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수학원 자판기 앞에서 영준이 건넨 첫마디는 “백 원만.”이었다. 한두 번 주다가 그의 주머니를 뒤져 보니, 동전이 나왔다. 다음엔 빈주머니를 뒤집어 보이길래 붙잡아 앉혀 양말 속을 뒤지니 천 원짜리가 나왔다. 이후로 친구가 되었다.
영준과 여고동창 미영은 나의 소개로 만나 20대 초반에 사귀다가 헤어졌다. 셋이 함께 만날 수가 없어 섭섭했다. 스물일곱이 되던 해, 둘이 다시 사귄다는 소식을 알려왔다. 미영인 사랑에 눈이 멀어 4년이나 사귄 남자 친구를 이미 차 버린 상황이었다. 반기면서도 걱정의 뜻을 내비친 내게, 영준은 이전 이별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정말 잘하겠다는 편지를 보내왔다.
영준이 친한 친구라면서 부른 그가 처음 주점으로 들어설 땐, 별 관심이 없었다. 말이 없고 부끄러운지 눈도 잘 마주치지 못하면서, 술은 꼬박꼬박 잘 받아마셨다. 영준의 자취방에 가서야 술에 약한 것을 알았다. 채 삼키지 못한 맥주가 입에서 줄줄 흐르는데도 안 취했다고 우기며 집에 가지 않으려 했다.
일주일이 지나고 영준, 미영과 그가 성남에 왔다. 그는 나를 처음 본 순간부터, 일주일 동안 등굣길에 본 모든 여자가 너로 보였다면서 길고 긴 고백을 시작했다. 듣다가 지루해진 나는 택시를 타고 집에 와 버렸다. 다음날 아침, 그는 한 숨도 못 잔 얼굴로 분홍 장미 한 송이를 들고 집 앞에 있었다.
“이 꽃 꽃말이 뭔지 말아? 사랑의 시작이래. 우리 사귀자.”
분홍 장미의 꽃말은 '사랑의 시작'이 아니라 '사랑의 맹세'였다.
영준의 차를 타고 넷이 자주 놀러 다녔다. 어느 여름, 유명한 계곡에 도착해 몇 걸음 앞서 걷고 있는데, 거기 있던 한 무리의 남자들이 다가와 말을 걸며 자연스럽게 짐을 받았다. 멍하게 있던 찰나, 그가 다가와 거칠게 짐을 뺏으며 분노 섞인 애교를 부렸다.
“자기야! 먼저 가면 어떡해~~”
그 일로 다 같이 한바탕 웃고 떠들고 서로 물에 빠뜨리고 신나게 놀다가 고기를 구웠다. 날이 어둑해서 고기가 익었는지 분간이 잘 안 됐다. 식탐이 많은 내가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고기를 집어 먹는 걸 보고, 모두가 경악했다.
매주 오던 그는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신발가게에 가서 한 번도 신어보지 못한 예쁜 운동화를 신겨 주며 건강히 있으라고 당부했다. 도무지 갈 것 같지 않던 시간이 흐르고 가을이 되자 우리는 다시 만났다. 넷이서 구불구불한 산속을 한참 지나 지중해 가정집처럼 보이는 아담한 펜션에 도착했다. 두 쌍의 신혼부부처럼 골뱅이와 닭볶음탕을 만들고 온갖 종류의 고기를 구워 먹고, 술을 마시며 밤새 수다를 떨었다.
우리는 바깥으로 나와 시원한 나무 평상에 나란히 누웠다.
“와, 믿어지지가 않는다. 허허, 진짜 꿈같아. 이렇게 만나다니.”
그는 들떠서 믿기지 않는다는 말을 반복했고 미영이는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고 했다. 나도 뭔가 말하려 했지만, 눈앞의 광경에 말문이 막혔다.
오염되지 않아서인지, 주변에 불빛이 없어서인지, 그의 머리카락만큼 새까만 하늘 속에 수많은 별들이 촘촘하게 박혀 있었다. 그가 몸을 돌려 나를 바라보자 순간 하늘의 별들이 그의 눈 속에 풍덩 담겼다. 별이 와락 내 얼굴에 쏟아질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데 그가 팔베개를 해줬다. 그렇게 오래 누워 하늘을 바라봤다.
사랑은 시든 꽃잎처럼 흩어져도, 사는 동안 기억은 남는다. 지칠 때 가만히 눈 감으면 별이 쏟아질 것 같은 산자락 평상에 별 같은 눈을 한 이와 쉬는 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