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자살하려는 사람을 잡아다가 죽이겠다고 협박을 해봐요. 그 사람이 아. 나 죽고 싶었는데 잘 됐다. 죽여라. 그럴까요? 아닐 걸요. 제발 살려 주세요. 그럴 거예요. 왜 그럴까요? 사람은 극한 상황에 가봐야 자신을 바로 볼 수 있어요. 시련은 나쁜 게 아니에요. 시련을 겪어봐야 내가 뭘 원하는지 알 수 있어요."_ 법륜스님
조금 혼란스러웠다. 죽고 싶은 생각이 들 때 정말 나는 죽고 싶은 걸까. 나를 죽이고 싶은 건가. 죽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냥 죽고 싶고 아무도 나를 죽여주지 않으니 내가 그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나를 괴롭히고 싶을 만큼의 상실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사람들은 실수했을 때나 숨고 싶을 때 습관처럼 죽고 싶다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온다. 하지만 정말 죽고 싶은 건 아닐 거다. 어쩌면 그걸 생각해 본 적도 없을 거다. 정말 죽고 싶은 사람은 죽고 싶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어느 종교에서나 가장 큰 죄는 살인이며, 특히 자신을 스스로 죽이는 자살은 신의 용서를 받을 수 없다.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나라도 언제나 스스로를 사랑해야 한다.
나이 들면 죽어야지라고 자주 말하던 우리 할머니는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어느날부터 평생을 의지하던 무속신앙을 버리고 교회로 갔다. 그러면서 할머니의 입에서 나이 들면 죽어야지라는 말은 사라졌다. 할머니는 늘 밝은 분이었다. 할머니의 친정은 황해도 최고 갑부였다. 할머니는 할머니가 일곱 살 때까지 발에 흙이 묻을까 걱정하는 조부모님 때문에 유모의 등에 업혀 다녔다고 했다. 1912년생 할머니는 당시에 남자아이들만 다니던 서당에서 공부를 했고, 그 당시에 무려 연애결혼을 했다. 황해도 미인대회 출신의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외모만 보고 결혼을 했다. 아마 선남선녀 커플이었을 거다. 그렇게 할머니에게 아낌없는 지원을 해주던 친정과 사랑했던 남편은 한국전쟁으로 사라졌다.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직전 할머니는 갓 태어난 아들을 업고 양손에 딸 두 명의 손을 잡고 남하했다. 먼저 남으로 내려간 남편을 찾고 나머지 북에 남겨진 딸 넷을 데리러 가려했지만, 결국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찾지도 북에 남겨진 아이들을 찾으러 가지도 못했다. 아들이 성인이 될 무렵부터 할머니는 자주 죽고 싶었다. 꼭 살아야 할 이유가 없었을 거다.한참 후에 겨우 찾은 남편은 이미 다른 여자의 남편이 되어있었고, 북에 남겨진 딸들도 만날 수 없으니. 죽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고, 자주 가슴을 쳤다. 아마 죽어서라도 북에 남겨진 딸들을 만나러 가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던 할머니는 돌아가시기 며칠 전부터 대문에 저승사자가 보인다고 돌려보내라고 소리치며 울부짖었다. 할머니는 죽고 싶지 않다고 자주 울었다. 사는 내내 죽고 싶었던 시련은 오히려 할머니를 단단하게 했다. 요즘 사람이 흔히 죽고 싶다는 이유, 원하는 대학에 입학하지 못해서, 원하는 직장에 입사하지 못해서,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서 죽고 싶은 그런 가벼운 시련이 아니었다.
때마다 이산가족 상봉을 보며 눈시울을 적시던 할머니는 돌아가신 지 30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내 꿈에 나와 내 머리를 쓰다듬는다. 이제 괜찮아질 거라고. 다 괜찮다고. 과연 내가 죽고 싶다고 생각한 일이 얼마나 할머니에게는 우스워보일까 생각했다. 그래도 할머니는 언제나 그걸 고깝게 보지 않는다. 각자 겪어보지 못한 일의 슬픔은 알 수가 없을 테니까.죽고 싶은 날엔 가끔 할머니가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