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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159cm 0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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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연 Dec 30. 2023

파란색 차는 안 돼요.




 "저는 이 색이 좋아요." 내가 고른 쨍한 파란색 차를 보며 셀러의 눈이 동그래졌다. 다소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 색은 많이 선호하지 않아요. 더군다나 보통의 여성분들은 더 그렇죠. 더군다나 그런 색이면 나중에 중고차로 팔 때도 가격이 떨어지고요." 더 많은 잔소리를 듣기 전에 셀러가 권한 색으로 그냥 선택다. 내 차를 구입하는 거지만, 마음에 쏙 드는 색상이 너무 튀어서 좋은 점보다 나쁜 점이 많은 그 차를 쿨하게 놓아주었다. 게다가 잘 알지도 못하는 나를 위해서 앞으로 십 년 후의 일까지 걱정해 주는 셀러는 너무 친절하지 않은가.







 앞에서 할 말을 다 하지 못한 소심한 나는 집으로 돌아와 이불을 뒤집어쓰고 씩씩 거다. 다시 전화해서 색을 바꿀까 말까 휴대폰을 들었다 놨다 했다. 결국 그냥 셀러가 권한 대로 대체적으로 무난한 크림색 차량의 좋은 점에 대해 생각하기로 했다. 지 않는 색으로 도로 위에서 공공연한 적이 되거나, 보복운전의 위험이 줄어든다. 만약 사고가 난다면 저렴한 가격으로 도색을 할 수 있다. 또, 셀러가 말한 대로 중고차로 팔 때 제값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그건 일어나지도 않, 아주 먼, 나중의 일들일뿐이다.



 내가 고른 그 색상이 중고차로 팔 때 손해 볼 수 있다는 것보다 더 신경 쓰였던 건, "보통 여자들은"이라는 말이었는데 어쩐지 나는 그런 말을 들으면 오히려 더 그것을 고집하고자 하는 충동이 든다. 마치 "그건 남자애들이나 가지고 노는 거야."라며 장난감을 빼앗긴 어린아이 같지 않은가. 나는 어려서부터 남성스러운 구석이 있는 아이였다. 로봇 장난감이나 레고 같은 걸 좋아했고, 컴퓨터에 관심이 있었다. 그리고 파란색을 좋아다. 셀러의 말은 마치 누군가 내게 "보통의 여자 아이들은 분홍색 머리띠를 하고 인형 놀이를 즐겨한다" 말하는 것과 같은 진부함이다. 꾸 그 차가 눈에 아른 거렸다. 하지만 결국 셀러가 권한 그 색을 받아 왔고, 후로도 지나가는 그 색상의 차만 봐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운전 중에 그 색의 차를 보고 흥분하는 나를 본 사람들에게서 그냥 그때 그 색을 고르지 그랬냐며 핀잔을 들었다. 나는 조금 억울했다. 못한 일도 아닌데 누군가의 잔소리를 들어야 하는 것과 앞에서 아무 말도 못 하는 내가 싫었다.



 화려한 화장이 돋보였던 복고풍 시대에는  총천연색 화장품들이 매장마다 진열됐다. 단연 내 눈길을 끌었던 건 파란색이었다. 나는 노랗다 못해 누렇게 뜬 얼굴에 파란색 아이섀도를 발랐다. 노란색과 파란색은 보색이다. 게다가 산소 같은 여자 이영애의 매력에 빠져 한동안 주황색이었던 내 입술까지. 알록달록 총천연색으로 물든 얼굴은 지금 상상하기 싫다. 그때의 나는 내가 예쁜 줄 알았던지 그 비싼 디카를 사고 폴라로이드까지 사서 가는 곳마다 내 얼굴 사진을 찍어댔다. 군가 쳐다보는 걸 싫어하면서도 아주 용감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 보통의 가치를 중시하는 사람으로 변하며 나의 삶은 아주 단조로워졌다. "난 작가가 되어야겠어."라고 말했을 때 친구가 "그게 되겠어?" "그냥 일한 만큼 정직하게 버는 돈이 더 가치 있는 거 아니야?"라는 말에 나도 잠시 그게 맞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가치라는 것엔, 보통의 것이 전제되어 있어 조금 슬프다. 나는 보통의 사람처럼 크림색의 차를 타고, 노력한 만큼 받는 성과에 행복해질까. 다음에는 꼭 파란색 차를 타고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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