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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빙산 Mar 26. 2024

육아는 실험이다

그래. 이번이 우리의 정답. Third Time's the Charm

1. 육아는 개인에게 허용된 유일한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실험"일지도 모르겠다.


아동발달심리전문가들이 주목 받는 요즘이지만 그들이 배운 이론과 학설은 과연 진정한 의미의 '과학'일까?

자연과학이 재현가능한 것들을 관찰하며 법칙을 추론해내고 응용하고 이론을 만들어낸다면, 사회과학은 흘러가는 시간 속에 재현불가능한 것들을 비스무리하게 단순화 시켜서 이론을 만들어낼 수 밖에 없다.

실험의 가정 뒤엔 사실 시대의 철학이 많이 개입되어 있다.

아무도 A라는 아이를 같은 시간대에 낳아 같은 환경에서 기르며 같은 결과를 도출해내는 지 알 수 없다는 의미에서 하는 말이다.


학계에서 다루는 사례들은 주로 보편/정상의 범주이기 보단 병적이거나 특이한 사례를 위주로 연구하고 그 해결책을 제시한다. 전문가들의 진단이 대중화 될 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측 가능하다.


(ADHD라는 단어가 없었을 때, 그런 유형의 아이들은 단순히 "특별히 에너지가 넘치며 활발한 남자아이"였을 거다. 지금은 남들은 잘 앉아 있는데 혼자 산만하다고 심리상담을 받거나 약물처방까지 이어지기도 하지만. 원래 남자아이들은 대부분 앉아서 책을 읽기보다 뛰어노는 걸 선호한다. 책을 좋아하고 얌전히 앉아 있는 게 특이한 경우거나 사회화된 것일 뿐이다. )


육아를 하며 만나게 되는 많은 '이론'들을 실제 적용하며 실험하는 건 쉽지 않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현실과의 타협'을 하거나, 감성 위주의 판단을 하여 '본능적' 선택을 해왔을 것이다. 어떤 원칙을 지키기 얼마나 어려운지, '독한 ㅇ' 소리 수십번 들어보지 않은 사람만 알 거다.


다행히(?) 나에게 세 명의 아이가 있다.

2020년, 2021년, 2023년 터울이 크지 않아 그나마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아이들이다.

일단 시간대가 좁기 때문에 분명 2010년에 하나 2020년에 하나 키워본들 보다는 시대배경이라는 변수가 최소화된 실험이 진행된 거다.


2.  비교대조를 위한 초석


# CASE 1 : THE LOVABLE PROTOTYPE


첫째를 임신했을 때, 임신대백과, 육아대백과 두꺼운 책을 두 권사고, 한국어로 읽으면 해석상의 오류가 있을 수 있으니 포스트-잇에 중요한 내용들을 번역해서 집안 곳곳이 붙여놨다. (박사학위 소지자시지만 -아니, 어쩌면 그래서 더욱- 책을 읽는 걸 안 좋아하신다)


유튜브에서 맘똑TV, 하정훈의 삐뽀삐뽀소아과, 베이비사이언스TV 등 수많은 채널들 중에서 정서적 위로보단 실질적 지식을 제공하는 채널을 선별하여 메모를 하며 공부했다.

자연주의출산이란 걸 권장한 대학교 후배 덕분에 그 쪽으로도 알아봤지만, 임신 초기에 있었던 교통사고 때문에 연세세브란스 병원에서 진료를 시작했기에 출산도 상급병원에서 하게 되었다.

아-무-것도 내 맘대로 되지 않았고, 난 "환자"의 보호자로서 의료기관의 지시에 따르는 수 밖에 없었다.


그나마 병원에서 나오고나서는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 가장 편한걸 선택하기 위해 조리원 대신 산후관리사가 집으로 오는 걸 선택했다. 병원에서 알려준대로 혼합수유를 하고, 아내의 상처를 관리해주고, 마사지를 해주고, 알려준 것들을 잘 따랐다.


자습한 것들과 어긋나는 것들도 꽤 있었지만 대형병원에서의 출산을 경험해서인지 그 권위자들의 지시를 따르고 있었다.


24시간 모자동실이 좋다는데... 라고 생각하면서도, 코로나19 때문에 병원 지침이란다.

첫째 아이는 뻣뻣한 녹색천으로 닦아지고, 엄마 품을 피부로 느끼지 못하고,  투명한 통에 담겨 여러 검사를 마치고 신생아실로 갔다. (유도분만이었지만 문제가 될 만한 의료적 소견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평범한 출산이었다.) 그렇게 2박 3일 동안 엄마와 떨어져 밝디밝은 방에서 우는 아기들과 합숙을 하는 것이 이 세상의 첫경험이 되었다.


