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그의 새어머니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녀는 상냥한 사람이야. 힘들었던 나와의 관계에서 정말 최선을 다했어.” 그는 성인이 된 후 대학생활을 핑계로 독립을 했다. 그의 성적으론 서울에 있는 대학을 갈 수 있었지만,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 나오기 위해 지방의 대학을 선택했다. 대학을 졸업한 이후론 이미 20대 후반이었기 때문에 다시 본가로 들어가지 않을 핑계를 만들수 있었다.
“그렇게 최선을 다한 새어머니에게 안부인사는 자주 하니?” “아니...” . “사람과의 관계에서 최선을 다한다는 건 그런 거야. 최선을 다해야만 유지되는 관계.” 그는 그의 새어머니가 정말 훌륭한 사람이라는 걸 인정하지만, 자신에게 최선을 다한다는 게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우리 엄마가 나에게 최선을 다했다면 내 인생이 달라졌을 거라고 말하자, 그건 가진 자들의 변명일거라는 대답이 돌어왔다.
연인관계에서도 사회생활에서도 그렇다고. 최선을 다해야 하는 관계는 오래 가지 못하더라고. 그래서 그는 어떤 관계에서도 최선을 다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는 다른 사람의 호의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본다. 그러니 사회생활이 원만할리 없다. 그는 어디에서든 자발적 왕따를 자처한다.
부모님이 이혼하시기 전에 그는 아버지의 외도로 힘들었던 어머니에게 최선을 다해봤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는 최선을 다한 후에 오는 상실감이 두렵다. 누군가에게 또 버림 받을 거라면 최선을 다하는 건 아무 의미 없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하지만, 세상 어느 관계도 영원한 건 없지 않은가. 만남의 끝은 결국 이별이다. 인간의 삶이란 크고 작은 이별을 하며 이 세상에 적응해가는 과정이다.
그는 가족이 아닌 어떤 스쳐가는 인연과의 정리도 힘들어했다. 대학시절에 만난 첫사랑이었던 그녀와 헤어진 후론 여태 솔로로 지내는 걸 보면 말이다.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 첫사랑과 결혼한 사람은 흔치 않은데, 시간이 지날수록 사랑에 대한 가치관이 변하기 때문이 아닌가. 하지만 그는 여전히 첫사랑을 잊지 못하고 있다. 그의 첫사랑인 그녀의 결혼식 이후에 난 그가 얼마나 그녀를 사랑했었는지 알수 있었다. 그건 어쩌면 사랑이 아닌 집착일수도 있지만 말이다. 결국 그가 최선을 다해 사랑했던 두 여인은 그를 떠나고, 그는 혼자 남겨졌다. 연인이었던 사이에 헤어지는 일은 아주 흔한 일이라고 생각지만, 최선을 다해 사랑했다면 나도 그처럼 이별의 상실감이 그렇게 크게 다가왔을까?
아버지가 재혼 한 이후에 최선을 다했던 건, 어쩌면 그의 새어머니가 아니라 그였을지도 모르겠다. 최선을 다해야만 유지되는 관계는 최선을 다했지만 유지되지 못하는 관계가 되었을 때, 큰 상실감을 남긴다. 더이상 상실감을 느끼고 싶지 않음에 우리는 소극적인 인간관계를 택할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