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못 생길 나이

행복하지 않아도 괜찮아

by 김소연



아기를 유모차에 태우고 부지런히 걷는 엄마를 보며 언니가 말했다.

“야, 한창 못 생길 나이다. 부럽다.”

“그러게, 우리 저 나이일 때 진짜 못 생겼었는데, 아마 지금보다 나이도 더 많아보였을 걸.”

40대 중반인 나이의 두 자매의 일상적인 대화가 이어진다. 그렇다고 정말로 그 나이로 돌아가고 싶은 건 아니다. 한창 잠 안자고 칭얼거리던, 툭하면 병원에 입원하던 그 아이들을 다시 키우고 싶은 마음은 없다.



2009년 둘째 돌잔치날



나는 결혼할 때 27살로 결혼을 일찍 한 편이었지만, 그때는 결혼하기에 그렇게 이른 나이는 아니었다. 친한 친구들 중엔 20대 초반에 결혼한 이들도 있었는데, 한 친구는 대학을 졸업하던 해인 24살에 결혼을 했다. 삼십대가 되어야 결혼 생각을 하는 요즘엔 상상도 힘든 나이였다. 결혼 전 고등학생 같아보였던 그녀는, 친구들 중 가장 나이 들어 보이는 외모와 옷차림을 하고 내 결혼식에 왔다. 결혼 삼년 차인 27살에 그녀는 이미 아이를 두 명이나 낳은 동네에서 흔히 보는 아줌마가 것이다.





굳이 결혼이라는 것 때문에 늙는 건 아니다. 그 나이 때(아이가 어릴 때)의 엄마들이 나이 들어 보이는 이유는 아이와 생활하다보니 자신을 가꿀 시간과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어린 아이를 자주 안아 줘야하는 엄마라면 당연히 기초화장도 할 수 없다. 또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하면서 아이를 위해, 가정을 위해 포기해야 하는 일도 많아진다.


결혼 후, 두 번째 아이를 낳은 후 나는 우울증에 걸렸다. 사실, 어느 시점에서 우울감이 시작되었는지 모르지만(결혼 전일수도) 그 당시에 꽤 심각한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 고3때까지 초등학생이냐는 말을 들을 정도로 동안이었던 나는, 이제 거울을 보면 한심한, 아줌마일 뿐이었다. 모유수유를 하느라 망가진 몸매와 수면부족과 스트레스로 인한 탈모로 인해 나는 급격히 늙었다. 외모에 자신 있었던 사람일수록 더 큰 상실감을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가 애쓰지 않아도 시간은 잘 흐르고, 아이들도 금세 커버린다. 또 나이가 들면서 경제적으로 안정되고, 아이들에게 쏟던 시간이 줄어들며 여유롭게 나를 가꿀 수 있게 된다. 헌데, 이미 나는 젊은 나로 되돌아갈 수 없다. 이젠 화장을 하지 않고서는 밖에 나갈 수 없으며, 다 늘어진 티셔츠를 입어도 풋풋했던 젊은 몸매도 이젠 숨길 수 없을 만큼 나이가 었다. 아이들을 다 키우고 여유롭다고 생각할 때 즈음, 엄마들은 두 번째 사춘기인 갱년기에 접어들게 된다. 한창 바쁘고 힘들었던 삶에서 벗어나며 여유롭다고 생각하던 그 자리에 공허함이라는 새로운 감정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자신이 꼭 필요할 거라 생각했던 가족들에게 이제 자신이 필요없는 존재가 되어가는 상실감일 것이다.


조금 부족한 시간과 경제적인 결핍을 가지더라도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 되는게 낫다 생각하지만,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다. 그러면서 우리는 또 한번 좌절을 한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다 그런 건 아니다. 그 나이에도 여전히 바쁘거나 자신이 하는 일에 열정이 있다면 조금 달라질 수 있다.

양귀자 소설 ‘모순’을 읽고, 그 소설의 주인공이 느꼈던 삶의 의미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한 적이 있다. 쌍둥이 자매로 태어나 완전히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주인공의 가난하고 어느 한 순간도 만만하지 않은, 억척스러운 그녀의 어머니와 부유하고 여유로워 보이는 그녀의 이모 사이에서 주인공은 완전히 다른 그들만의 행복을 본다. 삶에 있어 정답은 없다. 불행해 보이던 자신의 어머니와 행복해 보이던 이모를 타인의 잣대로는 평가할 수 없는 것이다.


다시 그 시간으로 돌아간다면, 지금과는 같지 않을 거라고 아무리 생각한들,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을 안다. 하지만, 내 아이는 엄마가 자신을 위한 희생을 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아이들도 자신을 위해 희생하는 엄마를 원치 않는다.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할 사람은 자신이라는 걸 잊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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