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상시에 강론에서 어르신들께 드시고 싶은 거 다 드시고 쓰고 싶은 거 다 쓰시라고. 자식들한테 장례비 500만 원만 남겨주면 된다고 말씀하시는 신부님은 자신은 엄청 부자라고 말합니다.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누가 사줄까 눈치 보지 않고, 미사가 끝난 후에 구역장님들과 냉면도 사드시고요. 얼마 전엔 인세로 받으신 2억을 외국 어딘가에 있는 오지에 성당을 지으라고 다 기부하셨다면서 자랑도 하셨습니다. 내가 평생 쓴 돈만 내 재산이라는 말씀이 가장 감명 깊었지요. 저는 신부님과 잘 통하는 사람인지 평생 맛난 거 잘 사 먹고, 부자로 잘 살았습니다.
며칠 전에 어떤 분이 올리신 글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어요. 제목이 아마 '불행한 게 자랑인가요?'라는 글이었는데, 웬만하면 악플을 남기지 않는데 악플을 남기고 말았지요. 제목도 자극적이었지만, 내용 또한 공감이 되질 않았거든요. 우울한 게 자랑이냐 왜 그렇게 우울하다고 징징대냐 이런 내용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사실 읽다가 화가 나서 제대로 못 읽었지만, 전체적인 내용은 우울한 글의 쓸모에 대한 것이더라고요. 우울한 글을 읽는 독자들 생각도 해야 한다고요. 그 내용으로 볼 때, 확실히 그분은 문학작품에서 자주 사용되는 '카타르시스'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신 게 분명했습니다. 카타르시스란, 글이나 문학작품, 영화 등등의 비극적인 장면을 통해 독자의 내면에 있는 상처와 슬픔을 치유하는 것입니다. 즉, 우울한 작가님의 우울한 글을 통해 어떤 우울한 독자님은 힘이 날 수 있는 거거든요. 그분이 꼭 카타르시스에 대해 깊게 이해할 수 있는 작가님이 되시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또한 그분의 말씀 중 인상 깊은 것 중에 하나는 우울증을 정신력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하시던데. 정신력으로 당뇨도 조절할 수 있고, 정신력으로 암도 고칠 수 있는 건가요? 마치 자연치유로 아이의 이토피를 고칠 수 있다는 인터넷 카페에 빠진 어떤 엄마들처럼 우매해 보이기도 하고요. 저는 그 글을 읽고 조금 씁쓸하기도 하고 우울해지기도 했습니다. 요즘 브런치에 우울한 글들이 메인에 많이 올라오면서 보기 싫어하시는 분들도 많이 있는 건 알고 있습니다만, 그래도 불행한 게 자랑이냐니 너무 심한 말씀 아닌가요. 한편으로는 불행한 글이 싫으신 독자님은 불행한 일이 없으신 분일 테니 부럽기도 했습니다. 저는 요즘 불행한 글을 브런치에서 찾아보고 있고, 세상에 나보다 조금 더 불행한 분들이 있다는 생각에 힘도 나고 그랬습니다.
맞다. 이야기가 산으로 갔는데요. 그 글에서 눈길을 끌었던 건 중간쯤에 통장에 억만금을 쌓아도 불행하다는 사람이 있다는 거였는데, 돈이 있으면 불행하지 않은 걸까요? 통장에 억만금을 쌓아두면 불행하지 않아야 하는 걸까요? 이유는 뭘까요? 돈이 마음을 치료해 주나요?
양귀자 장편소설 '모순'에서는 분명 돈 많은 이모가 평생 가난에 허덕이는 엄마보다 더 불행해 보이던데요. 그걸 문학작품에서 보이는 허구일 뿐이라고, 돈만 있으면 다 해결될 거라고 생각하시는 분도 분명 있겠죠. 하지만 제 경험으로는 돈으로 해결되지 않는 부분이 더 많더군요. 저는 살면서 돈 때문에 허덕인 적은 별로 없는 것 같거든요. 제가 요즘 우울한 글을 많이 써서 기분이 상한 건 아니고요. ㅎ 혹여라도 우울하고 불행한 분들이 그 글을 읽지 않으시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누군가의 생각 없는 말이 타인에게는 큰 상처가 될 수 있으니까요. 특히나 감성적인 작가님들이라면 더 큰 상처를 받을 수도 있어요.
신부님이 말씀하신 내용은 아마 이런 뜻이겠죠? 억만금을 통장에 쌓느라 먹을 거 못 먹고 입을 거 못 입고 평생 거지처럼 살면, 통장에 수십억이 있어도 정말 거지 같은 삶을 산 거라고. 그 글을 읽고 황창연 신부님의 말씀이 생각났어요. 돈을 가치 있게 쓰시란 말씀이요. 물론 기부도 좋고 좋은 일에 쓰는 것도 좋지만, 나를 위해 맛난 음식을 준비하고, 깨끗한 옷을 입고, 좋은 구경도 다녀야 한다고요.자신을 가장 잘 보살필 사람은 배우자도 자식도 아닌 바로 자신이라고요.
조금 우울했던 저는 오늘 신부님 말씀처럼 재산을 불리기 위해서 맛난 걸 사 먹었습니다. 우리 모두 매일매일 재산을 불리기 위해 노력해 보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