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이었던 그는 버스 안에서 쪽잠을 자며 경기도 성남과 전남 여수, 왕복 열두 시간을 매주 오갔다. 직장인인데다 저질 체력이라 갈 엄두를 못 냈고, 그가 오는 걸 당연하게 여겼다. 통화하다 다툰 어느 날, 이메일로 날벼락같은 이별통보를 받았다. 당장 여수로 가려했지만, 가 본 적이 없어 막막했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울먹거리며 모니터 앞에서 발만 동동 구르는 걸 본 동료 선생님이 이메일을 찬찬히 들여다보더니 말했다.
“선생님, 여기 마지막에 ‘ps. 혹시 할 말 있으면 이메일로 보내줘.’라고 되어 있잖아. 누가 정 떨어진 사람한테 헤어지자고 하면서 답장을 달라고 해? 이건 절대 진심이 아니야. 그러니까 기다려. 기다리면 연락 올 거야.”
선견지명이 있던 그녀의 조언에 맘을 다잡고 기다렸더니, 며칠 만에 연락이 왔다.
그는 평소 표현을 잘 하지 않는 내게, 은근히 서운한 맘을 내비쳤다. 화해한 김에 소개해준 친구에게 주소를 물어 깜짝 놀래 줄 요량으로 여수로 향했다. 고속버스 안에서 sg워너비의 ‘아리랑’ 노래가 반복해서 흘러나왔다.
‘나는 천 번을 다시 태어나도 그댈 사랑합니다. 오늘도 기다리는 나를 잊지는 말아요.’
이별하러 가는 것도 아닌데 애절한 멜로디와 노랫말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계속 쏟아졌다. 사랑한다는 말을 오늘 하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후회할 것 같았다.
대학교 앞 불 꺼진 공원에서 저만치 그가 보이기에, 반가운 마음에 달려가 두 손을 맞잡고 눈을 지그시 보며 말했다. 예상과는 달리, 얼굴에 스쳐가는 차가운 표정에 순간 분위기가 얼어붙고 혼란스러웠다. 택시에 타서는, 그 말만은 자기가 먼저 해야 했다며 후회와 두통이 밀려오는 듯 이마를 짚는 그를 보고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여수는 게장도 유명하지만 특히 활어횟집이 많다. 광어회 소(少) 자를 시켰는데 시간이 흘러도 회가 전혀 줄지 않았다. 둘 다 날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대부분 회를 좋아하니 지레짐작하고 없는 형편에 무리해서 간 것이었다. 서로 젓가락만 깨작대다가 결국 포기하고 매운탕을 달라고 하니, 회를 다 먹어야 준다고 했다. 물정 모르는 나이라 찍소리도 못하고 다시 깨작거리다 결국은 상추 밑으로 남은 회를 전부 은폐하고 간신히 얻은 매운탕으로 허기를 채웠다. 밤이면 50가지 색으로 옷을 갈아입는다는 황홀한 돌산대교를 건너 자정이 넘도록 지치지도 않고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걸었다.
다음날, 일출을 보고 소원을 빌어야 한다는 그의 채근에 새벽같이 일어나 ‘향일암’ 가는 첫차에 몸을 실었다. 잠을 설친 데다 살을 에는 듯 추운 날씨여서인지 전날 먹은 회와 소주가 위를 타고 역류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토악질을 했다. 그는 등을 두드려 주며 하얗게 질린 내 얼굴을 보고 고생만 시켜서 미안하다며 곧 차를 사서 편하게 해 주겠다고 말했다.
오르막길이 이어지는 컴컴한 산길을 오르며 힘겹게 도착한 그곳엔 희미하게 서광이 비치고 있었다. 일출을 많이 본 건 아니지만, 끝없는 수평선 위에 멋스러운 기와지붕과 구름 사이로 떠오르는 일출은 정말 장관이었다. 예쁘지도 않은 나의 옆얼굴을 해와 함께 담겠다고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수십 번의 셔터를 눌러대는 그를 흐뭇하게 바라봤다. 해를 향해서 그리고 수많은 돌탑들을 향해서 두 손 모아 우리가 함께 빌었던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몇 해 전, 친구와 여수에 간 적이 있다. ‘엑스포’와 ‘여수 밤바다’ 노래 덕에 관광지로 훨씬 유명해진 후였는데도, 풍경이 사뭇 스산했다. 사람들은 사나운 해풍을 정통으로 맞은 듯 눈이 풀려 있었고, 버스에 한쪽 발을 올리자마자 문도 안 닫고 출발을 해서 바닥에 발이 질질 끌렸다. 비를 맞으며 거북선 등 유적지를 돌다가 게장을 먹고 올라오는 길은 여느 여행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엄마가 집에 오시면 늘 빨간 등대 앞 오이도 수산시장에 모시고 간다. 제철 생선을 골라 주문하고 2층으로 올라가면 기본 상차림과 함께 푸짐하고 두툼한 회가 나온다. 잘 드시는 모습을 보며 일찌감치 주문한 매운탕을 맛있게 먹는다.
나는 지금도 회를 좋아하지 않는다. 나이가 들면 식성이 바뀐다고들 하고, 예전보다 나물을 즐기고 느끼한 것을 물려하지만, 회를 좋아하지 않는 것만은 끄떡없이 그대로다. 그때 횟집 주인이 볼까 무서워 상추 밑으로 꽁꽁 숨겨 두었던 회와 함께 사랑한 기억도 그곳에 묻어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