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생크 탈출을 꿈꾸며

집이라는 감옥

by 바다숲

가끔 베란다 문을 활짝 열고 밖을 내다본다. 첨엔 나처럼 고개를 내민 사람과 눈이 마주치면 어쩌지 싶어 한 번에 쑤욱 내밀지 않고 조심조심 고개를 내밀었다. 이사 온 지 5년째지만 지금껏 내밀어진 고개를 보거나 눈 마주친 적 없다. 다들 안 답답한가.


내려다본 아파트 주차장 바닥은 시멘트 보수공사를 하지 않아 금이 여러 갈래로 아찔하게 균열이 나 있다. 걸어 다닐 땐 몰랐는데 위에서 보면 조금 무섭다. 다리를 꼰 자세로 난간에 팔짱을 낀 채 기대어 있는데, 뒤에서 아주 살짝만 튕기듯 밀어도 아래로 곤두박질칠 것 같다.

지난 봄, 단지를 둘러싸고 벚꽃잎을 날리던 나무들은 어느새 눈부신 본캐를 감추고 평범한 잎 나무로 변장했다. 여름이 다가올수록 강해지빛에 색이 바래 잎이 연초록색으로 변해가고 있다. 낮부터 비바람이 불더니 나무들이 여전히 바람에 스산한 소리를 내며 풍성하게 잎들을 서로 스치고 있다. 아파트 속 작은 숲이다. 날은 어둑해지고 가로등이 파바박 일제히 켜져서 시계를 보니 7시 54분이다.


불을 켜지 않고 한참을 어둠 속에서 생각해보니, 문득 내가 아파트에 사는 게 아니라 누가 날 아파트에 가둔 것 같다. 그것도 하루 종일.


‘집순이’라는 좋은 말도 있지만 난 집에선 순해지지도 생산적이지도 않으니 그쪽은 아니다. 다만 나가기 위한 채비가 귀찮다. 주택에 살 땐 그냥 대문 열고 나가면 끝이었다. 이제는 챙겨 입고 나가서 엘리베이터 앞에 서야 하고, 거의 매 시간 1층 흡연 구역으로 향하는 옆집사람과 마주칠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간단한 인사말이지만 내려가는 동안에 어색 뻘쭘하다. 한 번은 계단으로 뛰어 내려간 적도 있었는데, 막 문 열고 나오던 어르신이 나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셔서 다신 그러지 않는다. 1층으로 내려와도 아파트 단지를 완전히 벗어나려면 한참이다.


마지막 관문이 하나 더 남아 있다. 어디서 튀어나오실 줄 모르는 부지런한 경비아저씨께 밝은 리액션 하기이다. 매일 인사말 연습을 하시는 듯한데,

“아이고 어디 좋은 데 가시나 봐요~~ 아이고 오늘은 어딜 그렇게 바쁘게 가세요?아이고 나도 좀 알려줘요~~.”

정말로 감사하지만, 바닥까지 가라앉아 있다가 갑자기 활짝 쿵 웃으며 텐션을 올리기란 상당히 쑥스러운 일, 마스크를 더 올려 쓰며 주변을 쓱 경계한다. 이런저런 경우의 수를 생각하다 보면, 나가기도 전부터 피곤이 몰려온다. 에이 그냥 창문 열고 바람이나 쐬자. 하고 다시 벌렁 누워 버린다.




사실 다 핑계다. 어느 순간 집 밖이 두려워 스스로 가둬버렸다. 누군가 말했다. 나에 대한 자신감을 잃으면 온 세상이 적이 된다고.

처음 코로나 터졌을 때와 데자뷔처럼 똑같은 상태다. 창 밖만 내다보고 반복해서 나를 둔하게 하고 약하게 하고 불안을 키우고 시간과 희망을 좀먹고 있다.

코로나는 끝나가는데... 나는 아직 집이다.

밖은 편하게 먹을 곳도 누울 곳도 없고 불쾌한 사람을 맞닥뜨릴 가능성도 있는 위험한 곳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씩 세상 밖으로 나가야겠다. 매일 조금씩.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19년 동안 매일 망치로 조금씩 벽을 두드려 기어이 지옥에서 탈출한 앤디처럼. 교도소가 집인 듯 살다가 낯설고 두려운 바깥세상에서 진짜 자유를 찾은 레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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