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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 Dec 06. 2021

다 장어 때문이야

아들이 남편을 닮았다는 외형적인 표지가 하나 있다. 둥그스름하게 나와 있는 배다. 흔히들 ‘똥배’라고 이야기하는 그 배를 볼 때마다 나는 살짝 한 숨을 쉰다.      


남편은 자신의 배는 이미 초등학교 때부터 나와 있었다며 트레이드마크 인양 자연스러워한다. 가끔은 그 배에 두 손을 나란히 얹고 받침대로 사용하기도 한다. 남편의 배가 가장 돌출되어 보이는 때는 술 한 잔 걸쳤을 때이다. 그때는 무게 중심이 배 쪽으로 옮겨지는 것인지 현관문이 열리면 남편의 배부터 먼저 들어온다. 그 배를 볼 때마다 신경이 곤두서던 과거의 감정들은 이젠 희미한 기억들로 남아있다. 평상심을 유지할 수 있는 내공까지는 아니어도 가끔씩은 남편의 배가 귀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니 세월이 많이 흐르긴 했나 보다.


남편의 배도 이러할진대, 아들의 배는 어떠하겠는가? 엄마 눈에야 아들의 무엇인들 귀엽지 않은 것이 있을까 마는 그래도 똥배의 귀여움은 장차 며느리의 몫으로 남겨두고 싶다.      


남편이 어린 시절을 추억할 때 빠지지 않는 음식 이야기를 듣자면 남편 배의 9할은 할머니의 음식 때문인 거 같다. 그렇지만 고등학교 때부터 기숙사 생활을 한 아들의 배에 내 음식을 개입시키기는 좀 무리가 있다. 그래서 나는 아들의 불룩한 배를 볼 때마다 속으로 한 마디를 한다.

“다 장어 때문이야.”     


초등학교 3학년 때, 아들의 담임선생님이 나를 불렀다. 아들이 수학경시대회에 나가야 한다고 했다. 당시 첫째인 딸에게만 교육열을 발휘하던 나는 막내인 아들에게는 ‘씩씩하게만 자라다오.’의 태도를 견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들의 수학경시대회 참여로 나의 교육열은 방향을 바꾸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아들의 일기장에 새로운 단어가 등장했다.

‘피곤하다’     


본격적인 수학의 세계에 들어서게 된 아들은 운동장에서 공을 차기보다는 책상에 앉아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중학교에 진학해서는 수학 관련 캠프에 참석하곤 했는데 한 번은 캠프에서 심하게 앓고 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지인이 보신으로 장어를 먹여보라고 권했다. “소주잔 두께만 한 실한 장어로만 한 마리 한 마리 모았다.”며 펄펄 뛰는 장어를 보여주는 건강원에서 진하게 다린 장어 진액을 해다 먹였다. 이미 배가 나온 채로 장가를 든 남편에게는 한 번도 먹여 본 일이 없는 특제 건강식품을 아들에게는 망설임 없이 먹였다.     

 

또다시 아들에게 장어가 등장한 것은 임용고시를 앞두고 서였다. 아들이 임용시험에 당연히 합격하리라 확신했던 남편은 첫 번째 시험에서 탈락하자 적지 않게 실망했다. 두 번째 임용시험에서도 미끄러지자 나의 근심도 커졌다. 시험 때마다 번번이 감기로 고생하는 것을 보며 내 허약 체질을 물려준 거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수험생 관리는 건강관리가 관건 이건만 아들이 다른 지역에 살고 있으니 2-3주에 한 번식 보는 것이 다였다. 냉장고에 음식을 채워놓아도 스스로 챙겨 먹는 일이 쉽지 않아 보였다. 매식을 하고 책상에 앉아 있는 일이 많아지면서 아들 배의 둘레는 점점 넓어져 갔다. 군대에서 10킬로가 빠져 날씬해졌던 몸매는 그 10킬로에 10킬로를 더 늘려가며 즉시 복구됐다.


세 번째 임용시험을 앞두고 아들의 체력관리에 초점이 모아졌다. 평생 허약체질로 골골대는 내게 특별한 아이디어가 있을 리 만무했다. 독감 예방접종을 하게 하고 자주 들려보는 것이 였다. 들려본다는 것은 식사를 잘 챙긴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때 등장한 구원 투수가 장어였다.      


가끔씩 가족 외식메뉴로 정해지긴 했어도 장어는 특별이란 단어가 하나쯤 들어가야 하는 메뉴다. 특별한 마음이 들어가야 선택되는 메뉴였다. 시험을 앞두고는 열흘 전부터 격일로 들려 함께 장어를 먹었다. 이틀에 한 번 다른 도시를 오가며 수험생을 챙겨야 하는 나에게도 특별 체력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장어를 몇 번을 먹고 아들은 시험을 치렀다. 그 해 시험에서도 독감을 피해가지는 못했지만 어느 때보다도 안정되게 시험을 치렀다. 덕분에 임용고시 합격에 특제 서비스로 더 둥그스름하게 나온 배를 갖게 되었다.  3년 차 수학교사인 아들은 그 둥그스름한 배를 아직도 유지하고 있다.


코로나 시국에  배의 레를 더 늘려가던 아들에게서 희소식이 들려왔다. 운동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게임(링 피트)을 하며 운동하는 것으로 집 안에서 언제든 틈이 날 때 운동할 수 있다고 했다. 아침마다 운동 결과를 전송하는 아들은 운동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누군가에게 보고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삶에서 운동 하나와 악기 하나쯤은 친구 삼아라.”는 말을 해 왔는데 그 효과인가 싶어 내심 반가웠다. 환갑 선물을 해 준다기에 체중을 좀 줄이는 것이 선물이 된다 했더니 의미 있는 몇 킬로를 감량했다. 그런데 장어로 다져진 둥그스름한 배는 여간해서 사라질 생각이 없어 보인다. 우리 집 남자들 배는 닮은꼴이 됐다.


그 배를 귀엽게 봐줄 며느리감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혹시 알겠는가? 내가 그랬듯 눈에 콩깍지가  아들의 여자 친구에게 그 배가 사랑스러워 보일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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