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신가?"
준민이가 오락기에서 나오는 소리를 바꿔 따라 했습니다. 처음 듣는 사람들에겐 시끄러울 수도 있는 준민이의 입담이 안 들리는 날이면 무척 서운한 감정이 들기도 합니다. 소리를 따라 할 때마다 게임 속 포로를 한 명씩 구출해 줬어요.
분명 준민이는 인정하지 않겠지만 구출하려고 노력했다기보다는, 총으로 정신없이 갈겨대고 있었습니다. 아이템을 얻기 위해 산탄총을 포로에게 여러 번 쏘기도 했거든요. 보기에 따라서는 이 게임은 정말 잔인하기도 해요. 내 편 다른 편 상관없이 수많은 총을 사용하니깐요.
어쨌든 전쟁, 군인, 전투에 관심 있던 나이에 '메탈'은 우리에게 환상적인 오락실 재밋거리였습니다. 오락실에 도착하기 전부터 메탈 소리가 들리는지 안 들리는지에 따라 기분도 달라졌습니다. 소리가 안 들린다면 자리가 비어있다는 것이라 우리는 달리기 시작했어요. 반대로 온갖 소리가 흘러나오면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지 긴장된 마음으로 오락실 문을 열었습니다.
"에휴. 또 상철이 형이 하고 있는 거 아냐?"
"우리 형이 하고 있으면 계속 동전 넣을 텐데.."
상철이 형은 상용이의 둘째 형입니다. 상용이보다 더 많은 동전을 짤랑거리며 오락실에 오곤 했습니다. 오락기에 한번 앉으면 그날은 그 오락기는 피해서 게임을 해야 했어요. 다행히 상철이 형은 약속이 있다면서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끼약~"
상용이도 적군이 죽으면 나오는 소리를 따라 했습니다. 상용이는 준민이가 내는 소리를 살짝 피해 그 옆에 끼약 소리를 붙여서 추임새를 맞추었습니다. 이 시절 오락기에서 나는 배경 음악과 소리는 우리에게 리듬감을 안겨주는 리듬박스였습니다. 다양한 오락기에서 나는 소리는 모두 따라 할 수 있었습니다. 새로운 소리를 만들어내기도 했습니다. 분명 영어로 나오는 오락기의 소리가 모두 한국어로 변하는 마법을 부리기도 했으니깐요.
"땡큐~"
저는 포로 아저씨들의 말을 수줍게 따라 했지요. 둘의 목소리보다는 작았지만 게임을 지켜보면서 어쩐지 따라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우리만의 세계에서 둘이 하는 것은 나머지 한 명도 해야 한다는 건 암묵적인 합의였거든요. 오락기 소리를 따라 하는 것은 개인기 비슷한 것이었어요. 따라 할 수 있느냐 따라 하지 못하느냐에 따라 오락실 인생의 경력을 말해주었습니다.
"포로는 왜 옷을 벗고 있는 거냐?"
"그거야 옷에 다가 여러 무기 아이템을 숨기고 있으니깐 그렇지."
"무기들이 안 보이는데?"
"게임이잖아. 당연히 안 보이지. 그렇게 만들어 놓은 거야."
아직 게임 메커니즘을 이해하기에는 무척이나 지식수준이 낮았던 상용이와 나로선 준민이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작년엔 주인 할머니가 안쪽 방에서 게임 적군을 조종하고 있다면서 우리끼리 말다툼을 하기도 했습니다. 여러 번 정탐한 결과 그것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되었어요. 준민이가 게임을 할 때 상용이와 내가 동전을 바꾸는 척 계속 안쪽 방 빈틈을 보았거든요.
"포로는 원래 바지만 입는 거야."
"갇혀 있는데 어떻게 빨래를 하겠어."
"그러면 바지는 왜 입고 있냐? 팬티만 입고 있어야지."
"바지를 입고 있으니깐 포로지."
"팬티만 입고 있으면 노예가 되는 거야."
