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의 냄새 속에서 피어난 은혜!
한참이나 더웠던 어느 날, 한 이집트 형제가 우리를 찾아왔다.
얼마 전 결혼해 낯선 도시로 이주한 그는, 타향살이의 외로움과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몇 시간씩 기차를 타고 우리 집을 찾았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는 큰 아픔을 안고 있었다.
사랑하는 가족과 종교적 이유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받아 오랜 시간 소원한 관계였다.
특히, 부모님과의 단절은 그에게 깊은 슬픔이었다.
그는 늘 울며 기도했고, 그 아픔을 우리와 나누며 관계는 점차 깊어졌다.
서로 말이 다르고 문화가 다른 이방인 선교사와 현지인 사이에 신뢰를 쌓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마음을 열었고, 우리는 그 자체로 하나님께 감사했다
늦은 저녁에, 그 형제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예수님을 만났으면 좋겠어요.
혹시 저희 집에 한번 방문해 주실 수 있을까요?”
그의 간절한 요청을 듣는 순간, 마음이 울컥했다.
외국인 신분으로, 그것도 이집트의 외진 지역에서 겨우겨우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그가 사랑하는 부모님을 ‘한 번만 방문해 달라’고 부탁하는 그의 요청은 얼마나 깊은 신뢰였는지....
그래서 그의 마음을 잘 아는 우리는 망설이지 않고 그의 고향을 방문하기로 결정했다.
기차를 타고 한참을 달려 도착한 작은 시골 마을.
그곳은 도시와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우리는 마치 한 편의 드라마처럼, 그 형제가 마련해 준 ‘아들의 친구’라는 신분으로 조용히 그 집을 방문했다.
어둑한 방 안에는 아픔의 냄새가 가득했다.
낡은 나무 침대 위에는 병든 노인이 누워 계셨다.
그 옆에는 조용히 어두운 얼굴의 어머니가 앉아계셨다.
오랜 병상 생활로 인해 방 안은 시간이 멈춘 듯한 공간, 노 부부의 고통과 고단함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나는 조심스레 그의 곁으로 다가가 앉았다.
남편은 무릎을 꿇고 다가가, 그분을 덥석 안아 일으키며 손을 잡아 주었다.
순간, 할아버지의 축 처진 큰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그는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렇게 가까이 와서 누가 나를 안아준 건 정말 오랜만입니다. 저에게는 피부병이 있어서 가족들도 조심했어요. 그런데 당신은 겁도 없이 이렇게 저를 안아주시네요. 어서 손을 씻으세요.
나의 고질병이 당신에게 옮을까 봐…
당신은 아들의 친구인가요?
아들은 잘 지내나요? 만나지 못한 지 아주 오래되었네요.
이렇게 한국분이 누추한 곳에 와 주시다니 아들은 참 좋은 친구를 두었네요.
우리 아들은 잘 살고 있나요? 친구인 당신을 보니 아들은 잘 사는 것 같네요."
남편은 그분에게 자초지종 아들이 어떻게 잘 지내고 있는지, 사업이 잘되고 있고, 딸아이를 낳았다고 알려 주고 지난번 우리 집에 왔을 때 찍었던 사진도 보여 주었다.
아버지는 아들의 소식을 듣는 내내 고개를 끄덕이며 눈물을 뚝뚝 흘리셨다.
그리고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혹시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실 수 있어요? 나도 조금 병이 나으면 아들가족을 만나고 싶네요. 내가 나가라고 했는데.. 이젠 만나보고 싶네요. 아들도 힘들었을 텐데, 잘 살고 있다니 너무 기쁩니다. 이렇게 소식을 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나도 이제 아들이 믿는 예수님을 믿고 싶어요.”
그의 고백에 방 안은 눈물바다가 되었다.
남편의 얼굴엔 말로 다 할 수 없는 기쁨이 번졌고, 그는 더욱 강하게 그의 손을 잡았다.
남편은 간절한 목소리로 조용히, 깊이 있게 기도했다.
그리고 둘은 서로를 껴안고 한참을 울었고, 그 장면을 지켜보던 우리와 가족들도 모두 눈물을 흘리며 함께 기도했다.
나는 속으로 하나님께 간절히 구했다.
혹시 남편에게 피부병이 옮은 건 아닐까 걱정이 되었지만, 동시에 그렇게라도 주님의 사랑이 전해졌다는 것이 감사했다.
남편은 그 순간, 조건 없이 품는 하나님의 마음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그날, 우리 분명히 알게 되었다.
하나님은 우리보다 먼저 그곳에 계셨음을...
병든 몸과 외로움 속에 살아가던 한 사람의 마음에, 예수님의 사랑이 손길로, 눈물로, 그리고 기도로 흘러들어 가고 있었다.
돌아오는 기차 안, 우리는 꼭 손을 잡고 말없이 창밖을 바라보았다.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삶은 여전히 낯설고 복잡하며, 때로는 버겁기까지 하다.
그러나 병들고 지친 이들을 찾아가 잠시 머물렀을 뿐인데, 그들이 눈물 흘리며 기뻐하는 모습을 마주할 때마다 우리는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
더 많은 아픈 이들에게 다가가야겠다고,
평생 이렇게 살아야겠다고!
어쩌면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아주 특별한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한 영혼이 예수님을 믿겠다고 고백하던 그 순간, 그 한마디 고백 앞에서 내 안의 모든 피곤이 순식간에 녹여 버렸다.
간절히 기도하며 기다리고 있을 아들에게 전화를 했다.
이 놀라운 소식을 가장 먼저 듣고 싶은 사람이었기에....
전화선 넘어 그의 눈물의 흔들림을 느끼며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전화를 아버지에게 바꿔 주었을 때,
두 세대의 화해가 그리고 사랑이 전선을 따라 어두운 방안에 기쁨으로 가득 차올랐다.
말로 다할 수 없는 은혜였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사람들이 온 땅에 흩어져 있기에…
우리 부부는 다시 결심했다.
낡은 배낭을 메고, 아주 작은 개미처럼 묵묵히, 그러나 기쁘게 그 길을 걷기로...
지구 끝 알지 못했던 낯선 땅, 어디든지 누구든지 와달라고 한다면 , 주저하지 않고 다가가기로...
주님이 부르신 그 길 위에서,
매일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따뜻한 사랑으로 살아가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