컬 콘텐츠 광주

     

 

※ 광주매일신문에 연재하는 글입니다. 


그동안 2015년부터 광주를 주제로 작곡한 내게 광주매일신문의 연재는 과거를 돌아보는 반성과 미래를 설계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 같다. 


작곡가로서 ‘광주’의 가치는 무엇인가? 어떻게 음악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가. 주제가 있는 작곡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공부를 해야 한다. 장소와 인물과 주변에 대한 이야기를 모두 알고 있어야 하며, 책도 많이 읽어야 하고 충분한 고민과 사유를 해야만 나의 가슴 속에 충분하게 배어 나온다. 그래야 감동 깊은 음악의 언어로 표출이 된다.  


태어나고 자란 곳에 대한 애착은 지난 시간에 대한 그리움과도 맞물린, 원초적이고 보편적인 감정이다. 광주에서 태어나고 현재까지 살아온 내게 광주는 늘 영감의 원천이 됐다. 광주의 역사, 고귀한 사상, 아름다운 예술의 향기를 음악을 통해 새롭게 느끼고 기억하고 싶었다. 

2016년 여름, ‘1930 양림’ 축제에서 매월 마지막주 수요일마다 공연을 하게 됐다. 10-20명 관객과 이야기를 나누며 자연스러운 분위기 속에 하는 공연이었다. 매월 연주를 하다보니 매번 같은 연주를 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됐다. 그런 고민 속에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게 됐다. ‘양림동에는 어떤 이야기가 있을까’, ‘여기에 오는 관객은 어떤 음악들을 듣고 싶을까’, ‘오늘 들려주는 연주가 감동을 줄 수 있는가’라는 고민이었다. 

그렇게 고민하게 되니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양림동의 유명한 명소를 주제로 작곡하면 어떨까? 관객은 양림동에 대해 새롭게 느끼고 나에게는 이야기라는 소재를 통해 작곡할 수 있는 기회였다. 곡 제목은 피아노 모음곡 ‘양림의 거리’로서 1곡 펭귄마을, 2곡 충견상, 3곡 이장우 가옥, 4곡 한희원 미술관, 5곡 충현원, 6곡 다형 김현승 시비, 7곡 순교자 묘원, 8곡 우월순 선교사 사택, 9곡 커티스메모리얼홀, 10곡 호랑가시나무, 11곡 수피아홀, 12곡 오웬기념각 으로 구성돼 있다. 

이 곡은 양림동의 다양한 문화적 결합이 새로운 완전체를 이룬다고 생각해 ‘12’ 상징적인 의미(클래식 작곡가 중 쇼팽, 드뷔시, 리스트, 스크라빈 에튜드가 대표적이며, 옥타브 안의 모든 반음을 포함하면 총 12음계로 이뤄져 있다)를 고민하며 12곡으로 작곡했고, 곡의 순서는 동선을 기준으로 작곡해 관광투어에도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음악을 들으며 양림동을 걸을 수 있는 좋은 아이템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양림동에서 태어난 작곡가 정추를 주제로 한 바이올린 소나타 ‘정추, 1923-2013’을 작곡했다. 

작곡가 정추는 광주 남구 양림동에서 태어나 형을 따라서 월북을 한 후 1952년 모스크바 차이코프스키음악원으로 유학을 간 그는 차이코프스키의 3대(代) 제자로 자리매김했으며 졸업 작품인 오케스트라 ‘조국’으로 음악원 사상 최초의 만점 졸업생이 됐다. 

1957년 모스크바 북한유학생들의 김일성격하운동을 주도한 이래 카자흐스탄 알마티로 망명, 카자흐스탄 국립여성사범대 작곡과 교수로 재직했다. 그곳에서 고려인 집단농장인 꼴호즈를 찾아가 한민족의 음악적 문화유산이라 할 수 있는 민요 1천여곡을 채보함으로써 사라질 위기에 처한 고려인 가요를 보존 계승하는 음악인류학의 길을 개척했다. 