"맞아. 내가 얼마 전에 본 비디오에서도 노예들이 배에 갇혀 있는데 팬티만 입고 있더라."
포로와 노예의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포로는 1년 정도만 갇혀 있는 거고, 노예는 평생을 갇혀 있어야 해."
우리는 그렇게 이해했습니다. 1년과 평생. 10살 인생에서 평생은 엄청나게 긴 시간이었습니다. 물론 1년도 짧은 시간은 아니었어요. '할렐~', '루야~'를 앞으로 1년을 외쳐야 한다니 좌절하는 친구들에겐 아무튼 긴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이야기를 들으며 이 녀석들의 섬세한 관찰력에 조금 놀랐습니다. 저는 적군만 보았지. 포로라고도 생각하지 못했으니깐요. 내가 가진 상식으론 전쟁이 있었고, 자기편을 구하려고 다니는 멋진 주인공들이었어요. 포로가 입은 바지까지 신경 쓰는 준민이와 상용이를 보면서 역시 오락실에 많이 들락날락했던 거구나 싶었습니다.
오락실 게임을 하다 보면 친구들은 종종 세 종류로 나뉘었습니다. 첫 번째 종류는 준민이 같은 캐릭터입니다. 준민이는 게임을 하다 보면 이런 말들을 하곤 했거든요.
"내가 저놈들을 다 죽일 거야.."
"아. 너 때문에 내가 죽었잖아. 이길 수 있었는데."
"이번엔 어떻게든 다음 판으로 갈 거야."
"다음 판에선 내가 어류겐으로 저 형을 꼭 이겨야지."
준민이는 승부사입니다. '게임의 목적은 이기는 것이다.', '무조건 이기고 다음 판으로 진격한다.' 이것이 준민이가 게임을 하는 목적입니다. 이기기 위해 게임을 하니 당연히 가장 게임을 잘했습니다.
"흐흐."
"야. 나도 같이 가자."
"게임 같이 할래?"
"나 오늘 동전 많이 가져왔다."
게임을 같이 하는 것을 즐기는 상용이는 언제나 두 번째 게임 자리를 선호했습니다. 준민이는 항상 첫 번째 게임 자리를 원했어요. 상용이가 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보호받는다는 느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상용이는 항상 첫 번째 플레이어의 길을 따라갔거든요. 어느 날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어쩌면 상용이가 가장 게임을 잘할 수도 있겠다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이지요.
저는 세 번째 타입입니다. 뒤에서 보고만 있습니다. 오락기에 직접 참여하지 않아도 그 재미를 충분히 느낍니다. 오락실에 가기 전의 설렘과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들리는 따그락 거리는 소리들. 동전을 바꾸기 위해 주인 할머니 건넌방 문을 드르륵 여는 소리. 동전이 명쾌하게 오락기 안으로 떨어지는 소리들. 그 모든 오락실의 분위기가 좋았습니다. 준민이와 상용이가 게임에 몰입하여 전보다 더 전진하는 모습을 보면 영화를 보는 듯했어요. 분명 둘의 대화와 게임 플레이는 스토리를 만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짧은 한 편의 영화 같았습니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게임이든 스포츠든 이기고 지는 것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는 걸요. 내 시간을 온전히 가져갈 수 있다면 하기 싫은 게임에서 얼른 지고 일어서는 타입이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소극적으로 뒤에서만 게임을 보는 버릇을 해서 일지도요.
"상용아. 아까 왜 점프했냐?"
"난 습관적으로 메탈 할 땐 점프해. 통통 튀는 것 같잖아."
"아니 왕이 거기서 대포를 엄청 쏘는데 숙여야지. 왜 점프하냐는 거지."
"그러면 넌 왜 죽었냐?"
오락실에서 나오면 꼭 했던 게임에 대한 비난과 칭찬이 집까지 이어집니다. 언제나 그렇듯 지나가는 어른이 보기에 싸우는 것 같지만, 우리들은 아무런 감정이 실리지 않은 일상의 대화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