배운대로 하지 못한 또 다른 이유. 첫째를 출산 후에는 막상 첫 임신, 첫 출산을 경험하고 있는 아내의 기분이 최우선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아는대로, 배운대로 하는 게 편한 습성(?)의 남편은 '기분 내키는대로 해야 편한' 아내의 습성을 이해하려 노력하지만 그게 또 쉽지 않았다.


'안 아프게 수유하는 법', '젖이 잘 돌게 하는 법' 등 '외주화'가 보편화된 일련의 산후케어서비스를 '홈메이드' , 아니, 'By Husband'로 진행했고, 배운대로 하니 잘 될 때도 있었지만, 아내 기분대로 할 땐 또 잘 되지 않았다. 이 인과관계 법칙 좋아하는 남편은 A대로 하면 B가 나오는 걸 경험하니 더더욱 정석을 강조했고, 성격이 털털한 아내보다 섬세한 남편이 수유를 제외한 모든 영역에서 엄마보다 우수한 것처럼 보이니 아내도 자괴감이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그냥 남편에게 다 맡겨서 속 편했을지도 모르겠다. 아내는 둘째 돌이 지날 때까지 분유를 몇 도에 타야하는지도 몰랐다.)


가장 어려웠던 것은 '먹-놀-잠'.

그 놈의 먹-놀-잠, 그 패턴을 해내야 아이가 충분히 먹고 잘 잔다는데, 첫째는 먹을 때 마다 잤다.

아내는 깨울 의향이 보이지 않는다. 노력했다고 하지만 나긋나긋한 소리로 몇 마디, 그리고 아이가 수유에 집중하는 동안 핸드폰을 창문 삼아 '쉬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

아빠가 옆에 앉아 발가락을 만지고 말도 걸 때도 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아빠가 있으면 아빠 보느라 안 먹는다.  


아빠 OUT.


수유를 마치면 잠든 아이가 고대로 눕히면 토할까- 배운대로 15분-20분을 안고 트림이 나오길 기다렸다.

'이거 가스 안나오면 자다가 배앓이 할텐데, 그럼 또 잠들자마자 또 깨서 달래야겠지?'

미래지향적 아빠의 대응법이었다.


아내는 수유하느라 수고하셨으니, 아이가 기저귀 때문에 깨면 그것도 내가.

군대에서 불침번도 서보고, 화생방훈련도 했는데, 그런 거 안해본 아내보다 내가 더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코로나 때문에, 또 어린 아기 고생시키고 싶지 않아 귀국할 수 없는 아내를 배려했다.

(코곤다고 다른 방에서 따로 주무시는 걸 권장 받은 아버지들 중 한 명이 되지 못했다. 나도 피곤할 때 코 고는데...그런 '혜택'을 누리신 남편들은 그게 아내의 어마어마한 배려란 걸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 그걸 누리지 못한 아빠 1호는 생각합니다...)


아내를 배려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지만, 육아라는 공동과제에서 드러난 '사랑하는 두 사람의 엄청난 차이'를 경험하며 자주 다퉜다. 내가 이렇게 '일 못하는 사람'에 대해 관용적이지 못했다니. 스스로에게도 실망하고 반성하는 날이 많았다.

수면부족에 긴장상태가 이어지니 아무리 성격 좋은 사람들이라도 폭발하기 쉬운 조건 1,2가 구비되었고, 산후 호르몬도 한 몫 했을 지 모르겠다.


......

그러던 중, 계절이 바뀌고, 좀 익숙해지니 '사이 좋았던 어느 날들'이 이어지고, 계획보단 '순리'를 좋아하는 두 사람에게 찾아온 몇 번인가의 친밀한 시간들.

......


첫째 아이가 아직 기저귀도 못 때고, 말도 잘 못할 때, 아내 뱃속에는 둘째가 생겼고, 집에는 산모이자 임산부가 다시 '생겼다'. 연년생 동생을 맞이해야 하는 상황.


그래도 코로나19가 창궐하던 기간이라 재택근무가 대부분이었고, 하루종일 가족이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았다.



# CASE 2: 첫째 출산 500일 후. 경력직의 탄생


육아경력직이라고 하기엔 아직도 신입인 것 같은데, 둘째가 태어났다.