바이올린 소나타 ‘정추, 1923-2013’은 작곡가 정추에게 전하는 음악적 헌사로서 정추의 인생과 그 역정을 생각하며 작곡했다. 1악장 Andante(느리게)는 작곡가 정추의 작품 중 가곡 김소월 작시, ‘가는 길’의 주선율을 바이올린 곡으로 재탄생했다. ‘가는 길’ 중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라는 가사가 있다. 정추의 삶도 이와 같지 않을까. 조국과 가족이 그립지만 이념과 정치적 현실에 부딪혀 그립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의 그리움을 느끼게 된다. 1악장은 정추의 그리움에 바이올린의 서정성이 묻어나게 하고 싶었다. 2악장 Allegro agitato(빠르고 흥분하듯)는 이념에 휩싸여 버린 그의 인생과 음악에 대한 열정, 조국에 대한 그리움, 통일의 염원을 표현하고 싶었다. 




2017년 여름, 고봉 기대승의 정신을 기리는 월봉서원에서 공연하게 됐다. 

문화해설사의 이야기를 통해 알게 됐다. 정말 그 시대에 가능했을까 라고 할 정도로 정말 대단한 것이었다. 460여년 전, 32살의 고봉 기대승과 58살의 퇴계 이황은 13년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120여통의 편지를 주고받았다. 많은 편지에는 사단칠정논변으로 8년이라는 시간동안 논쟁을 통해 성리학의 큰 발전을 이루게 됐다. 서로에 대해 극존칭하며 나이, 지역, 신분을 초월한 진정한 브로맨스(브라더와 로맨스의 합성어)였다. 이런 이야기가 광주에 있었다는 것 자체가 신기할 뿐 아니라 몰랐다는 것이 부끄러웠다. 반드시 오페라로 무대에 올리고 싶었다. 

지난해 10월16일. 3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준비해 광산문화예술회관에서 오페라 ‘조선 브로맨스’ 이름으로 문진영 작가님과 함께 무대에 올렸다. 




2017년 겨울, 양림동에 있는 충견상 설화를 중심으로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한 이야기배달부 동개비의 구연동화 모습을 보고 좀 더 업그레이드 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 제작자와 미팅을 하게 됐다. 아이들에게 교훈적인 내용이 많았던 이야기배달부 동개비는 6개월간의 시행착오 끝에 구연동화와 클래식 앙상블 연주, 라이브 샌드아트가 어우러지는 새로운 형식에 공연콘텐츠로 제작됐고, 2017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기획공연과 2018년 ARKO 신나는예술여행에 선정됐다. 

2018년 어린이 오페레타 ‘황금용과 길동이’는 광주 광산구, 장성을 지나는 황룡강을 모티브로 만들어졌다. 황룡강에 사는 작은 용이 길동이의 도움을 받아 황금용이 돼 승천하고 황금용은 친구가 된 선물로 길동이에게 붉은 모자를 선물해 ‘홍길동’이 되는 과정을 그렸다. 공연의 작품성을 인정받아 광주정보문화산업진흥원의 스토리 제작지원,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기획대관, 2019년 ARKO 신나는예술여행에 선정됐다. 

앞서 말했던 광주를 주제로 제작한 콘텐츠 외에도 양림동에서 활동한 시인을 주제로 작곡한 가곡 ‘양림, 시인의 마을’, 무등산, 김덕령 장군, 광주의 정체성을 이야기한 가곡 ‘광주의 노래’ 등이 있고, 현재도 다양한 주제로 작곡을 하고 있다. 
                                        

2017년 광주 남구 양림동의 충견상 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야기배달부 동개비’ 캐릭터와 2018년 황룡강을 모티브로 한 어린이 오페레타 ‘황금용과 길동이’ 공연 모습.


광주에 대한 곡을 작곡하다보니 내가 숨 쉬고 밟고 있는 이 곳을 바라보게 된다. 나는 광주에서 태어났고 한 번도 타지에서 살아본 적이 없다. 어느 지역보다 광주를 잘 안다. 광주의 가치는 어디에서 나오는가. 바로 ‘나’이다. 풍요로운 도시, 인권과 민주의 도시, 어머니처럼 정이 넘치는 도시, 광주. 난 음악을 통해 아름다운 광주를 널리 알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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