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 콘웨이, 588권
감상
모래는 유리의 재료가 된다.
1차 세계 대전 때 독일과 영국군은 서로 유리와 고무를 바꿔가며 전쟁을 계속했다.
광섬유는 정보를 멀리까지 전달하는 데 역할을 한다.
골재로 녹여지고, 아스팔트로 만들어진다.
콘크리트 역시 모래가 주성분이다.
콘크리트는 빈민가의 바닥으로 설치되면서 아이들의 기생충 감염률이 급속히 떨어지게 했다.
반면 콘크리트는 산업 용수의 10분의 1을 시멘트 산업이 차지할 정도로 물을 많이 사용한다.
모래의 순수 실리콘은 반도체 웨이퍼로 변신한다.
중국을 제외한 스페인에서 실리콘메탈을 만들고, 독일에서 폴리실리콘으로 가공한다.
최초의 트랜지스터는 실리콘이 아니라 열에 취약한 게르마늄으로 만들어졌다.
이후 폴리실리콘은 신에츠로 이동해 실리콘 웨이퍼로 탄생한다.
중국은 태양광용 폴리실리콘은 만들 수 있지만, 반도체용 폴리실리콘은 생산하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는 실리콘 웨이퍼에 들어가는 석영암이 오직 미국의 스프루스파인에서만 생산되는 것과 관련 있다.
중국은 훌륭한 인터넷 기업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왜 반도체 회사의 성장이 늦어지는가?
그것은 시대적 현상과 관련이 있다. 대만의 많은 젊은이는 60~70년대 엔지니어링을 전공했고, 중국이 유학생을 보낸 90년대 이후에는 인터넷 기업에서 경력을 쌓았기 때문이다.
소금 생산과 관련해 칠레가 볼리비아와 전쟁 후 항구를 차지하면서 볼리비아는 내륙국이 되었다. 농업 생산과 관련된 질산염 사막을 차지하기 위한 태평양 전쟁이다.
철은 탄소 함량이 높은 주철 또는 선철, 부서지기 쉽다.
탄소 함량이 낮은 연철, 부드러워 쉽게 펴질 수 있다.
강철은 탄소 함량이 2% 미만으로 가장 강하다.
대장장이가 철을 두드리는 이유는 적당한 강철로 만들기 위함이다. 탄소 함량을 조절할 수 있을 정도로 숙련된 대장장이가 장인의 이름을 얻는다.
타이태닉호는 강철로 건조되었다고 하지만, 지금으로선 강철의 수준이 낮았고, 못 부분은 연철로 만들어져 쉽게 침몰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볼펜 촉의 강철 볼 베어링과 소켓은 일본, 독일, 스위스 정도에서만 생산할 수 있다.
일본 펜이 좋은 이유이기도 하다.
석유와 관련하여 미국의 정제공장들이 중질원유에 특화되어 있어, 미국산 경질원유 정제에 적합하지 않다는 점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최대 산유국 자리에 올라있음에도 산업 체질의 변화 없이는 산유국의 이점을 누리기 어려운 것이다.
이 책은 이해하기 쉽지는 않다. 다행인 점은 읽어가며 일상에서 이용되는 산업의 핵심 원료들이 어떻게 세계를 이동하며 우리 주변으로 오는지 알기 쉽게 설명하려고 노력한다. 작가도 기자이기 때문에 깊은 지식보다는 전반적인 흐름을 알려주려고 해 잘 읽히는 편이다.
반도체와 석유에 관해 알지 못했던 점을 알 수 있었고, 기술은 발전시킬 수 있지만, 원료는 쉽게 얻을 수 없다는 말에 수긍된다.
이 책의 한 문장
세상 모든 것이 강철로 만들어지진 않지만, 세상의 거의 모든 것이 강철로 제작한 기계로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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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이야기가 모래에서 시작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인류가 모래를 활용하여 환경의 많은 부분을 만들어냈기 때문인데, 그 덕분에 물질 세계를 개관할 수 있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제품인 유리, 가장 고도화된 제품 중 하나인 반도체가 바로 모래로부터 나왔다. 모래가 물건을 만드는 물질이라면, 소금은 물건을 변형하는 데 필요한 마법의 물질이며 인간의 건강과 영양에 필수 요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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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이 적국인 독일에 도움을 요청한 것보다 더 놀라운 일이 그다음에 벌어졌다. 독일이 '예스'라고 대답한 것이다.
굉장히 놀라운 이야기이다. 독일이 진지하게 제안했다는 점은 영국의 공식 기록에 나오는 세부 사항이 뒷받침한다. 왜 독일은 자국 병사들을 죽이는 데 사용될 기술을 영국에 제공하려 했을까? 그 대답은 독일이 받을 반대급부에 있었다. 영국을 비롯한 연합국, 그리고 그 식민지 국가들은 거대한 고무 생산지를 보유하고 있었는데, 전쟁이 발발하자 독일의 고무 수입을 완전히 막아버렸다.