그래도 노력으로 긍정회로를 돌릴 수 있는 어른이 되었기에 속 편하게 생각했다.


'그래, 다 잊고, (육아 아이템) 다 버리고, 다시 시작하는 것보다 이게 더 쉽겠다.'


아직도 벽 곳곳엔 아내를 위해 번역해서 적어놓은 육아 팁들이 포스트-잇으로 붙여있었다.


둘째는 부모님을 포함한 주변 지인들이 추천해준 'ㅇㅎ산부인과'라는 곳에서 낳기로 했다.

당시 거주지에선 20분 정도 떨어진 곳이었지만, 한강을 건너 회사분들이 추천해준 유명한 곳(ㅁㅈㅁㄷ)을 가는 것보단 나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이 곳에선 '모자동실'을 원칙으로 한다고 했다.


'코로나19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는데? 세브란스병원 같은 상급병원이 아니라서 자주적 정책을 선택할 수 있는건가?'


그렇게 둘째는 태어나자마자, 엄마 품(피부)에 그리고 아빠 품에서 캥거루케어를 하며 맞이할 수 있었다.


허나, 지난 번처럼 산후조리원에 가지 않기로 한 우리들에게 찾아온 '유혹의 천사'가 있었으니.....

그들은 간호사였다.


산모의 휴식을 위해 수유 후에 잠들면 아이를 신생아실에서 데리고 있겠다고 한다.

휴식이 필요한 아내에게 이걸 거절하는 '못된 남편'이 될 수 없었다.


수유를 하는데 젖량이 부족한 것 같단다. 아직 젖이 안 돈단다.

DAY 1에 바로 혼합수유 결정.


게다가 유산균을 사란다. 남들도 그렇게 한다고.

응? 세브란스병원에서도, 이 곳의 원장선생님은 그런 거 권유 안했는데?


이미 먹였단다.


영어로 구글 검색을 해본다.

자연분만을 통해 출산한 신생아는 유산균 투여가 필요하지 않다는 게 주류의견.

덤으로 체내의 유산균 군(group)들이 체내에서 경쟁을 한단다.


하아.

근데 이미 늦었다.

주도권은 넘어갔다.


전문인력을 앞에 두고 '심신이 쇠약해진 부모'가 의사결정의 주도권을 놓은 사례.


밤에 아내에게 물을 떠주러 나갔더니 그 '신생아실이 아닌 신생아실'엔 문이 열려있었다.

아기 1의 울음소리가 먼저 하얗고 차가운 바닥을 울렸고, 그 울음소리에 놀란 듯 아기 2도 따라 울었다.

 

내일 모레면 11월인 가을밤.

내 딸의 울음인지, 다른 아기의 울음인지 구분도 안되는 출산 후 D+1.

창문은 열려 있고 창밖으로는 자동차가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아. 내가 왜 우리 아기를 '남'에게 맡겼을까?'


우리가 부모인데.


아직 아내가 자고 있으니 당장 상황을 바꿀 수 없었다.

그리고 다음 날 밤, 둘째는 수유 후, 아빠의 배에서 기대서 자거나, 바닥에서 자는 아빠 옆에서 사이즈가 딱 고양이 화장실 만한 투명한 통에서 잠을 잤다.


'베이비타임'으로 수면, 수유, 기저귀 교환시간 기록하기도 바쁜데 인스타에서 뭘 할 시간도 없었다. 하지만 언젠가 봤던 영어권 인스타그램에선 엄마들의 감성 넘치는 릴스 중 한 문구가 가슴을 때렸다.


"신생아에겐 1시간 하루와 같다"(?)


갓 태어난 아이에게 시간 개념이란 게 어떨지 인터뷰를 할 수 없으니 정확히 알 수 없겠지만, 어른들이 잠을 자고 일어나는 걸 하루의 시작과 끝의 기준으로 가정한다면...?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신생아를 '드래곤볼'의 시간과 공간의 방에 아이를 방치한 것 같은 죄책감.


(아, 물론. 털털한 우리 아내는 공감이 안되나보다.

이런 육아기 센티멘털리즘은 육아 투입도가 높은 나라는 아빠의 애매한 후유증, 내지는 부산물인가보다.)



출산 후, 부모님께서 우리 집으로 와서 첫째를 봐주고 계셨는데, 첫째 아이와 영상통화를 했다.

주책맞게도 아빠는 우는 첫째를 보고 ...(아내도 안 우는데) 울어버렸다.


난 분명 각 수치 차이가 크지 않은 INTP 와 INFP의 경계선에 있는 이성적 인간인데 왜 그렇게 눈물이 났을까.


