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고소!

다툼과 법 : 복수와 재판

어느 날 민서가 준서의 안경을 실수로 깼습니다. 준서는 안경값 20만 원을 민서에게 요구했지만 민서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안경값을 주지 않았습니다. 준서는 억울했습니다. 민서에게 복수하든지 돈을 받아내든지 둘 중 한 가지는 해야 마음이 풀릴 것 같았습니다.      

살다 보면 어이없이 상대방에게 피해받을 때가 있습니다. 몹시 화나고 억울합니다. 자연스럽게 상대방에게 직접 복수하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특히 자신이나 자기 가족이 억울한 일을 당했다면 그런 마음이 더욱 듭니다. 영화나 뉴스에서 자기를 괴롭힌 사람에게 직접 복수하는 일을 누구나 한 번쯤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자기에게 나쁜 짓을 한 사람을 자기가 직접 벌주는 것이 ‘사적 보복, 사적 제재’입니다.

자기와 상대방이 모두 같은 손해를 보더라도 자기 손해가 더 크게 느껴지기 쉽습니다. 그만큼 사람이 개인적으로 복수하게 되면 받은 피해보다 더 큰 피해를 주면서 복수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 복수를 당한 상대방 역시 더 큰 복수를 하게 됩니다. 상대방에게 끝없는 복수를 하게 만드는 사적 보복은 개인을 망하게 만듭니다.

이런 사적 보복은 폭력이 허락된 사회에서만 가능합니다. 그런데 폭력을 써도 괜찮은 곳에선 사람이든 사회든 정상적으로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자기가 성실하게 일해도 도둑이나 강도가 와서 자기 재산과 생명을 뺏어가면 헛된 일이 됩니다. 그 누구도 일과 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합니다. 당연히 국가에 세금을 낼 수도 없습니다. 세금이 없으면 국가는 경찰과 군대를 운영할 수 없습니다. 도둑과 강도가 넘치고 다른 나라의 침략을 막지 못하게 만드는 사적 보복은 나라를 망하게 만듭니다.

이렇게 사적 보복으로 개인과 나라가 망하는 것을 막으려고 개인의 복수를 국가 기관이 대신해 주는 것이 ‘공적 보복’ 혹은 ‘응보’입니다. 국가는 개인의 복수를 법을 이용한 재판으로 결정하고 공권력으로 벌을 줍니다. 법의 주된 목적은 개인과 나라가 잘되는 것이 아닌 망하지 않게 만드는 것이 됩니다. 주로 개인의 복수보다 국가 질서 유지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편입니다. 흔히 뉴스를 보면 어떤 사건의 피해자가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달라는 개인적인 요구보다 사회의 보호와 발전, 사건의 재발 금지에 대해 호소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안경값 20만 원을 주지 않는 민서 때문에 억울한 준서는 아무리 화가 나도 민서를 직접 혼내면 안 됩니다. 만약 준서가 직접 민서를 때려 복수하면 준서는 ‘폭행죄’를 저지른 것이 됩니다. 게다가 사적 보복이므로 벌을 2배로 받는 ‘가중처벌’까지 있습니다. 가중처벌 폭행죄는 가장 약한 벌을 받았을 때 대략 벌금 100만 원 정도입니다. 심하면 감옥에 가기도 합니다. 민서를 때리면 준서 기분은 조금 풀리더라도 안경값 손해에 벌금 손해까지 합쳐지게 됩니다. 양쪽 모두 잘못했지만 사적 보복을 한 사람이 훨씬 더 심한 피해를 얻게 됩니다. 

준서가 민서에게 복수하고 싶다면 경찰서나 법원에 가서 재판을 신청하는 방법뿐입니다. 법원에서 민서가 한 일이 불법으로 결정되면 개인에게 피해를 주고 사회 질서를 어지럽힌 대가로 벌금을 내거나 감옥에 갑니다. 국가는 공권력이 있기에 강제로 이런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법은 개인의 복수보다 사회 질서 유지에 관심이 더 많습니다. 민서의 나쁜 짓은 사회 질서에 피해를 주었으므로 준서가 아닌 사회에 벌금을 냅니다. 감옥에 가는 것 또한 피해자로부터 떨어뜨린다기보다 사회로부터 떨어뜨린다는 개념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재판을 ‘형사 재판’이라고 합니다. 사람 사이에 폭력이나 거짓에 관한 일이 있으면 형사 재판으로 해결합니다.

그 대신 준서가 민서로부터 손해를 직접 보상받으려면 민사 재판을 해야 합니다. 민사 재판은 다투는 사람의 잘잘못을 정해 주고 피해자의 손해를 해결해 주는 재판입니다. 사람 사이에 폭력이나 거짓이 있든 없든 다툼이 있다면 언제든지 민사 재판을 할 수 있습니다.

