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놓은 상처

행복하지 않아도 괜찮아

by 김소연


학창시절에 학원 계단에서 구른 적이 있다. 요즘 지어지는 신축 건물처럼 층간이 두 개로 나누어진 회전 계단이 아니라, 오래된 건물의 층간의 쉼이 없는 직선의 계단이었다. 계단 한 두어 칸을 내려간 뒤 곧장 넘어져 나는 3층에서 2층으로 그대로 곤두박질쳤다. 팔과 다리가 부리지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로 온 몸에 멍이 들었고 쉽게 일어나지지 않았다. 특히나 왼쪽에 상처가 심했다. 내가 계단에서 굴렀다는 소식을 듣고 학원 담임 선생님께서 곧장 달려 나와 병원에 데려다 주겠다고 했지만, 그때는 몸이 아픈 게 문제가 아니었다. 제발 집에 보내 달라 떼쓰는 제자를 순순히 집에 보내주셨다. 집에서 기다리시던 엄마는 소식을 이미 들었는지 별로 놀라는 기색은 아니었다. 조금만 쉬면 나아질 거라 안심시키고선 방으로 들어가 그 다음날 아침까지 난 일어나지 못했다.





그 당시는 기면증이 발병한 시기였다. 밤마다 잠에 들지 못하고 툭하면 헛것을 본다며 떼쓰는 아이에게 엄마도 많이 지쳤으리라.

그 즈음에 난 조금 이상했다. 그 날도 난 가족들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는데, 잠이 막 들려고 하는 순간 검은 물체 두 개가 방으로 들어왔다. 소리를 지르기 보다는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들이 숙덕이는 소리에 난 그들의 존재를 알 수 있었다. 사람들은 그들을 저승사자라 부르는 것 같다. 티비에 나오는 그 저승사자처럼 형체가 있지도 얼굴이 보이지도 않았지만, 단독주택 2층의 창문으로 들어올 정도면 범상치 않은 존재였다. 그들은 잠시 나를 보다가 나가버렸다. 재빨리 밖으로 나가 이 사실을 알렸지만, 아무도 나를 믿어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 상상력이 풍부하던 어린 시절의 나를 믿어주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을 거다. 그때 내 나이 열일곱 살, 작가가 꿈인 공포영화를 즐겨보는 아이였다.


“요즘 많이 피곤하구나.”

라는 가족들의 말은 위로가 되지 않았고, 충분한 공감도 얻어내지 못했다. 난 다시 방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고, 잠시 후 그들이 또 찾아왔다. 아니 열일곱 밖에 되지 않은 아이에게 저승사자가 연달아 두 번이나 찾아오는 건 반칙 아닌가? 그때의 난 건강에 문제는 없었고 조금 피곤했을 뿐이었는데... 그들이 가고 나서 난 다시 방문으로 나가 그 일을 설명하는 일을 하지 않았다. 그랬다간 조금 전보다 더 딱한 얼굴로 나를 쳐다볼게 분명하다. 난 혼자 견뎌내는 일을 택했고, 아침이 될 때까지 잠이 들지 못했다. 그 날 새벽 옆집에서 곡소리가 들려왔다. 그날 밤 옆집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엄마는 막 학교에서 돌아온 딸에게 아무렇지 않은 듯 간식을 건넸다. 아무렇지 않은 듯 일상적인 대화가 오갔음에도 집안 분위기는 전혀 일상적이지 않았다. 옆집 할머니의 소식을 전하는 엄마의 눈빛은 흔들렸고, 입술은 떨렸다. 믿어주지 못해 미안했다던가 많이 무서웠냐 라는 말을 들은 것도 같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시간이 많이 지나서 기억이 흐려졌다기 보다는 그 말을 전하는 두려움에 떨고 있는 엄마에게 어떤 위로의 말을 건넬지 그 말을 생각하느라 그 이후의 기억은 없는 것이 맞다. 그때의 엄마의 나이는 지금의 내 나이보다 어리다. 엄마가 기억하는 그때의 난 멍하니 다른 곳을 쳐다보며 두려움에 떠는 표정이었겠지만, 사실 그 일이 나에게 그렇게 두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 일이 있기 전부터 나는 환청과 환시에 시달렸고, 그저 이 일도 별일 아니었다.


그 이후 난 말 없는 아이가 되길 스스로 선택했다. 지금의 수다스러운 성격으론 상상이 되지 않는 일이었지만 말없이 지내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았다. 지금의 나는 예전의 나처럼 가끔 그렇게 지낸다. 도무지 나와 맞지 않을 것 같은 자들에게 내 상황을 전하는 일은 그리 유쾌하지 않으니 말이다. 아마 예전의 부모님도 이해하지 못할 일들이 나에게는 자주 일어나는 일이 되었기 때문일 거다. 그 이후, 나는 누구에게도 나의 환각 증세에 대해 얘기하지 않았다. 누구도 해결해주지 못하는 일에 난 딱하거나 이상한 사람이 될 뿐이었으니까.


시간이 많이 지난 서른일곱이 되던 해에 난 기면증 진단을 받았고, 더 이상 이상한 사람이 아니어도 되었다. 환각 증세는 기면증의 하나의 증상일 뿐이다. 그날 봤던 저승사자도 그냥 우연히 본 환시에 불과하다고 그렇게 결론 내릴 수 있었다. 그리고 그때 심하게 다친 내 왼쪽 다리에 ‘신경병증’이라는 병명을 달아줄 수 있었다. 근데 참 이상했다. 십대 때부터 저리고 아파서 왼쪽다리를 잘라버렸으면 좋겠다는 말을 달고 살던 나는 그 이후에 그 말을 하지 않았다. 이상하리만큼 아픈 증세가 호전되었기 때문이다. 여전히 오래 걷거나 꽉 끼는 양말을 신으면 경련이 일어나는 건 마찬가지 이지만 말이다.


때로는 이해하지 못하는 아픔을 가진 이에게,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일이더라도,

“많이 아프구나?”라는 말이 위로가 된다. 내 아픔을 누가 인정해주는 것만으로도 괜찮아진다.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내 병도 누군가 아무렇지 않게 공감해주는 이를 만났다면 어쩌면 치료가 빨리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때의 어린 나는 몰랐었다. 상처를 꺼내어 놓는 것만으로도 치료가 된다는 사실을. 상처를 꺼내어 놓지 않으면 그 아픔을 누가 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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