우리는 3일차 짐을 싸서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 돌아가서 당황하지 않았다.

이것저것 미루다가 아기방 준비가 늦어지긴 했지만, 여차저차 카시트에서 잠든 아이를 두고 방을 만들고,

능숙하게 기저귀를 갈고, 분유를 먹였다.


밤에 아이가 울어도 불도 안키고 조용히 기저귀를 갈 수 있었고, 이젠 70도 물에 분유를 38도까지 낮추려면 흐르는 물엔 몇 십초, 담겨있는 물엔 몇 십초 라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육아지원이 가능했다.


둘째라지만 아직도 목을 못 가누는 아이를 트림 시키는 건 여전히 불안불안했지만, 이 아이를 보며 계속 웃음을 지을 수  있었다.


둘째니깐 먹-놀-잠을 성공했을까?

아니다.


몇 일 지나자, 둘째는 정말 '분유먹던 힘'을 다 쥐어짜서 젖병을 거부했다.

누가봐도 먹기싫고 맛없다는 표정.

그래도 기회는 이때다 - 하고 모유수유 100%를 강요할 수 없는 게 아내를 배려하는 남편의 자세.


산양분유로 바꿔본다.

안 통한다.

 

아내는 억지로 수차례 먹이려 하다가 결국 손을 든다.

그렇게 '모유수유-온리'의 기간이 시작되고, 아빠는 더 이상 남은 분유를 먹지도, 자다가 깨서 분유통을 씻을 필요도 없었다.


그렇게 아이가 백일이 지났을 무렵인가?


봄이 되고, 아빠의 생일이 되더니 코로나19는 아직도 만연한데, 동생의 주도 하에 생일식사가 이뤄졌다.

동생은 빨간 버스를 타고 우리 집에 왔고, 부모님도 오시고, 마침 둘째의 예방접종도 있어 동네 소아과를 다녀왔다.


그 날 밤.

아내는 열이 나기 시작했다.


다음 날, 코로나 검사를 하러 구청까지 아내를 데려다주고 돌아오는 길.

엉덩이가 아프다. 등산을 한 것도 아닌데 근육통이다.


그렇게 우리는 2022년 봄, 온 식구가 뉴스에서보던 코로나19를 체험했다.

(동생이 백신 접종 후, 심근염과 부정맥 반응을 보여, 나도 아내도 백신을 맞지 않은 상황이었다.)

다행히 열도 몸살도 2일만에 잡히고, 남은 3일도 인후통과 기침이 있었지만, 정부에서 안내한 것처럼 '약한 녀석'이었다.


그렇게 나는 첫째를 데리고 거실에서 자고, 아내는 둘째와 침대에서 잤다.

그리고 '눕수'(누워서 하는 수유)의 시대가 펼쳐졌다.

* 누워서 수유하면 중이염이 발생할 확률이 20%(?) 높다고 배워서 첫째 때는 절대 하지 않았다*


먹-놀-잠은 무슨.

잠/먹 - 안잠- 먹-잠- 금방 깸 - 먹/잠 - ..금방 깸의 시대가.




3. 비교분석 : 첫째와 둘째


자, 여기서 두 아이가 겪은 출산비교를 해보면 우선 당시 배변패턴이 너무 차이가 나서 경이로웠다.

자연유산균 (엄마꺼)과 공장유산균 (간호사가 타 먹임)의 차이일까.


그 외에 다른 점이 있었다.


첫째는 소리내어 웃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쌩뚱맞게 박스테이프를 떼는 소리에 빵 터져서 신나했다.

그것도 100일이 지난 후였을까.

종종 자면서 '배냇짓'을 했고, 아빠가 억지로 '이건 아빠를 보고 미소 지은 거'라고 해석할 수 있는 장면도 있었지만, 웃지 않았다.


반면에, 둘째는 첫째에 비해 빨리 웃었고, 자주 웃었다.


이걸 처음에는 '둘째의 생존본능'이라는 과학적 근거가 부족한 해석을 받아드렸었다.


하지만 지금은 셋째의 출산을 준비하며 공부한 내용 중, 가보 마테 박사, 고든 뉴펠드 박사의 책과 강의 내용을 더해서 좀 더 의미있는 (것 같은) 해석을 하는 것도 가능하다.


