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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 Dec 20. 2021

순두부의 응원가

남편과 나란히 서서 교실을 올려다봤다. 4층 오른쪽 교실에서 필기시험과 면접을 본다고 했다. 눈은 4층에 붙박이 한 채로 운동장을 서성이며 남편과 기도를 다. 고등학교 입시가 있는 초겨울 날씨에는 몇 시간 서 있는 것만으로도 쉽게 체온을 빼앗겼다. 기도하는 마음의 열기야 시간이 지날수록 올라갔지만 몸의 체온은 쉽사리 회복될 거 같지 않았다.


시험을 끝낸 아들과 들어간 식당은 순두부집이었다. 학교가 위치한 익산 지역 미륵사지 부근엔 순두부 집이 여럿 있었다. 몽골몽골 한 순두부의 부드러움과 따끈한 음식의 온도에 마음부터 먼저 풀어졌다. 아무것도 첨가되지 않은 듯 한 순백의 순두부는 그저 수고했다고 몇 번이고 말하고 싶은 우리 부부의 위로를 담고 있는 듯했다. 아들이 합격했다면 여러 번 가며 먹게 되었을 것이고 입시에 얽힌 순두부의 위로는 희석되었을지도 모른다.


입춘이 다가오는 때가 되면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늘 호된 감기를 앓았다. 아버지는 물수건을 번갈아 차갑게 적셔 이마에 얹어 주셨고 가까운 두부 공장에서 순두부를 사다 주셨다. 단백질 보급원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때의 순두부는 음식이라기보다는 감기약의 다른 이름이기도 했고 건강식품으로 기억되는 최초의 음식이기도 했다. 물컹한 순두부를 몇 번 먹고 나면 봄이 다.


손주가 이유식을 하게 되면서 먼저 떠오른 것이 순두부였다. 단백질 보급원으로 아버지가 사다 주셨던 순두부가 대를 이어 손주에게로 향했다. 손주의 피부만큼이나 하얗고 부드러운 순두부를 첫 손주는 꿀꺽꿀꺽 잘 삼켰다. 간을 하지 않은 순두부는 할머니의 수저에서 손주의 입속으로 들어가며 벙글거리는 할머니의 웃음도 함께 데리고 들어갔다.


본당에 새로 부임하신 신부님은 음식에서 소식과 소박을 겸비하셨다. 식사를 청하는 신자들과 늘 순두부를 드셨다. 전골처럼 고기가 들어간 상향된 두부가 아닌 가장 저렴한 가격의 순두부를 드셨다. 사제를 대접하려는 신자들의 마음을 겸손하게 받아들였다. 밥값을 내는 사람도 대접받는 사람 그 누구도 부담되지 않는 음식, 순두부에서 사제의 소박함과 신자에 대한 배려를 보았다.


여행길에 들른 유명 순두부집에서 10가지가 넘는 순두부 메뉴를 보았다. 해산물과 각종 버섯 등 첨가되는 식재료에 따라 순두부 명칭이 달라졌다.

“어머니 어떤 순두부 드실래요?”

“내가 이가 시원찮으니까.. 버섯 순두부 먹을란다.”

옆 테이블에서 며느리와 이야기하는 시어머니는 허리가 반이 굽어 있었다.

몇 개 남지 않은 치아로 천천히 순두부를 먹는 시어머니에게 오늘 최고의 음식은 순두부였을 것이다. 나는 전복 순두부를 먹었다. 그리고 허리가 굽고 나이가 더 들게 되면 나도 버섯 순두부를 먹게 될 거라 생각했다.


나에게 순두부는 어쩐지 약자의 음식이 되었다. 열 감기를 앓고 있거나, 이가 돋기 시작하는 아기이거나, 마음을 졸이는 수험생이거나, 치아가 시원치 않은 노인이거나 또는 주머니가 가벼운 사람이거나 모두를 위한 배려의 음식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순두부를 먹으면 왠지 마음이 편안해진다. 긴장된 마음이 무장해제된다. 냉장고에 순두부 하나쯤 들어있으면 왠지 나는 순한 사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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