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에서 아침을!

have breakfast in Singapore

by 천혜경

싱가포르는 항상 더웠다.

그러나 가끔 하나님이 하늘에서 양동이로 왕창 뿌려주는 소나기는 온 나라의 초록색을 더 짙어지게 하고, 삶의 모든 구정물을 깔끔하게 씻어 주는 것 같았다.

싱가포르에는 가는 곳곳마다 그리고 집집마다 에어컨이 있었다.

잠시라도 시원한 에어컨이 있어서 정말 감사했고, 살기 좋은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싱가포르 한인교회의 선교관에 머물며 모처럼 온 가족이 할머니를 모시고 싱가포르를 돌아다녔다.

드디어 나는 파키스탄에서의 3년간의 선교사역을 정리하고, 선교단체와의 마무리를 위해 한국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어느 날 남편과 나는 모처럼 둘이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동안 내게 편지를 보내서 남편이 어떻게 지내고 있었는지 잘 알고 있기는 했다.

갑자기 파키스탄을 떠나 오게 되어 한선교사님의 소개로 싱가포르에서 어떻게 이 훈련을 받게 되었는지 그리고 얼마나 이 훈련을 통해 자신이 하나님을 더 많이 알게 되었고 행복했는지 말했다.


"여보, 그동안 정말 수고 많았어. 이제 당신도 이 훈련을 받아보면 좋겠어. 그동안 고생한 당신에게 주고 싶은 선물이야. 아이들은 내가 볼 테니까, 우리 함께 여기서 선교사님들과 지내보자."

그러나 방금 전쟁을 마치고 나온 나의 입장에서는 남편의 제안은 또 다른 전쟁에 참여하기 위해 준비하자는 말과 같은 의미로 들려왔다.


"훈련요? 정말 난 훈련 많이 받았어요.
더 이상 나를 강요하지 마세요. 저는 이제 여기까지입니다."


이렇게 우리 부부는 대책 없이 살 수 없다고, 이젠 한국으로 들어가 모든 사람들이 살고 있듯이 그냥 정상적인 삶을 살자고 말했다.

"당신은 장교였으니까 좋은 직장을 얻을 수 있을 것이고, 나는 다시 병원에 가서 일을 하면 될 거예요"

그렇게 나는 계속 남편을 설득했다.


하나님께 감사하다고 기도한 지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이렇게 반응하는 것을 보니 내 안에 해결되지 않은 화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당시 나의 상태는 누군가 내게 무엇을 하라고 말하면 그동안 내 안에 숨겨 두었던 모든 감정의 폭탄 보따리들이 다 터져서 나와서 나뿐만 아니라 주위를 모두를 완전히 폭발시키고도 남을 만큼 위험한 감정적인 상황이었다.


그렇지만 너무 그리웠던 남편을 만나고 이제 가족이 한 곳에 만났는데,
마냥 떼쓰고 화내고 폭발시킬 수는 없지 않은가?


지금까지 그 땅의 사람들을 돕는 일을 하면서 만나야 했던 모든 당연한 아픔들뿐만 아니라, 혼자서 아이들과 살아 내기 위해 넘어야 했던 그 모든 억울하고 아팠던 상황들에 대해 내 감정은 이해와 정리가 하나도 안된 상황이었다.

어쩌면 아직도 그 억울함과 서러움이 내 마음에 진행 중이어서 시간은 지났지만 남겨진 두려움이 가슴깊이 너울치고 있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계속 훈련을 시키는 하나님에 대한 나의 섭섭함이 가슴 깊이 내 믿음을 흔들리게 하고 있었다.

'훈련' 그리고 '헌신' 그 두 단어 자체가 주는 의미를 너무 잘 알았기에 그것을 받아들이기가 거북했다.


'그동안 자기는 이 좋은 곳에 있다 보니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몰라서 그러나 보네. 정말 섭섭하다. 가족이 만나서 이렇게 좋은데 또 어딜 가자고....'

중얼중얼 씩씩 거리며 나는 할머니에게 두 아이를 맡기고 혼자 잠시 나와 길을 걸었다.


누구든지 만나면 선교사로서 내 심 잘 이겨낸 사람처럼 표현은 하고 있었지만 사실 내 속 깊은 곳에는 하나님에 대해 아주 많이 섭섭해하고 있었다.


선교를 하겠다는 의미는 이런 모든 아픔을 품겠다는 의미였는데..