※참고: 육아특집: 3부-육아 철학/이론 비교 (조던 피터슨 vs. 가보 마테+고든 뉴펠드) - (주제: 수면교육, '타임아웃', 영유아 영상 (tistory.com)


첫째가 이 세상에 처음 왔을 때, 부모의 체온과 체취가 필요한 연약한 상태에서 의료적 효율을 목적으로 로 이 아이는 부모와 떨어졌다. 그리고 고아도 아닌데 3일째가 되서야 부모가 안아볼 수 있었고, 그제서야 '남'이 아닌 '익숙한 목소리'를 듣게 된거다.


가보 마테 박사는 나치독일 시절의 홀로코스트 생존자이다. 그의 어머니는 출산 후, 의사의 조언에 따라 아이를 남에게 맡겨야하는 상황이 잦았고, 자주 우는 아기를 안아주지 말라는 의사의 조언에 따랐다.

출처: https://drgabormate.com/

중독, 트라우마 심리전문가가 된 가보 마테(Gabor  Maté) 박사는 자신이 겪은 상황을 이렇게 해석했다.


자신의 필요는 채워지지 않았고, 자신은 사랑 받을 가치가 없는 존재로 느껴졌을 거라고.

그게 끊임없이 성장 과정 중의 자아에 영향을 미치고, 그게 자신이 경험한 중독에 이르도록 일조했을 거라고.

(물론 아이를 신생아실에 맡겼다고 아이가 중독자가 된다는 단순한 논리가 아니라, 심리학적으로 아이가 겪었을 수 있는 마음의 상처를 이렇게 표현한거다)


우리 첫째는 인생의 첫 3일간 자신을 약 10개월간 품어준 엄마의 체취를 맡지 못했으며, 엄마의 사랑의 손길을 받지 못했고, 아이 면역력에 그렇게 좋다는 '초유' 대신 남양분유를 담은 실리콘 젖꼭지로 영양을 공급 받으며 보낸거다.


이렇게 해석하면 또, 둘째보다 안 웃었던 그 시절이 이해가 된다.

나름대로 말이 되는 것 같기도 하다.


둘째는 다르다.

태어날 때, 엄마 아빠의 목소리가 반겨줬고, 엄마의 체온을 느끼며 2시간, 아빠의 체온을 느끼며 3시간을 함께 했다. 아마 첫째 아이에 비해 자신을 맞이한 이 세상에 대한 인상이 좀 더 좋지 않았을까?



또 다른 게 있다면, 그건 더 자주 웃는 부모라는 요소가 있다.


첫째 때는 늘 긴장상태였다.

케어할 때도, 아이가 울 때도, 아이가 놀 때도, 늘 조심스러웠고 신경이 곤두서 있었던 것 같다.

웃으며 아이의 기저귀를 갈 수 있게 될 때까지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던 것 같다.


기저귀는 잘 채워졌는지, 응가가 "앞"으로 들어갔는데 혹시 잘 닦지 못한 건 아닌지, 그래서 기저귀 피부염이 생기는 건 아닌지, 트림은 잘 나왔는지... 사랑이 저변에 깔린 '사무적 태도' 였을까. 아빠는 집에 있는 간호사였을까.



4. '준'과장급 경력자의 '종합'(?)분석


셋째는 아들이다.

출산부터 귀가까지 24시간 모자동실을 했다.

초유의 양은 원래 적고, 엄마 뱃속에서 태아가 제공 받은 양분이 있기 때문에 배가 고파서 우는 게 아니란 것도 짐작가능했다.  


잘 생각해보면 꽤나 논리적이라고조차 말할 수 있다.


출산에 힘을 쏟은 엄마가 갑자기 바로 콸콸 솓는 모유를 뿜어낸다?

뱃속에서 탯줄로 방금 전까지 영양 공급 받고 나왔는데, 바로 배가 고프다?


의료기술이 발달하기 전 자연상태의 인류는 어떻게 했을까?

병원도, 분유도 없던 그 옛날.


아기는 분명 엄마가 없으면 생존할 수 없는 존재이지만, 엄마와 아기가 서로를 "도울 수 있는" 공생 관계의 영역도 분명 존재한다는 걸 지난 두 번의 출산을 통해 경험했다.




셋째는 눈만 20초 정도 마주치면 웃는다.

소리없이 입을 벌려 웃기도 하고, 신나하며 웃기도 한다.

그리고 우리의 시선을 늘 따라온다. 우리의 눈길을 늘 갈구한다.

아기가 자길 보고 웃으니 엄마 아빠도 눈 마주칠 때마다 더 웃게 된다.


무엇보다 (거의) 울지 않는다.