독일은 영국에 쌍안경을 제공하는 대신 고무를 요구했다.
그러나 전쟁, 팬데믹, 수에즈운하 사고 등 예기치 못한 대참사가 벌어지면 원활하다고 믿었던 공급망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1916년 북해에서 벌어진 유틀란트 해전에서 영국 해군과 독일 해군이 맞붙었는데, 이때 양국의 해군 장교들은 같은 공장에서 생산한 쌍안경으로 서로의 동정을 살폈다. 어느 영국군 장교는 포탄이 비처럼 쏟아지는 배 위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거 정말 괴이한 일이로군. 저 멀리 떨어진 곳에서 독일 배의 돛대 위에 올라간 병사가 자이스 쌍안경으로 영국 함대를 정찰하고 있어. 나또한 자이스 망원경으로 적의 움직임을 정찰하고 있고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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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라발의 석영은 이따금 주방 싱크대 상판으로 사용된다. 곱게 갈아서 정원을 장식하는 데 사용하거나 골프장 벙커의 백사로도 사용된다. 사실 세라발을 찾아온 진짜 이유는 이 산에서 나오는 커다란 석영 덩어리를 보기 위해서였다. 이 하얗고 먼지 쌓인 돌덩어리가 몇 달 혹은 몇 년을 거치면 차세대 반도체가 된다. 그래서 바로 세라발이 우리 반도체 여행의 출발점인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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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광산의 소유주는 스페인 회사 페로글로브 Ferroglobe로, 중국을 제외하면 세계 최대의 실리콘메탈silicon metal 제조사이다. '중국 제외'라는 단서를 붙인 이유는 오늘날 기술 혁명의 원료 성분들 대다수가 중국에서 채굴 및 제련되기 때문이다.
"이것들은 대형 용광로이고, 그 안에는 부글부글 끓는 이산화탄소 대류가 일어납니다. 만약 모래를 사용하면 필터를 통해 빠져나가기 때문에 용해될 수가 없겠죠. 그러므로 주먹 크기의 석영 덩어리가 필요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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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 여행의 다음 목적지는 대부분 이름조차 들어본 적 없는 회사일 것이다. 페로글로브에서 나온 야금 단계의 실리콘 덩어리들은 독일 회사인 바커Wacker로 향한다. 바커는 중국을 제외하면 세계 최대의 폴리실리콘polysilicon 제조사인데, 폴리실리콘은 일반 실리콘보다더 순수한 실리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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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도 99.999999퍼센트의 실리콘은 숫자 9가 여덟 개 들어가는데, 이는 다결정 태양광발전 등급의 폴리실리콘이다. 9가 아홉 개인 순도 99.9999999퍼센트의 실리콘은 단결정 태양광발전 등급의 폴리실리콘이다. 실제로 어마어마한 폴리실리콘이 태양광 패널로 쓰이는데 대다수가 중국에서 생산된다. 그러나 주목할 점은 중국이 아직도 실리콘세계의 마지막 관문인 반도체 등급의 폴리실리콘을 생산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반도체 등급의 폴리실리콘은 순도가 99.9999999퍼센트에 달하는데 순수 실리콘 원자 10억 개 중 불순물 원자가 딱 하나인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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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 세계에서 물질적 측면이 얼마나 중요한지 상기시키는 또 다른 예가 있다. 트랜지스터를 만들려고 했던 초창기 시도들이 좌절된 이유는 지능이나 상상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믿을 만한 물질이 없었기 때문이다. 1947년 벨 연구소에서 월터 브래튼과 존 바딘이 발명한 최초의 트랜지스터는 실리콘이 아니라 게르마늄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게르마늄은 트랜지스터에 적합하지 않은 물질이었다. 최초의 트랜지스터는 고온에서 잘 작동하지 않았는데, 반도체는 금세 뜨거워지므로 이 점은 아주 치명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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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에츠는 일본의 세계적인 웨이퍼 제조사이다. 우리는 컬럼비아강의 강둑에서 21세기 미국 실리콘 산업의 진원지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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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실리콘은 신에츠 실험실에 몇 달간 머무르는 동안 이 기계에서 저 기계로 왔다 갔다 하면서 당겨지고, 조각나고, 닦이고, 청결하게 유지되면서 각종 테스트를 거친다. 그래도 어쨌든 실리콘 웨이퍼를 얻는 과정에 대해 어느 정도감을 잡았을 것이다.