피해자가 경찰서나 법원에 가서 재판을 신청하는 것이 ‘소송’이고, 소송 중에서 형사 재판을 신청하는 것이 ‘고소(기소)’입니다. 흔히 생활하면서 “누가 누구를 고소했다”라는 말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피해자가 가해자의 괴롭힘을 그냥 넘어갈 만한 일이 아닌 심각한 사건으로 생각하고 조사·재판·처벌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안경 사건에서 준서가 할 수 있는 일은 3가지 정도입니다.     

첫 번째 방법은 억울하지만 그냥 넘어가는 것입니다. 준서가 민서에게 받아야 할 돈이 있더라도 그것을 강제로 뺏는 것은 강도질입니다. 그렇다고 민서가 돈을 줄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리는 것 또한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민서가 절대로 돈을 주지 않겠다고 결심했다면 준서가 돈을 직접 받아 낼 방법은 딱히 없다고 봐야 합니다. 돈 갚을 생각이 없는 민서에게 준서가 할 수 있는 일은 민서에게 직접 20만 원 수준의 피해를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행동을 하면 사적 보복이 되어 오히려 준서가 큰 벌을 받기도 합니다. 적당한 수준의 억울한 일이 생겼을 때 그냥 넘어가는 것은 자기가 바보라서가 아닙니다. 그 일에 신경을 많이 쓸수록 자기 손해만 커지고, 재판을 하더라도 이익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방법은 준서가 경찰서에 찾아가 민서를 고소하는 것입니다. 형사 재판을 신청하는 것입니다. 준서의 고소는 민서가 주지 않은 돈을 경찰이 대신 받아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민서를 자기 대신 벌주라는 의미입니다. 이런 사건은 비교적 작은 사건이라서 경찰서에서 두 사람을 불러 조사하고 법원에서 간단하게 판결합니다. 만약 민서가 벌금형을 받았다면 민서는 준서가 아닌 국가의 은행 통장, ‘국고’에 벌금을 내야 합니다. 준서는 이 재판으로 안경값을 받진 못하지만 국가가 민서를 범죄자로 결정하고 벌을 주었다는 사실에 조금은 마음이 풀렸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돈을 떼인 사건은 고소해도 대부분 형사 재판을 해 주지 않습니다. 민서가 준서에게 사기 친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경찰서에 고소하러 간 준서는 “이런 사건은 민사 재판을 해야 한다”라는 말을 들었을 것입니다. 

세 번째 방법은 준서가 경찰서가 아닌 법원에 가서 민사 재판을 신청하는 것입니다. 준서가 민서에게 안경값을 무조건 받아야겠다고 결심했다면 민사 재판을 해야 합니다. 민사 재판은 다툼과 돈 문제를 해결해 주는 재판입니다. 준서가 민사 재판을 이기면 법원은 민서에게 돈을 갚으라고 명령합니다. 그 대신 민사 재판을 하려면 기본적으로 돈이 듭니다. 유리한 재판을 위해 변호사의 도움까지 받는다면 변호사 비용까지 추가됩니다. 준서의 안경 사건 민사 재판에서 재판 신청 비용은 대략 11만 원, 변호사 비용은 대략 30만 원 정도 들게 됩니다. 이 비용은 재판 결과에 따라 조금 달라지기도 합니다. 결국 준서는 20만 원을 받기 위해 대략 40만 원을 써야 합니다. 재판에 이겨서 민서에게 안경값을 받아도 20만 원을 손해 보게 됩니다. 

그래서 이런 사건이 생기면 많은 사람이 첫 번째 방법인 ‘포기한다’를 선택합니다. 살면서 다툼이 있을 때 법대로 하면 꽤 공정한 결과가 나올 것으로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법원에 가지 않고 적당히 개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대부분 훨씬 낫습니다.

안경 사건을 준서가 잘 마무리하려면 다양한 방법을 시도해서 민서에게 피해 보상을 직접 받아내야 합니다. 민서 부모님에게 그 사실을 알리거나, 민서의 물건으로 대신 받아내거나, 꾸준히 돈을 달라고 재촉하거나 등등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것입니다. 이런 방법은 피해자 준서가 노력해야 하는 일이기에 준서에게는 이래저래 불편한 일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하는 것이 준서에게 그나마 손해가 가장 적습니다. 살다 보면 억울한 일에 휘말릴 때가 있습니다. 억울하다고 무조건 “너 고소!”라고 말하기보다 좀 더 나은 판단과 행동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사적 보복이 금지된 이 사회에서 법원이 자기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억울한 사람은 더 억울하게 됩니다. 부디 법원에서 공정한 재판을 해주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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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노트 | 문은석 - 교보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