이상했다.

아기는 다 우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배고프면 배고프다는 쩝쩝, 입맛 다심, 손빨기가 있고, 기저귀가 젖으면 '말'이 많아져서 칭얼댄다.


"아들이라 순하네/둔하네" 라는 단순화된 이유 대신 가보 마테 '트라우마 분석'과 고든 뉴펠드 박사의 '애착이론'을 대입해서 해석해보면 또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


#1 온혈동물이 가진 '본능' 중 '부모지향성parent-orientation'이란 것이 있다.

가장 알기 쉬운 예는 알에서 깨어난 새끼 오리가 제일 먼저 보게 되는 대상을 부모로 인식하는 것.

고든 뉴펠드는 책을 통해 그 부모지향성이 아이가 부모를 만지고 싶게 하고, 만져지고 싶어하게 하고, 닮아지고 싶게 한다는 주장을 펼친다. 그리고 현대사회에서는 여러 환경에서 이걸 경시하는 문화가 만연하다고.


우리 셋째는 이 부모지향성을 잠시나마 충족시키지 못했을 시간이 없었다고 볼 수도 있다.


#2 출생 직후부터 지금까지 부모가 아이를 지켜봐왔다.

24시간 모자동실을 하고 집에 데려왔다.

실리콘 젖꼭지도 분유도 먹일 필요가 없었다.

아이가 배가 고플 때가 아니란 걸 알고 있었으니.


출산 후 3일째부터 산후조리원 대신 집에서 함께 지냈다.

이번에도 산후관리사를 신청했지만 셋째를 맡기지 않았다.

목욕은 아빠가, 수유는 엄마가, 트림은 아빠가, 재우는 건 아빠 없을 때만 엄마가.

갖 태어난 아가가 타인의 품에 잠드는 걸 적응시켜놓고, 그 피고용자가 사라지면 아기가 다시 부모에게 '재적응'을 하는 루트를 피하기 위해서이다.


결과는 대성공.


Third Time is the Charm.

삼세판에 성공.


우리는 자연스레 아이가 배고파 하는구나, 졸려하는 구나, 불편하구나, 안겨지고 싶구나- 알게 됐다.

(..아내는 아직 배고파 하는 걸 잘 캐치하지 못해서 시간제를 운영하지만...)


첫째 때는 그렇게 그게 구분이 안됐다.

영어권 유튜브에 그렇게 'baby whisperer' 들이 설명하는 '아기 울음소리 차이'를 분석해도 배가 고픈 건지, 기저귀를 갈아달라는 건지, 졸리다는 건지, 다 해보고 아니라는 걸 알았다. 특히 졸리다는 건, 졸린데 왜 안자는지 엄청난 정신적 체력적 소모전이었다.


어쩌면 정말 엄마 아빠의 사랑으로 이 아이의 시간이 채워져서, 아이가 엄마 아빠의 사랑을 '다시' 신뢰하게 될 수 있을 때까지 ... 첫째는 3일 간의 고아체험의 트라우마에서 살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은 정상적인 반응을 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니깐.






이 외에도 출산 전에 추가로 알게 된 한국 '출산업계'의 이면에 대한 경각심도 있었다.


소아과 의사 하정훈 선생님만 알고 있었는데 배우자도 산부인과 의사였고, 그 채널에서 모유수유를 어렵게  하는 한국 산부인과-산후조리원이 연계된 의료시스템에서 비판적인 내용을 섭렵했다.


생각해보니 정말 그랬다.


1) 고통이 따르긴 하지만 자연의 섭리라고 할 수 있는 출산을 앞둔 산모를 '환자'로 취급한다.  

전문가(생판 남)가 와서 젖이 잘 나오게 한다며 유방마사지를 하고 '젖몸살'을 예방한다며 주무른다.

그러다가 유선이 다치기도 하는 사례도 있다고 한다.

젖몸살? 아기가 엄마 옆에서 배고플 때마다 젖을 먹으면 생기지 않는다.

그걸 떼어놓고 아기가 배고프다고 울면 그제서야 준비시켜서 산모-신생아의 재회를 주선해주고, 그게 산모의 휴식을 위해서란다. 물론 젖몸살을 예방하는 마사지는 무료제공서비스가 아니다.


2) 산후조리원 대신 '산후관리사'를 집으로 불렀을 때, 업체를 조사하면서 '산후관리사 자격증' 기간과 교육과정을 훑어본 적이 있다. 분명 베테랑이 있고, 많은 경험이 주는 체득한 지식이 있을수 있겠지만, 그 교육과정에서 산부인과 의사들이 쓴 출산대백과, 육아대백과에서 언급하지 않은 내용은 없을 거다.


