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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단 난민학교

조각난 삶 위에 피어난 희망!

by 천혜경

수단에서 전쟁이 시작되었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그저 멀리서 일어나는 또 한 나라의 아픈 이야기 로만 여겼다.
그러나 그 전쟁은 끝날 줄을 몰랐다.

몇 달이 지나도, 몇 년이 지나도 총성이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결국, 그 전쟁의 여파가 우리가 사는 이집트 카이로까지 밀려오기 시작했다.


피난길에서 부모를 잃은 아이들,

친척을 따라 가까스로 국경을 넘은 아이들,

가족 모두가 함께 이집트로 온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설령 가족이 함께 왔다 해도, 이집트에서 살아야 하는 그들의 삶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다.


어느 날, 지하철을 탔을 때였다.
수단 아이 한 명이 내 옆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 아이 머리 위로 이집트 청소년들이 해바라기 씨를 까먹고 남은 부스러기를 툭툭 떨어뜨렸다.

그들은 킥킥 웃었고, 주위 어른들도 그 모습을 대수롭지 않게 바라보며 함께 웃고 있었다.


그 지하철 안에는 나와 그 아이, 딱 두 사람만이 '이방인'이었다.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서로 눈을 바라보았다.


눈물로 가득 고인, 슬프고 서러운 눈빛을


국제사회의 압력 속에 이집트 정부는 난민 신청을 받은 수단인들에게 난민촌을 허락해 주었다.
카이로 외곽, 그리고 도시 곳곳에 흩어져 그들은 서로 의지하며 모여 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삶의 현실은 처참했다.


좁고 비위생적인 임시 거주지, 불법 체류의 불안함,

그리고 무엇보다도 생계의 어려움 속에서 그들은 하루하루를 버텼다.


아이들의 상황은 더욱 취약했다.
난민촌이 있는 거리에는 배고픔을 참지 못해 구걸을 하는 아이들,

하루아침에 고아가 되어 방황하는 아이들이 넘쳐났다.
부모가 있는 아이들은 그래도 끼니라도 챙길 수 있었지만, 부모를 잃은 아이들은 그마저도 어려웠다.
도움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그늘진 곳에서, 작은 생명들이 점점 스러져 갔다.




그러던 어느 날, 오랫동안 그 땅에서 독신 여자 선교사로 열심히 일을 하는 친구가 찾아왔다.
오랫동안 난민 사역을 해온 그 친구는 수단 아이들의 상황을 지켜보다 결국 결단을 내렸다.

“아이들을 살리기 위해 학교를 세워야 해요.”
그 한마디에 그의 마음과 고민이 모두 담겨 있었다.


“아이들을 일단 한 곳에 모아야 해요. 점심 한 끼라도 제대로 먹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될 거예요. 어른들이 돌봐주지 않으니, 거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모르고, 아이들이 위험에 그대로 노출돼 있어요.”


학교는 단순히 글자를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 이 아이들을 보호하는 최소한의 울타리가 될 수 있었다.
나 역시 그의 결심에 마음이 움직였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점심 식사를 후원하고, 직접 선생님으로 돕는 일 정도는 감당할 수 있었다.

홈스쿨 하던 14살의 딸은 영어를, 13살의 아들은 음악을 가르치기로 했다.
두 아이는 처음엔 긴장했지만, 수단 아이들의 상황을 듣고 보고, 마음이 금세 열렸다.


가난하고, 배고프고, 미래가 불투명한 그 아이들에게 무언가 해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우리 가족에게도 특별한 기회였다.

처음 학교가 문을 연 날, 교실이라기보단 허름한 공간에 아이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낡은 옷, 맨발, 해맑은 눈망울 속에 슬픔과 두려움이 뒤섞여 있었다.

우리는 그저 그들을 따뜻하게 맞이하고, 함께 웃고, 한 끼라도 제대로 먹일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며칠 후, 영어를 가르치던 딸과 아들이 아이들끼리 작은 종이 한 장을 두고 서로 다투더니 찢어서 나눠 갖는 것을 목격했다고 말했다.
공책 하나가 귀해, 종이 한 장도 귀한 상황이었다.


그 모습을 본 두 아이는 돌아오자마자 저금통을 꺼냈다.
오랫동안 모은 동전들이었지만, 망설임 없이 모두 털어 공책을 사기로 했다.

우리는 시장을 돌아다니며 최대한 많은 공책을 샀다.

그다음 날 학교에서,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공책을 손에 쥐어주었다.
아이들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피었다.
그 작은 공책 한 권이, 그들에게는 새로운 희망과 같았다.

우리 아이들도 그 모습을 보며 마음 깊은 곳에서 뿌듯함을 느꼈다.


그다음 날, 딸은 수업을 시작하며 말했다.

“얘들아, 어제 받은 공책 꺼내보자.”
그러자 몇몇 아이들이 또 작은 종이 한 장만 꺼내는 것이 아닌가.

“선생님이 준 공책은 어디 갔니?” 딸은 물었다.


한 아이가 수줍게, 그러나 해맑게 대답했다.



“어제 받은 공책을 언니, 오빠랑 나눴어요. 그래서 한 장만 들고 왔어요.”



알고 보니, 반 아이들의 거의 모두가 그렇게 공책을 찢어 형제자매들과 나눈 것이었다.
그 비싼 값을 주고 좋은 공책을 사주었는데, 아이들은 한 장 한 장 찢어 글을 쓰고 있었다.
그렇게 하면 금세 공책은 쓰레기가 되어버릴 것이 뻔했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을 탓할 수 없었다.

그 작은 공책 한 권이, 이 아이들의 가족 전체에게 얼마나 귀중한 선물인지를 알기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오히려 마음이 저며 왔다.
공책 한 권조차 마음 편히 가질 수 없는 그들의 현실이, 내 앞에 너무나 적나라하게 펼쳐져 있었다.


그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딸과 아들이 내게 말했다.



“엄마, 우리 공책을 더 많이 사줄 수 있으면 좋겠어요.”


나는 두 아이의 순수하고 따뜻한 마음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비록 작은 시작일지라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부터 최선을 다하자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렇게 우리의 난민학교는 작지만, 아이들에게 소중한 희망을 키워주는 공간으로 자라 갔다.




이제는 남수단이 독립을 했으니, 이 아이들은 고국으로 돌아갔겠지!

모두 잘 살고 있을까?

마음 한구석이 늘 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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