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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연 Nov 06. 2023

불행은 죄가 없어요.




황창연 신부님




"통장에 쌓여있는 돈이 아니라 평생 내가 쓴 돈만 내 재산이에요." _ 황창 신부님




 평상시에 강론에서 어르신들께 드시고 싶은 거 다 드시고 쓰고 싶은 거 다 쓰시라고. 자식들한테 장례비 500만 원만 남겨주면 된다고 말씀하시는 신부님은 자신은 엄청 부자라고 말합니다.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누가 사줄까 눈치 보지 않고, 미사가 끝난 후에 구역장님들과 냉면도 사드시고요. 얼마 전엔 인세로 받으신 2억을 외국 어딘가에 있는 오지에 성당을 지으라고 다 기부하면서 자랑도 하셨습니다. 내가 평생 쓴 돈만 내 재산이라는 말씀이 가장 감명 깊었지요. 저는 신부님과 잘 통하는 사람인지 평생 맛난 거 잘 사 먹고, 부자로 잘 살았습니다.




 며칠 전에 어떤 분이 올리신 글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어요. 제목이 아마 '불행한 게 자랑인가요?'라는 글이었는데, 웬만하면 악플을 남기지 않는데 악플을 남기고 말았지요. 제목도 자극적이었지만, 내용 또한 공감이 되질 않았거든요. 우울한 게 자랑이냐 왜 그렇게 우울하다고 징징대냐 이런 내용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사실 읽다가 화가 나서 제대로 못 읽었지만, 전체적인 내용은 우울한 글의 쓸모에 대한 것이더라고요. 우울한 글을 읽는 독자들 생각도 해야 한다고요. 그 내용으로 볼 때, 확실히 그분은 문학작품에서 자주 사용되는 '카타르시스'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신 게 분명했습니다. 카타르시스란, 글이나 문학작품, 영화 등등의 비극적인 장면을 통해 독자의 내면에 있는 상처와 슬픔을 치유하는 것입니다. 즉, 우울한 작가님의 우울한 글을 통해 어떤 우울한 독자님은 힘이 날 수 있는 거거든요. 그분이 꼭 카타르시스에 대해 깊게 이해할 수 있는 작가님이 되시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또한 그분의 말씀 중 인상 깊은 것 중에 하나는 우울증을 정신력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하시던데. 정신력으로 당뇨도 조절할 수 있고, 정신력으로 암도 고칠 수 있는 건가요? 마치 자연치유로 아이의 이토피를 고칠 수 있다는 인터넷 카페에 빠진 어떤 엄마들처럼 우매해 보이기도 하고요. 저는 그 글을 읽고 조금 씁쓸하기도 하고 우울해지기도 했습니다. 요즘 브런치에 우울한 글들이 메인에 많이 올라오면서 보기 싫어하시는 분들도 많이 있는 건 알고 있습니다만, 그래도 불행한 게 랑이냐니 너무 심한 말씀 아닌가요. 한편으로는 불행한 글이 싫으신 독자님은 불행한 일이 없으신 분일 테니 부럽기도 했습니다. 저는 요즘 불행한 글을 브런치에서 찾아보고 있고, 세상에 나보다 조금 더 불행한 분들이 있다는 생각에 힘도 나고 그랬습니다.




 맞다. 이야기가 산으로 갔는데요. 그 글에서 눈길을 끌었던 건 중간쯤에 통장에 억만금을 쌓아도 불행하다는 사람이 있다는 거였는데, 돈이 있으면 불행하지 않은 걸까요? 통장에 억만금을 쌓아두면 불행하지 않아야 하는 걸까요? 이유는 뭘까요? 돈이 마음을 치료해 주나요?

 



 양귀자 장편소설 '모순'에서는 분명 돈 많은 이모가 평생 가난에 허덕이는 엄마보다 더 불행해 보이던데요. 그걸 문학작품에서 보이는 허구일 뿐이라고, 돈만 있으면 다 해결될 거라고 생각하시는 분도 분명 있겠죠. 하지만 제 경험으로는 돈으로 해결되지 않는 부분이 더 많더군요. 저는 살면서 돈 때문에 허덕인 적은 별로 없는 것 같거든요. 제가 요즘 우울한 글을 많이 써서 기분이 상한 건 아니고요. ㅎ 혹여라도 우울하고 불행한 분들이 그 글을 읽지 않으시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누군가의 생각 없는 말이 타인에게는 큰 상처가 될 수 있으니까요. 특히나 감성적인 작가님들이라면 더 큰 상처를 받을 수도 있어요.




 신부님이 말씀하신 내용은 아마 이런 뜻이겠죠? 억만금을 통장에 쌓느라 먹을 거 못 먹고 입을 거 못 입고 평생 거지처럼 살면, 통장에 수십억이 있어도 정말 거지 같은 삶을 산 거라고. 그 글을 읽고 황창연 신부님의 말씀이 생각났어요. 돈을 가치 있게 쓰시란 말씀이요. 물론 기부도 좋고 좋은 일에 쓰는 것도 좋지만, 나를 위해 맛난 음식을 준비하고, 깨끗한 옷을 입고, 좋은 구경도 다녀야 한다고요. 자신을 가장 잘 보살필 사람은 배우자도 자식도 아닌 바로 자신이라고요.




 조금 우울했던 저는 오늘 신부님 말씀처럼 재산을 불리기 위해서 맛난 걸 사 먹었습니다. 우리 모두 매일매일 재산을 불리기 위해 노력해 보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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