출산을 처음 경험한 육아초보 부모들은 심리적으로 취약하고 '전문가'가 '등판'하자 '구원투수'로 인지하기 쉽다. 하지만, 많은 분들은 업무경력이 긴 '보조역할'로 봐야 적합하다. 그게 안전하다.

그들은 간호사가 아니고 (간혹 간호사 출신도 있겠지만) 의료지식보단 아이들을 다 키우고 다 까먹은 육아지식을 새로 '학원'에서 단기속성으로 배운 이들이다.


그들 중 일부는  아이들을 잘 돌보기 때문에 그걸 '천직'으로 삼아 책임감 있게 나의 소중한 아기를 돌보러 와줄 수도 있겠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단순히 일자리를 찾아 돈을 벌러온 업체의 '직원'일 가능성이 더 높다.


뉴스에 가끔 나오는 '영아 학대 사건'은 빙산의 일각일 수도 있다.

신생아를 타인에게 맡기고 외출을 한다는 게 난 뉴스를 보기 이전에도 그렇게 위험하게 느껴졌다.  


온갖 고생을 하며 뱃 속에서 키운 아가를 제일 잘 알아야하는 건 엄마고 아빠다.

남이 아니다. 가장 소중하게 내 아이를 다뤄줄 수 있는 마음가짐을 갖은 게 우리 부모이다.

신생아는 정말 생존력이 낮은 존재이고, 부모가 자연적으로 갖게 되는 그 '조심스러움'이 아이의 안전을 위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산후관리사에게 목욕 시키는 법을 배울 수 있겠지만 그들이 아이들을 대하는 손길을 자세히 살펴보면 엄마, 아빠의 조심성이 없다. 그저 능숙할 뿐이다.


3) 둘째까지 키워보고 내가 내린 결론이다.

위 유튜브 영상들에서 '출산 비지니스'에 대한 비판은 대부분 합리적이다.

음모론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보편화된 출산문화는 '엄마를 위해서'라는 마케팅 문구에 '모자' 간의 과학적 지식이 가려진 안타까운 사례이다. 인류 역사상, 이렇게 출산을 신체적, 정서적, 경제적 '질병'으로 바라보며 엄마를 위한다며 아기와 엄마를 떼어놓았던 역사는 공산주의 국가에서나 있던 일이다.



물론 비자발적 선택으로 자연분만을 하지못하고 제왕절개를 한다거나, 위급한 상황 등에 처한 예외적인 산모도 있겠지만, 어쨌거나 자궁 밖에서 나온 아기에게 제일 필요한 건 엄마이고, 산후관리에 가장 큰 도움을 주는 것도 아기일 수 있다. (물론 남편의 협조가 적극적으로 필요하다)


미국, 영국에서 살다온 한국인 후배들은 '친구들도 다 집에서 낳더라구요' 하며 가정출산을 진행하기도 한다. 서구여성들의 골반이 더 넓고 동양여성들의 골반은 좁아서... 라는 해석이 와닿지 않게 하는 체형의 소유자들이다.



5. 육아에 필요한 (자연) 과학적 지식 - 물리학


(1) 첫째 아이에게 수유할 때, 첫 5일간 아내는 자주 울었다.

너무 아프단다.


분석적인 남편은 '해결사'가 되고 싶다.

잊혀진 고전 '화성에서 온 남자, 목성에서 온 여자'가 딱 맞는 부분이다.


실리콘 유두보호기부터 유축기까지 다 알아봤지만, 유축기가 더 아프다는 친구 덕분에 유축기로 대체하지 않았다.


안아프게 수유하는 법이라는 영상을 여러 개 섭렵하고, 남자 주제에 감히 슈유에 대해 분석해봤다.

물리학 공식을 쓰지 않더라도 힘과 면적의 상관관계를 생각해보면 깊게 물려야 안 아픈 게 당연하다. 유두는 민감한 부위인데 생존을 위해 빨아대는 아이의 흡입력은 그 작은 신체에서 이런 힘이 있는 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세다. 유두를 빨게 하면 아픈 게 당연하다. 유륜, 더 튼튼한 살까지 물게 하면 압력이 분산되고 민감도가 낮은 피부가 그 힘을 받고, 나머지는 모체의 액체가 아이의 '진공흡입'(이라고 할 수 있을)이 구강 내에 이뤄져서 바로 식도로 넘어가는 거다.  


