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찾아 2941마일!

딸과 아빠의 기적적인 재회!

by 천혜경

아이들에게 있어서 아빠와 엄마는 소중한 존재이다.


내 삶에도 어린 시절에 어머니와의 갑작스런 이별을 경험했었기 때문에 아빠와 엄마의 존재의 필요성을 뼛속까지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잘 알고 있었지만 정작 엄마가 되었을 때는 모든 상황이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에 힘들었었다.


삶의 여정에 매일 시간 시간 살아가는 인간인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얼마나 완전하게 다 준비할 수 있을까?

이십 대에 큰 비전을 품고 달려 나와 상황과 상관없이 달리는 아빠와 엄마의 딸로 그리고 아들로 태어나 잘 자라준 두 아이가 그저 고마울 뿐이다.



딸이 태어난 지 3개월 때 엄마인 내가 결핵과 여러 질병으로 아이를 선교지에서 돌볼 수 없어 파키스탄으로 가야 하는 엄마 아빠와 떨어져 한국에서 1년 동안 친정어머니가 돌봐 주셔야 했었다.


아들은 태어난 지 3 개월이 안되어서 아빠의 갑작스러운 비자거절로 아빠 혼자 싱가포르로 떠나야 했었다.


그래서 3개월 된 아들과 한국에서 데리고 온 1년 3개월이 된 딸 그리고 나의 외할머니와 함께 우리는 아빠 없는 6개월을 살아내야 했었다. 남자가 없이 파키스탄에서 살아가는 것은 정말 쉽지 않았다.


그러나 기적같이 무사히 의료팀의 임기를 잘 마무리하고 드디어 남편을 찾아 싱가포르로 갈 수 있게 되었다.


신기하게도 딸과 아들 둘 다 태어난 지 3개월 즈음에 아빠와 헤어지는 경험을 하였다.

어린 시절 부모와의 이별을 경험한 엄마로서, 나는 두 아이와 함께 반복되는 순간마다 안전하게 이 불안정한 이별의 다리를 건너기 위해 얼마나 긴장했는지 모른다.


9개월 된 아들을 하얀 기저귀 띠로 업은 나는 옷걸이 인양 양쪽 어깨에 줄줄이 가방을 들고 앞섰다.

할머님은 21개월 된 딸을 손에 꼭 잡고 온 얼굴 가득 피곤함이 가득한 채고 비행기를 탔다.


그 시절에는 일회용 기저귀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천 기저귀를 한 가방 들은 가방을 갖고 비행기를 탔고 두 아이들 때문에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는 나의 모습이 상당히 불안했는지 그런 순간마다 승무원들이 나타나 도와주셨다.

그리고 비행기 안에서 울고 보채는 아이들에게 작은 선물도 주고 안고 돌봐 주었다.

비행 내내 기쁨인지 슬픔인지 모르는 눈물이 줄줄 흘렀다.


아빠 없이 외할머니와 두 아이를 데리고 병원일과 교회일을 열심히 달렸었다.

어떤 작은 감정의 분열도 나를 흔들 수 없을 만큼 정말 바뻤었다.

그리고 '살아내야 한다'라는 강렬한 나의 본능적 움직임이 나를 24시간 돌려주었었다.


긴 머리를 질끈 묶어 올리고 하얀 긴 기저귀로 아들을 업은 30대 엄마,

허리가 굽은 77세 할머니와 손잡고 아장아장 걷는 딸과

질질 끌려오는 삼단짜리 이민 가방들...


휴! 이제 모든 것이 다 끝났다.


드디어 비행기를 타고 남편 그리고 아빠를 만나러 가는 길이다.

꿈꾸었던 대로 멋지게 그리고 신나게 선교사로 제대로 살지 못하고 이렇게 나오는 것이 가슴 아프고 아쉽지만 한편으로는 지독히도 긴 고생의 여정이 끝났다는 것이 내심 속이 시원하기도 했다.


온 가족이 함께 계속 선교를 같이 하고 싶었는데….


내 앞에 누워 있는 아들과 내 옆에서 잠을 자고 있는 딸의 엄마로 그리고 안타깝게 혼자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남편을 생각하면서 언젠가 그런 날이 올 것을 기대하며 아이들과 나와 외할머니가 모두 무사히 그 땅에서 나오게 해 주신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하다고 생각했다.


싱가포르에 이 상태로 가서 우리 가족은 앞으로 어떻게 살까?


가슴에 밀려오는 두려움과 불안함을 일부러 밀어내고 오히려 그렇게 몰아치던 폭풍우 속에서 우리를 보호해 주시고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하며 비행 내내 마음을 안정시켰다.




비행기가 싱가포르에 도착했다는 안내 방송과 함께 나의 마음은 조금은 빠르고 밝은 박자로 두근거렸다.


아! 드디어 우리 가족이 다 만나는구나.

그동안 남편은 어떻게 지냈을까?

우리를 기다리는 남편은 얼마나 마음이 두근거릴까!


