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서 석박사 과정을 하면서 힘들 때마다 이나라에 오고 싶은데 못오는 사람들, 공부하고 싶은데 못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난 얼마나 다행인가, 라며 나를 많이 다독였다.
나라를 바꾸며 유학생활을 했지만 운이 좋아 내가 좋아하는 주제를 장학금까지 받으며 계속해서 연구할 수 있었다. 공부하는 내내 내가 이렇게 좋아하는 일만 하며 살아도 되나 걱정을 할 정도로 배부른 시절이었다.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고 돌아온 고국에서의 밥벌이는 썩 즐겁지 않았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교육기관이나 연구기관은 상상도 못할만큼 비합리적이고, 비논리적이고, 비이성적으로 돌아갔고, NGO나 사회적 경제를 모토로 움직이는 기관은 ‘공정’이나 ‘정의’를 장사에 필요한 마케팅 도구로 사용했다.
인생을 통틀어 조금씩 나눠 써야 하는 행운을 유학시절 너무 한꺼번에 다 사용해 이제 나에게 행운 따위는 없는 건가 싶은 시절이었다. 뭘 해도 피곤했고, 다 귀찮았다.
요즘 나는 하고 싶은 일을 다시 찾았는데 공부한 분야로 드디어 창업을 한 것이다. 난 오랫동안 에티오피아 커피를 연구했는데 ‘세상의 모든 에티오피아 커피’를 아이템으로 한 에티오피아 커피 플랫폼 비즈니스를 시작했다. 에티오피아 커피와 관련된 모든 걸 찜쪄먹기 위한 비즈니스라고 할 수 있다.
재미있을 것 같다고요? 최근에 투자하겠다는 분들도 생겼고, 무엇보다 일하고 싶은 곳을 내가 직접 만들어, 운영하고 싶은대로 운영할 수 있어 좋다. 단점이라면 ‘찐 을’의 자세로 살아야 할 때가 많다는 정도? ㅠㅠ
오늘은 놀면서 이탈리아 젤라또 장인한테 전수받은 레시피로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만들었는데 아....정말 너무 맛있어서 혼자 감격하다 싱글오리진 에스프레소를 진하게 추출해 아이스크림에 끼얹은 아포가토를 만드는 지경에 이르렀다.
난 그동안 하겐다즈 아이스크림으로 만든 아포가토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아포가토인 줄 알았다. 1) 비행기를 타고 에티오피아 커피산지를 방문해 2) 손수 골라 온 콩을 3) 직접 로스팅해 4) 하이엔드급 커피머신으로 싱글오리진 에스프레소 커피를 추출해 5) 내가 만든 바닐라 아이스크림 위에 끼얹은 아포가토의 세계를 만나기 전까지 말이다. 내가 가진 아포가토의 철학이 깨진 순간이었다.
아무튼 백신도 많이 맞고, 코로나도 잠잠해져서 커피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맛있는 에티오피아 커피를 많이 소개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때까지 난 하루하루 잘 먹고 잘 살아보려고 한다.
*사진은 구글에서. 맛없을 줄 알고 먹기 전에 못 찍었다.
#에티오피아커피클럽
#아포가토는내가찐일지도모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