(2) 허리가 아프단다.

맘똑TV에서 바른자세를 가르쳐준다.

수유쿠션을 사용하는 방법부터 허리를 꼭 기대고 편한 자세로 하라는데, 남편이 볼 때, 딱 '안 좋은 예'의 자세이다. 아기가 엄마 젖으로 '오게' 자세를 잡아야지, 엄마가 수그려서 아가 입에 젖을 물릴려 하니 목디스크 유발하는 자세로 수유가 이뤄지는 거였다.

잔소리 한다고 쫓겨난다.

수유쿠션을 새로 사서 바꿔준다.

수유의자도 바꿔본다.


자세가 안 달라지면 유두가 아니더라도 아플 곳은 있다.


(3) 아내가 첫째 아이를 안아서 재우고 침대에 내려놓을 때 자꾸 깼다.


울리며 재우는 걸 하기 싫은 아내.

그러면 개고생할 걸 알면서 또 이 수면교육법에 대한 또 다른 해석과 부작용을 고려하자니

'그래, 너 하고 싶은대로 해' 하며 한 발 물러선다.


그럼 남은 건 안아서 재우는 건데, 안아서 잠이 들면 문제가 있다.


단순히 '등센서'로 통용되는 게 주류해석이지만, 분석(병)적인 시선으로 아내의 동작을 관찰한다.

아내는 잠든 아이의 고도와 이동경로의 각도, 가속력을 최소화 하지 않고, 가히 역도선수가 바벨을 내려놓는 듯한 속도로 아이를 내려놓았다. (물론 쿵 소리는 없다)


(시간이 있었다면 그래프로 이걸 시간t, 속도v, 고도h로 표시한 그래프로 표시하고 싶은데, 지금은 너무 늦었고 생존을 위한 수면을 취할 시간이다.)


아니, '인셉션'에서 봤듯이 잠든 상태에서도 영향을 받는 지각에 대해 인지하지 못하는 건가?  

(아내는 영화를 안 좋아한다...드라마파)


첫째 아기의 머리는 85도의 경사에서 농구선수의 슛 모션 후의 팔로우쓰루(follow-through)의 동선까지 넣어가며 위에서 아래로 향했다.

이건 등센서가 문제가 아니라 자고 있는 아기가 깰만한 위치 변화 인거다.


남편이 다시 재워서 시범을 보인다.

천천히 천천히 아-주 천천히.

고도도, 가속도도, 하강시 스무스한 랜딩을 하는 조종사처럼 착지.


등센서는 없다.

터프한 엄마가 있었을 뿐이다.

(적어도 우리 집엔)


물론, 느리게 움직이기 위해선 더 많은 에너지와 근육량이 필요하니, 이건 신체적 한계가 한몫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문득 떠오르는 건, 신혼초기 새벽에 나에게 이불을 던지는 아내에 깼던 기억.

아침에 물었다.

 "근데, 왜 나 자고 있는데 이불을 던져?"


아내가 말한다.

"추울 것 같아서 이불 덮어준 건데?"


이불을 덮어주는 동작은 주로 두 손으로 살포시 이불을 펴서 두 어깨 위로 살며시 내려놓는 이미지가 떠오른다. 하지만, 내가 본 동작은 식탁보를 펼치듯 (그것도 한 손으로!) 내 위에 이불을 던지는 것이었다.




4) 또 아기는 '깊은 잠'에서 '얕은 잠'으로 넘어올 때, 잠결에 자신이 잠든 자세가 아닌 걸 아는 것 같다.

엄마 품에 기대서 잠들었으면 중간에 얕은 잠 상태가 됐을 때, 같은 자세가 아니면 거기서 불안을 느낄 수 있는 거다.


그래서 등을 대고 재우라는 거다.

(물론 어렵다. 첫째는 책을 읽어주며 재울 수 있는 돌이 지나서야 누워서 잤고, 둘째는 엄마의 '눕수'로 누워서 잤으니...이건 반칙)




이렇게 (나에겐) 재미있는 소소한 기억들을 브런치에 적을 수 있다는 것.

세 아이에 대해 글을 쓸 수 있다는 것.


이게 아마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을 위해 사는 아빠'가 옳다고 생각한 방향을 위해 한 선택의 결과 중 하나일 거다.


아빠의 과학실험은 세번째 시도 끝에 성공....의 시작이라고 해두자.

(아직도 멀었다. 아직 돌도 안 지났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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