지난 70년간 이 과정들은 과학인 동시에 예술이었다. 실리콘밸리 초창기, 대다수의 반도체 제조사가 실리콘 웨이퍼를 직접 만들면서 결정을 사람 손으로 잡아당겼다. 대부분 여성이었던 기계공들은 검은 안경을 쓰고 도가니를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적정 속도로 시드 크리스털을 들어올리고 회전시켰다. 숙련도가 높은 기계공들은 빠르게 명성을 얻었다. 초창기 기술 회사들은 웨이퍼 품질을 높이기 위해서 귀중한 숙련공을 서로 모셔가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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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주목할 점이 있다. 중국은 실리콘메탈과 태양광 폴리실리콘의 글로벌 공급망을 상당 부분 장악한 상태다. 그러나 가장 최고급 실리콘 칩용 웨이퍼는 아직 만들지 못하고 있다. 독일의 바커가 만드는 폴리실리콘은 원소 10억 개당 불순물이 1개 정도인데, 아직 그 수준의 제조는 어려운 것이다. 중국도 열심히 애쓰고 있지만 신에츠의 도가니에서 끄집어내는 완벽한 수준의 웨이퍼는 만들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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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이 부문을 완벽히 지배하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이 문제는 모래, 그중에서도 특정한 유형의 모래와 연관이 있다. 신에츠의 도가니에서 완벽한 실리콘 잉곳을 꺼내어 얇게 썰어 웨이퍼를 만들려면 앞 공정에서 초순수 실리콘을 녹여야 한다. 이때 특정한 유형의 석영암이 필요한데, 그것을 얻을 수 있는 곳은 세상에서 한 군데뿐이다.
이토록 중요한 물질을 전 세계 단 한 곳에서만 공급한다니 처음 접하는 사례일 것이다. 실리콘 웨이퍼를 만드는 도가니에 들어갈 정도로 순도가 높은 석영암을 얻으려면 스프루스파인 Spruce Pine을 찾아가야 한다. 스프루스파인은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블루리지산맥의 급경사면에 자리 잡은 작은 마을이다. 이곳의 광산은 세계에서 유일한 고순도 석영 공급처인데, 기밀 유지에 극도로 신경 쓰는 벨기에 회사 시벨코sibelco가 오랫동안 운영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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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중국은 실패했는데 대만은 성공했을까? 그 이유를 설명하는 흥미로운 관점이 하나 있다. 대만이 기가 막히게 타이밍을 잘 잡았다는 것이다. 1960~1970년대 대만은 수많은 대졸자를 미국 대학으로 보냈고, 유학생들은 엔지니어링을 전공해서 인텔이나 텍사스인스트루먼트 같은 회사에 취업했다. 이들은 미국에서 습득한 기술과 지식을 그대로 대만으로 가져왔다.
중국이 1990~2000년대에 개방 정책을 실시하며 대졸자들을 미국에 유학 보낼 무렵 미국의 기술 산업 판도는 크게 바뀌어 있었다. 이때 부상한 곳들은 마이크로소프트 Microsoft, 아마존 Amazon, 구글 같은 소프트웨어 회사였다. 중국인 유학생들은 중국으로 돌아와 하드웨어 산업을 구축하는 대신 미국에서 배운 것을 바탕으로 인터넷 서비스 회사들을 창업했다. 알리바바Alibaba, 위챗WeChat의 모회사 텐센트Tencent, 틱톡TikTok의 모회사 바이트댄스ByteDance가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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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은 현대의 산업 지형에서도 변함없이 중요한 위치를 지키고 있다. 지도 위에서 세계의 제약회사와 화학회사를 한번 살펴보자. 그러면 이들이 아직도 고대의 소금길을 따라가고 있다는 사실이 눈에 들어온다. 영국의 경우, 화학회사와 제약회사는 여전히 소금 생산지 부근에 자리 잡고 있다.
미국의 대형 화학회사인 다우Dow가 괜히 미시간주에 본사를 둔 것이 아니다. 다우의 본사는 디트로이트 지하에 위치한 깊은 암염층의 바로 위에 있다. 화학제품과 의약품을 싣고서 이곳을 오가는 트럭들은 실제로도 우리 조상들이 밟았던 오래된 소금길을 오가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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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가 곧 볼리비아를 정복했고, 그 뒤 페루와 칠레의 함선들이 서로 포탄을 뿜어댔다. 이 전쟁에는 '태평양 전쟁 War of the Pacific'이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10센트 전쟁 Ten Cents War' 혹은 '질산칼륨 전쟁Saltpetre War'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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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는 아타카마의 질산염뿐만 아니라 구리와 리튬의 세계 최대 매장지를 보유하게 되었다. 이 전쟁으로 칠레는 자원 강국의 자리에 올랐지만 볼리비아는 모든 해안을 빼앗기고 말았다.
