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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159cm 0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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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연 Dec 16. 2023

159cm






 "키가 159cm 시네요?" 면접관은 희한하다는 듯이 나를 훑어봤다. "네.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이력서를 많이 봐왔지만 키가 159cm이신 분은 처음 봅니다."



 '159cm인 사람을 처음 본다고? 우리나라 여성 평균 키가 159cm인데?'



 요즘엔 이력서를 어떻게 쓰는지 모르겠지만, 이십여 년 전쯤의 이력서 양식엔 키, 몸무게 같은 개인 신상정보가 들어갔다. 하지만 이력서에서 그게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었을 거다. 그저 평범한 신체조건을 가진 사람인지를 확인하는 용도쯤으로 쓰이지 않았을까. 면접관에게 그 질문을 받고 조금 의아했던 건, 그런 질문을 하는 의도에 대한 이 아니었다. 검색해 보면 2023년 현재 우리나라 여성의 평균 키는 159cm이다.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아마 평균 키는 많이 달라지지 않았을 거다. 러니까 내가 궁금했던 건 왜 159cm인 여성을 처음 본다고 했을지에 대한 궁금증이었다. 사실은 그 질문을 한 면접관의 키도 159cm즈음으로 보였다.



 평균이 대부분의 값일 거라는 말을 쓴다면 오류가 있겠지만, 지나가는 대부분의 여성들은 나와 비슷한 키가 널렸다. 확률과 통계의 도수분포에서도 통계집단의 점들은 평균에 집중해서 찍혀있지 않던가? 그런데 이렇게 많은 사람이 오가는 큰 회사에서 평균 키를 가진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다는 건가. 이 회사는 키가 큰 사람을 선호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나는 보나 마나 탈락이다. 이후에 그 회사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듣고서 조금 놀랐고, 출근을 해보고는 더 놀랐다. 역시나 회사에는 나와 비슷한 키를 가진 사람이 많았다. 그곳에는 158cm, 159cm, 160cm 정도로 보이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나라의 여성 평균 키가 159cm로 알고 있습니다." "네. 저도 그렇게 알고 있지만, 실제로 159cm인 이력서는 처음이라서요."



 그렇다. 나중에 든 생각인데, 158cm이나 159cm인 사람들의 이력서엔 아마 160cm라고 쓰여있을 터였다. 그러니까 면접관이 놀라며 내게 물은 건 내가 평균 키를 가지고 있어서가 아니라 그 키를 그대로 적었기 때문일 거다. 아마 면접관은 그 이력서에서 솔직함을 보았을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키를 묻는 인터넷 설문조사에 스스로 답한 사람들의 내역을 보면, 가장 많아야 할 평균의 키인 159cm라고 답한 사람이 가장 적었다. 평균보다 조금이라도 큰 키를 선호하는 것인지, 딱 떨어지는 숫자를 선호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신의 키가 160cm라고 답한 사람의 비율이 159cm라고 답한 사람의 두 배가 넘었다. 하지만, 확률상으론 그럴 리가 없다.









 조금 다르게 생각해 보았다. 만약 면접관이 키 159cm에서 솔직함을 보았다면, 키 160cm라고 적힌 이력서에선 약간의 허세와 거짓을 보게 되었을까. 그렇다면 정말 키가 160cm인 사람은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만약 내 키가 마침 159cm여서 솔직해 보였다면, 고작 그 1cm로 나에 대한 평가가 달라질 수도 있는 거다.




 아담한 여성을 선호하던 시대에서 늘씬하고 키 큰 여성을 선호하는 시대로 바뀐다 해도 변하지 않는 건, 평균값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 평균값이 조금 상승할 수는 있겠지만, 크게 변화하는 건 없다. 현재도 우리나라 여성의 평균 키는 159cm이고, 내 키가 159cm니 아주 평범한 사람이지만, 나는 일평생 키가 작다는 말을 듣고 살았다. 때로 사람들은 평균값을 부족한 값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바로 가장 많아야 할 평균값 159cm라고 답한 사람이 가장 적은 이유일 거다. 어떻게든 평균 이상이고 싶은 마음인가.

 


 159cm, 54kg. 남자로 치면 172cm, 63kg. 크지도 작지도 않은, 뚱뚱하지도 날씬하지도 않은 평균의 인간이다. 지만 건 어디까지나 숫자로 나타낸 평균으로, 평균 즈음에 있는 인간들 누구도 자신이 평균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실상은 평균이 가장 많지만, 모두 이상적인 가능성을 꿈꾼다. 약 내가 연예인이어서 나무위키에 내 키와 몸무게를 적는다면 아마 나는 키는 늘리고, 몸무게 낮춰서 적을 것 같다. 그걸 본 나를 모르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화면에 나오면 저렇게 뚱뚱해 보이나 봐"라고 생각하겠지. 그렇생각하며 점점 부족한 인간처럼 느껴질 거다.  저 사람처럼 키가 조금 더 컸으면 좋겠다든지, 저 사람처럼 더 날씬해지고 싶다든지, 혹은 자신이 갖지 못한 하얀 피부를 원하거나 또는 구릿빛 피부를 원하거나. 예쁜 다리를 원하거나, 가녀린 쇄골을 원하거나. 원하는 것도 다양할 거다. 화면에 비친 그 모습들이 다 꾸며낸 모습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들이라면 아마 자괴감에 빠지겠지. 그래서 실물을 부정하고 과도하게 보정에 집착하는 거겠지. 요즘 남자 아이돌들은 복근 화장을 한단다.



 진짜 자존감은 나무위키에 키를 늘리고, 몸무게를 줄여서 올리는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 159cm라고 적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지 않을까. 이 시대의 자존감은 당당하게 말할수 있는 솔직함에서 나온다. 다소 찌질하거나 다소 우울하거나 다 괜찮다. 나는 시대에 맞는 사람인가. 아닌가. 대에 맞춰가는 사람인가. 아닌가. 그런 민할 필요 없다. 있는 그대로가 가장 아름다우니. 혹시 이 글을 읽는 사람 중 공교롭게 키가 160cm여성분들에게 먼저 심심한 위로를 건넨다. 뭐든 평균 이상좋은 거라 여기는 세상에서 그저 조금 평균에서 벗어났을 뿐인데, 딱 맞아떨어지는 예쁜 숫자로 인해 누군가에게 솔직하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는 그대들을 위로하고 싶다. 그냥 누군가의 신뢰를 얻고자 1cm를 내려 말할 수도 없는 일이니. 




언젠가 이효리를 검색해보고선 몸무게에 놀랐다. 엄청 날씬해보이는 이효리가 57kg이라니. 그걸 보고 솔직한 그녀가 더 좋아졌다.




 

※ 알려드립니다.
 예시로 사용된 키 159cm는 여성 전 연령대의 평균 키이므로, 젊은 분일 수록 현실과의 괴리가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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