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엘아리쉬의 추억!

친절한 아들이 받은 기적의 선물!

by 천혜경

2003년 어느 아침, 카이로의 공기는 평소보다 더 차가웠다.

텔레비전에서는 가자 국경지대의 충돌 소식이 끊이지 않았고, 이스라엘 가자지역 사역자들이 육로로 엘아리쉬로 넘어와야 한다고 했는데 어찌 진행되고 있는지 소식이 끊어졌다.

그분들은 전화연결이 안 되고, 이메일도 다 시원치 않아 어찌 진행되고 있는지 제대로 소식을 알 수 없었다.

멀지 않은 곳에서 터지는 총성과 피난 소식이, 평소 조용하던 이집트 까지 이렇게 영향을 미쳤다.

남편은 직접 차로 7시간 가야 하는 그 도시로 일단 가보자 고 제안했다.




우리는 그렇게 가족 모두가 함께 엘아리쉬로 가기로 했다.

친구 선교사님이 빌려준 차를 몰고 시나이 광야를 가로질렀다.

어떤 상황인지 아무것도 모르는 두려움을 마음 깊숙이 눌러 두고 그저 앞으로 달렸다.


열세 살, 열두 살 된 두 아이들, 이 불안한 길에 데리고 가야 한다는 현실이 마음이 아프지만, 그렇다고 카이로에 둘만 남겨 둘 수 없는 상황이라 우리에게 다른 선택은 없었다.



끝없이 펼쳐진 사막길을 7시간 달려야 했다.


거대한 모래언덕과 뿌연 먼지 속을 달리는 차 안은 적막했다.
늘 그렇듯이 아이들은 아빠 엄마가 있으면 그저 행복해했다.

어느새 아이들은 창밖을 바라보다가 잠들었다.

그러나 남편은 핸들 위로 굳게 잡은 손과 꽉 닫은 입술이 이미 내게 긴장을 전해 주었다.


우리의 내적인 상황과는 달리 탁 트인 사막을 달리는 기분은 정말 좋았다.

차가 없는 우리가 이렇게 차를 몰고 사막을 달리는 것도 우리 가족에게는 화려한 외출과 같았다.


시나이 반도의 광활한 자연과 모래빛의 아름다움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밤이 되면, 사막의 하늘은 끝없이 높았고, 별들로 가득한 우주를 만나는 기분이었다.


드디어 마을의 전기불 빛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고, 멀리 보이는 하얀 건물들, 우리가 가야 하는 도시인 엘아리쉬에 가까워질수록 심장이 더 빨리 뛰었다.


마침내 엘아리쉬에 도착했다.

그러나 그동안 연락이 닿지 않았던 사역자들은 이미 다른 곳으로 이동했단다.

낯선 국경 도시에서, 저녁 해가 뉘엿뉘엿 기울어갔다.

우리는 이곳에서 하룻밤을 보내야 했다.




국경 근처라 변변한 호텔도 없었다. 그런데 저 멀리 하얀색의 멋진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믿기 힘들 만큼 깨끗하고 근사한 호텔, 스위스 인 리조트였다.

문이 시원하게 열려 있었고 로비가 넓어 누구든지 쉽게 드나들 수 있었다.


먼지로 뒤집어쓴 얼굴을 씻고, 가족 모두 로비 소파에 앉아 기도했다.

"하나님,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때, 8살쯤 되어 보이는 현지 소년이 다가왔다.

그 소년은 아랍어로 말을 걸었고, 아들은 서툰 아랍어와 영어를 섞어가며 대화를 이어갔다.

금세 둘은 웃음을 터뜨렸고, 아들은 늘 가지고 다니던 작은 마술 장난감들을 꺼내 아이와 낄낄거리며 놀았다.

너무 신나게 떠들며 놀자 둘을 문 밖에 나가서 놀라고 했다.

두 아이는 문 밖에 나가서 더 신나게 뛰어다니며 놀기 시작했다.

한참 놀고 있는데, 아이를 찾는 어른이 나타났다. 아이의 아버지였다.


"어디에서 오셨습니까?"

"한국에서 왔습니다."

그 말에 그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아들이 이렇게 기쁘게 노는 것은 처음입니다. 당신 아들이 정말 좋은가 봅니다."


시간이 많이 흘렀기에 이제 우리도 나가 봐야 할 것 같아서 남편은 우리가 이제 가봐야 한다고 인사하자, 그는 물었다.

"어디로 가십니까?"


남편이 상황을 설명하자, 그는 우리를 잠시 바라보더니 말했다.


"그럼 저희 호텔에서 주무세요. 제가 이호텔 매니저입니다. 제가 갖고 있는 매니저 쿠폰을 사용할게요. 그저 당신 가족이 25달러만 지불하신다면 내일 아침 식사까지 포함되니 오늘 여기서 주무시고 내일 출발하시면 좋겠습니다."