잘 알고 있었기에 앞만 보고 달려들었었는데...

가난을 잘 알기에 나는 할 수 있다고 믿었었는데...

이제는 머리로 아는 것과 온몸으로 살아내는 것은 너무 다르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그 선교관 구석에서 펑펑 울며 다 주절주절 하나님에게 고자질을 했다.

슬픔도 아픔도 억울함도 다 주절주절 콧물 눈물 다 쏟아냈다.




옆에 우리를 지켜보시던 할머니가 강하게 말하셨다.


"혜경아 니 많이 힘들었제 내가 잘 안다.

그런데 하나님이 니 인생 다 끝났다고 하지 않았는데 뭣 때매 그리 난리를 치노,


내가 뭣 때매 이리 달려와서 니랑 살라꼬 했는 줄 아나

나는 니가 인생에 큰 마음을 품고 달려가는 것이 너무 좋았고 부러벘다.


니가 하고 싶다는 일을 했는데 뭣이 그리 억울하노

사람이 한번 결정하믄 힘들더라도 끝까지 가보고 후회해도 늦지 않다.


그라고 솔직히 니만 고생했나.

느그들 둘이 달린다고 고생한 두 아이들의 인생은 뭐꼬...


정신 차리레이 니는 이제 두 아기들의 엄마다. 알것나!

느그 엄마처럼 평생 아파서 살아야 하는 엄마도 있다.

근데 니는 열심히 일하는 엄마가 돼야 안 되겠나


느그 신랑이 니가 가자 해서 따라 나온 길 계속 가자꼬 하는데 뭣이 그리 억울하노.

암튼 나는 김서방 편이다.

이제 기도만 죽자 살자 하지 말고 정신 차리고 이제 일어나라 니가 갈길이 멀다!"


할머니의 말씀에 나의 모든 뇌의 신경줄이 제자리도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나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고 엄살 부리는 사람 같았다.

난 정말 힘들었는데.. 할머니에게 안겨 펑펑 울었다.

할머니는 나의 상황을 가장 많이 알고 이해해 주시는 것 같았다.

할머니의 따뜻한 품에 안겨 눈물을 흘리면서 내 가슴의 쓰레기들을 다 쓰레기 통으로 버릴 수 있었다.

할머니의 말씀이 감정에 휘말려 내가 힘겹게 이겨낸 귀한 시간조차 쓰레기 통에 버릴 뻔한 위험한 순간임을 알게 해 주었다,


며칠 남은 시간 동안 남편이 그동안 같이 지냈던 외국 선교사들을 만났다.

이 단체는 국제적인 선교사님들이 모여 같이 사역을 했다.

싱가포르뿐만 아니라 세계로 많은 선교사들을 보내기도 하고 서로 어울려 공유하며 멋지게 선교하는 단체인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리더 되시는 분들이 나와 나의 아이들을 위해 그렇게 기도하셨던 사실을 듣게 되었다.

만나는 선교사님들 마다 얼마나 친절한지 영어로 소통하기 어려워하는 내게 수고했다고 말해주었다.

나의 모든 고통들은 다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이 나를 그렇게 험한 곳에서 일하게 하신 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지를 계속 격려해 주었다. 그리고 친절하게 안아주시고 기도해 주시고 계속 격려해 주었다.


그래서 남편에게 말했다.

당신이 나를 따라 먼 곳을 온 것처럼 나도 당신이 이 길이 선교를 하는 길이고, 하나님의 우리 가족을 향한 부르심에 확신하다고 생각한다면 나도 두 아이들도 당신과 같이 가겠다고 이야기했다.

남편과 나는 넓은 주차장 구석에 같이 격려하고 다시 한번 도전하기로 결심을 했다.




3년 내내 숨죽이고 숨어 살다 온 부끄러운 선교사인 내게 여러 사람들을 보내셔서 위로해 주시고 꽉 눌러둔 모든 것들을 다 풀어내고 다시 세우시는 하나님을 만났다.


키 큰 억새풀 사이, 땅바닥에 납작이 붙어 피어있는 들꽃 같은 내가 하나님의 눈에 보일까? 항상 궁금했는데, 이제 알게 되었다. 하나님은 나의 모든 시간을 다 보고 계셨고, 언제나 함께 하셨다는 것을.


이렇게 어리고 상처투성이인 내게 선교의 제2막이 열리고 있었다.




* 사진 출처 : v06-1.jpg (2048 ×1365) (iamarchitect.s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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