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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159cm 0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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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연 Dec 23. 2023

꽃 좋아하세요?







 "저는 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꽃 싫어하는 분은 처음이네요."

 "아니요. 싫어하는 게 아니라 좋아하지 않는 거예요."



 그게 그거 아니냐며 중얼거리는 그 보며 한마디 해주고 싶었지만, 그건 예의가 아니었다. 우리는 처음 만난 사이니. 사람을 앞에 두고 중얼거리는 건 실례지만, 나도 그의 성의를 무시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을 주고 한껏 감동적인 장면을 연출하려 했지만,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으니.



 그는 꽃을 싫어하는 건 세속적으로 보인다고 했다. 아니. 싫어하는 게 아니라 좋아하지 않는 거라고 말하려다가 그만 두었다. 이미 그에겐 그게 그거다. 그의 말대로, 내가 꽃을 싫어한대도 꽃을 싫어하는 게 왜 세속적인지 아직도 이해가 가질 않는다. 내가 꽃대신 선물을 사달라고 한 것도 아닌데. 나는 차라리 세속적인 것은 그일 거라고 생각했다. 처음 만나는 내게 꽃을 건네는 것도 참 세속적인 처사 아닌가. 나는 그저 꽃가루 알레르기 때문이라 얼버무렸다. 그래서 그도 이해하는 척 "아. 그렇구나."라며 맞장구를 쳤지만, 내내 찜찜한 기분을 감출 수는 없었다. 



 나는 세속적인 사람이 아니다. 하긴 '자만추'를 신봉하는 내 친구는 소개팅 같은 걸 하는 것 자체가 세속적인 행위라고 했다. 하지만 그건 거의 내 의도가 아니었다. 고등학생일 때는 나를 잘 모르는 옆반 학생들_지금으로 말하자면 일진 무리들_이 찾아와 소개팅을 권유했고, 대학생일 때는 나를 잘 모르는 선배님들로부터 일방적인 만남이 이뤄졌다. 하지만 그렇게 나와 소개팅을 원했던 당사자들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나는 소개팅에서 잘 된 적이 한 번도 없. 개팅에 나온 나는 꽤 예쁘게 생긴 사회부적응자였으니 말이다. 처음에 내 외모만 보고 소개팅을 주선해 달라고 했던 남자들은 금세 나를 질려했고,  이후엔 소개팅을 주선했던 그들에게 내내 조리돌림을 당해 곤혹스러워졌다. 남자들은 철저히 외모만 본다는 것도 다 지어낸 말이다.



 나는 사회부적응자가 맞다. 내 반응에 엉망이 될 분위기가 걱정되어 겉으로 헤실헤실 웃어대는 그런 모습은 내게 전혀 없으니. 상대가 늘 마음에 들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낯을 많이 가리는 내 얼굴엔 불편한 감정이 그대로 드러났다. 한번 굳혀진 생각은 도무지 바꿀 수 없을 테니 그 이후론 내가 무슨 말을 하든 그저 그런 사람으로 비칠 거다. 



 꽃을 들고 소개팅에 나온 그는 어머니에게 드려야겠다며 결국 그 꽃을 다시 들고 돌아갔다. 나는 그저 꽃 선물이 싫을 뿐이었는데 그에게 그런 평가를 받을 이유가 없다. 꽃은 자유롭게 땅에 있는 게 가장 아름답다. 가뜩이나 예쁜 꽃에 그것을 더욱 돋보이게 하려는 화려한 포장지와 리본은 참으로 거추장스럽지 않은가. 더군다나 그 꽃을 들고 전철을 타는 것도 싫다. 나는 누군가가 나를 보는 것이 싫은 사회부적응자니까.



 꽃의 가치는 당장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이 아니라 시들어도 다시 피어날 수 있는 생명력에 있다. 그러므로 이미 생명이 멈춘_억지로 인간에게 꺾여진_ 꽃은 가치가 없는 것이다. 당장의 아름다움을 위해 그 가치를 훼손하는 일은 얼마나 우매한 일인가. 럼에도 상에 꽃을 좋아하지 않는 여자는 없단다. 그렇다면 나는 여자가 아니어도 좋다. 



 보통의 것이 최선의 가치라고 믿는 보통의 사람들에게는 꽃이 최선이다. 실제로 나도 꽃을 좋아하지 않는 여자는 본 적이 없다. 알록달록 포장된 원색의 꽃들을 보며 조금 촌스럽다고 생각한 사람은 아마 나뿐일 거다. 반면 자연 그대로 저절로 난 꽃들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래도 좋아하지 않는 걸 좋아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난 거짓말을 싫어하니까. 그러니 결론은 나는 나쁜 사람은 아니라는 거. 그러니까 그저 보통의 가치가 옳은 건 아니다. 그렇게 좋아하던 꽃도 시들면 버려진다.



 나중에 알게 된 건데, 나는 꽃가루 알레르기가 있다. 내 속에 잘 숨어있던 마음은 결국 숨길 수가 없 드러난다. 어쩌면 꽃을 좋아하지 못하는 운명처럼. 보통의 사람이 되지 못하는 운명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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