남편과 나는 너무 놀라서,

"와! 당신이 매니저이시군요. 이렇게 환대를 해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그렇게 작게 지불하고 이 좋은 호텔에서 자도 되나요?"


"물론입니다. 내 아들이 이렇게 행복해하는 것을 보니 당신들이 떠나면 아들은 너무 슬퍼할 것 같습니다. 한 시간만 더 놀아주세요. 그렇게 만 해주신다면 저희 부자가 너무 행복할 것 같습니다."


"그럼 우리도 저녁 식사를 해야 하니 아드님과 같이 식사를 하고 올게요."


"아고 감사합니다. 아들이 같이 가서 폐를 끼칠 까봐 죄송하지만 그렇게 해주시면 아들은 잊지 못하는 멋진 추억이 될 것 같습니다. 한국 가족과 식사를 할 수 있는 케이스는 우리 마을에는 거의 없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다녀오세요 바다가 보이는 넓은 2층 을 준비 해 둘게요."


우리 가족은 너무 행복해서 그 소년과 함께 차를 타고 도시로 나왔다.

그 소년은 우리가 어느 식당이 맛있는지, 여기저기 명소를 열심히 설명해 주었다.


이 소년의 아랍어를 잘 알아듣고 대화하는 아들이 신기해서 내가 물었다.


"아들아 이 아이말을 잘 이해하네 아랍어가 많이 늘었구나."

"엄마 신기해, 이 아이말이 싹 다 이해되는 것은 아닌데, 왠지 느낌으로 다 알게 되네요"


조용했던 딸도 옆에서 아들의 활발한 대화에 참여하여 세 아이가 돌아다니는 내내 뒷자리에서 신나게 떠들었다.

그렇게 우리는 그 소년의 안내를 받아 도시를 한 바퀴 돌고 맛있는 식시도 다 마치고 호텔로 돌아왔다.


매니저는 문 앞에서 기다렸다.

키를 우리에게 주고 꼭 아침에 식사를 하라고 부탁을 했다.

그리고 아이와 아쉬운 이별을 하는데, 아들은 달려가서 그 소년을 꽉 안아주고 뭐라고 둘이 한참 이야기를 하며 악수를 하고 아쉽게 보냈다.


우리는 짐을 챙겨 이층 방으로 올라오니

침대도 넓고 큰 통창문 너머 지중해 바람과 소리가 들려왔다.

오후 내내 긴장하며 걱정하던 모든 것들이 바람에 실려 다 날아가는 듯했다.

하루 종일 운전한 남편이 가장 먼저 침대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날, 아들의 적극적인 성격과 환한 미소가 우리 가족에게 뜻밖의 따뜻한 하룻밤을 선물했다.

고마운 아들을 바라보며, 아이들도 나도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고마워 아들!
그렇게 친절하게 그 소년과 놀아주어 이렇게 선물을 받았네!"



어두운 지중해 바다를 바라보며, 이 시간이 너무 아까워서, 셋이 눈을 반짝이며 침대에 누웠다.

잠이 오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바닷소리를 들으며 밤을 깨워갔다.




어떻게 잠이 들었는지, 아침 환한 태양빛에 눈이 부셔 일어났다.

다시 돌아갈 긴 여정을 깔끔하게 준비하고 부리나케 우리는 식당으로 내려갔다.


하얀 테이블보가 깔린 탁자들이 쭉 놓여 있었지만, 식당엔 우리 가족만 있었다.
생각해 보니 그럴 만도 했다.

지금처럼 불안한 상황에 누가 이 도시에 여행을 오고, 이런 호텔에 묵겠는가!


웨이터가 와서 우리를 안내를 해 주었다.

이미 매니저가 주문했다고 하면서 차례차례 음식을 서빙해 주었다.

우리를 위해 차려진 아침 식탁은 놀라울 만큼 풍성하고 따뜻했다.

올리브와 치즈, 신선한 빵과 향긋한 허브티....

그곳에서 중동의 지중해 따뜻한 온기를 제대로 느꼈다.



지중해를 바라보며 아침 식사 하는 왕의 가족처럼!



나는 눈물이 났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호텔을 나오면서 얼마나 고개를 숙이고 인사했는지 모른다.

아직 출근 전인 매니저에게 몇 번이고 감사인사를 전해 달라고 부탁했다.


또 하나의 평생 잊을 수 없는 친구를 가슴에 안고, 아침 일찍 그 도시 엘아리쉬를 떠났다.

사막빛 광야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누군가가 먼저 닦아놓아 만들어진 가느다란 끝없는 길을 따라 열심히 달려 돌아왔다.


하나님은 정말 우리 가족이 이렇게 가는 곳마다 살아계신 표적을 보여주셨다.

그리고 하늘 위에서 우리 가족을 따라다니시는 것처럼,



우리가 걷는 모든 땅에 문을 여시고,
우연 같은 필연의 관계들을 기적 같이 엮어 가셨다.





keyword
수요일 연재
이전 19화땅끝에서 드리는 예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