싱가포르 공항은 아주 깨끗하고 아주 큰 유리창으로 되어있었다.

내 시원한 마음을 표현하듯이 이쪽도 저쪽도 가릴 것 없이 시원하게 다 보였다.


몇 시간이 지난 것뿐인데 이렇게 다른 새로운 세상에 왔다는 것이 너무 놀라웠다.

타임머신을 타고 전기 불이 환하고 네온사인 이 가득한 미래의 어느 도시에 온 듯한 놀라움에 우리들은 천천히 우리가 소중히 들고 온 두 아이의 기저귀가 잔뜩 들은 짐을 찾기 위해 짐이 나오는 곳으로 갔다.


할머니와 나는 잠자던 아들을 업고 딸과 함께 짐을 찾고 있었다.

창밖에 서 있는 많은 사람들 속에 있을 남편을 찾는 내 눈이 더 두근거렸다.


멀리 창문 너머에서 여전히 활짝 웃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서 “ 아빠가 저기 있네 가봐”라고 말했다.

엄마 말을 알아들은 듯이 딸은 싱가포르 공항의 그 커다란 창문을 향해 천천히 뚜벅뚜벅 걸어가는 것이었다.


아빠를 찾아 카라치에서 싱가포르 까지 비행기로 2941 마일을 날아온
딸과 아빠의 첫 만남이었다.

내가 짐을 챙기는 동안

딸은 그 많은 사람들 속에서 아빠가 있는 창문으로 아장아장 걸어서 점점 다가가는 것이었다.


아빠는 이미 눈물을 흘리며 창가에 서서 창문에 손을 대고 딸을 쳐다보고 있었다.

딸은 그 많은 사람사이에서 아빠를 찾은 것일까?

딸은 천천히 걸어가서 아빠의 손이 보이는 창문에 자기의 손을 대었다.


생후 3개월부터 아빠와 헤어져 이제 겨우 1년 9개월 된 딸이 어떻게 아빠를 기억했을까?

창가에 늘어선 사람들 안에서 어떻게 아빠를 찾았을까?


딸과 아빠의 기적적인 재회의 순간이었다.


사랑이라는 DNA는 정말 우리의 신경안에 살아 서로 끌리게 하는 것 같다.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아빠 사진을 보고 아빠라고 부르던 딸의 눈에는 아빠의 얼굴이 박혔던 모양이다.

그렇게 그리워하던 아빠를 한 번에 찾아 다가가는 딸의 모습이 대견하고 놀라웠다.


“아이고 자기 아빠라고 저거 봐라 찾아가는 것 봐라 지가 언제 만났다고 저래 찾아가노” 라며 할머님이 한참이나 우신다.


공항문에 활짝 팔을 벌리고 서 있는 남편, 딸을 향해 눈물을 머금고 달려와 안아 주는 아빠.


"아고 자네 잘 있었나?"

라고 할머님에게 인사하는 손녀사위를 안아주고 등을 두드려 주시는데, 남편도 흐느껴 울었다.


시꺼먼 삼단 이민 가방을 질질 끌며 아기를 업고, 한 아이는 손에 잡고 할머니와 함께 나타난 초췌한 아내의 모습에 남편은 펑펑 울며 나를 안아 준다.


“수고했어 여보!
이제는 절대 헤어지지 말자. 이제는 절대 헤어지지 말자. ”


숙소에 도착해서 아이들을 재우고 정말 오랜만에 밀린 많은 이야기를 남편과 나눴다.

아침에 일어나 새날을 맞이 한 우리 가족과 할머니는 남편이 준비해 둔 맛난 아침 토스트와 우유를 마시며, '아고야 빵도 부드럽고, 우유가 고시다..' 라며 행복하게 하루를 시작했다.

두 아이들도 새로운 환경에 벌써 적응해서 인지 잘 먹고 많이 웃었다.


남편은 할머님에게 너무 감사하다고 감사인사를 드리고 할머니는 눈물을 흘리시며,

“자네도 그동안 수고 많았지. 이렇게 이쁜 아기들을 아빠가 못 보고 지냈으니 그 마음은 오죽하겠나. 그리고 엔간하면 인자는 가족끼리 헤어지지 말고 사그라 내가 옆에서 보니 자가 너무 고생이 많더라 ”라고 하시면서 내내 남편의 등을 쓰다듬어 주셨다.


고속버스에서 만나 결혼하고 두 사람의 꿈을 펼치기 위해 가정을 꾸미고 후회 없이 치열하게 달려온 3년의 시간을 우리 부부는 절대 후회하거나 원망하지 말자고 결심했다.


오히려 이 시간들을 살아낸 우리 두 사람과 함께한 모든 분들과 그 안에서 태어나 같이 달려준 두 아이에게 감사하고 더 멋진 내일을 향해 달리자고 결심했다.


초록색 나무가 즐비해 있는 오차드 로드 멋진 길가의 커피숖에서

가족을 무사히 기적적으로 만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행복의 눈물을 펑펑 흘리며 우리 두 사람은 손을 꼭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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