이후 칠레의 질산염은 온 세상의 식량과 무기 생산을 지원해왔다. 1차 세계대전 때 참호 위로 쏟아져 내린 연합국 포탄들은 모두 칠레의 질산염으로 만들어졌다. 질산염을 수출하여 번 돈으로 칠레 정부는 도로, 철도, 전기 시설과 배관 등을 건설했고 유럽 선진국들이 향유하던 선진적인 군대와 20세기의 자랑거리들을 갖출 수 있었다. 이 하얀 소금 덕분에 칠레는 남아메리카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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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철은 강철steel로 가공된다. 강철이라는 이름이 붙긴 했지만, 본질적으로는 단순히 철의 여러 종류 중 하나일 뿐이다. 철의 종류를 판가름하는 단서는 탄소 함량이다. 철이라는 스펙트럼의 한 극단에는 주철cast iron 혹은 선철pig iron이 있다. 선철의 영문명 '피그 아이언'은 쇳물을 거푸집에 붓는 모양이 어미의 젖을 먹고 있는 새끼 돼지들을 닮아서 붙은 이름이다. 선철은 탄소 함량이 약 3~4퍼센트로, 부서지기 쉬운 금속이다. 철 스펙트럼의 반대쪽 극단에는 연철wrought iron이 있다. 연철은 망치로 두드려서 펼 수 있을 정도로 부드러운 성질을 갖고 있으며, 극소량의 탄소를 함유한 매우 순수한 금속이다. 선철과 연철의 중간에는 강철이 있다. 강철은 일반적으로 2퍼센트 미만의 탄소 함량을 보인다. 아조우스탈 제철소에서 생산하기도 했던 연강mild steel은 대부분 탄소 함량이 1퍼센트 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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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단순한 산업혁명이 아니었다. 물질 혁명이었고, 무엇보다도 에너지 혁명이었다. 인류가 나무와 목탄에서 화석에너지로 이동하는 최초의 위대한 에너지 전환이었다. 19세기 초가 되자 영국의 산업 전반이 석탄에서 동력을 얻었다. 이것은 매우 특이한 사건이다. 1800년 시점에 영국이 사용한 에너지의 95퍼센트가 석탄에서 나왔는데, 같은 시기 프랑스는 에너지의 90퍼센트 이상을 나무를 태워 얻고 있었다. 이제 영국은 땅에서 얼마나 많은 나무가 자랄 수 있는가 하는 유기적 한계에 얽매이지 않았다. 그리고 이 무렵, 이전까지 프랑스와 비슷한 수준이었던 영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폭등하기 시작했다. 19세기 초 영국은 프랑스보다 80퍼센트 더 부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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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품질과 관련하여 가장 유명한 사례는 아마도 1912년의 타이태닉호 침몰 사고일 것이다. 타이태닉호는 당시에 가장 강력하고 단단한 강철로 건조되었다. 그러나 최근에 타이태닉호의 선체를 분석한 결과, 지금이라면 절대 검사를 통과하지 못할 등급의 강철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타이태닉호에 사용된 강철은 유황 함량이 높았고, 망간 함량은 낮았으며, 낮은 온도에서 부서지기 쉬운 편이었다. 선체의 강철을 제자리에 고정하는 못 대부분이 강철이 아니라 저렴한 연철로 만들어진 탓에 파손에 더 취약한 상태였다. 만약 이 배가 현대의 강철로 건조되었더라면 빙산과 충돌에서 살아남을 확률이 더 높았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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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은 강철에 있다. 중국이 경이로운 양의 강철을 생산하고 전 세계 펜의 80퍼센트를 만들고 있음에도, 그 펜의 주요 기술인 자그마한 강철 볼 베어링과 소켓을 생산하는 능력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중국산 펜촉은 종종 거칠고 긁는 듯한 소리가 났다. 며칠 못 가서 잉크가 떨어지거나 고장이 나기도 했다. 제조사들은 고급 펜촉이 필요할 때 일본, 독일, 스위스에서 강철 부품을 수입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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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에서도 가장 이름이 덜 알려진 강철은 아마도 저배경 강철lowbackground steel일 것이다. 저배경 강철은 핵에너지의 한 종류인 방사성 동위원소에 전혀 오염되지 않은 금속이다. 방사능 측정 장비인 가이거 계수기나 의료 기기처럼 민감한 장비를 생산하는 데 필수 재료이기도 하다. 오늘날 저배경 강철을 생산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최초의 원자폭탄이 터진 이후로, 지구의 대기는 코발트 60 같은 동위 원소의 핵 오염 물질을 극소량이지만 계속 포함하고 있다. 그 양이 너무 적어서 눈에 띄는 위험은 거의 없고 서서히 줄어들고는 있지만 강철의 세계에서는 문제가 된다. 강철을 만들 때 쇳물에 분사하는 산소는 공기 중에서 얻기 때문에 방사성 동위원소가 여기에 스며드는 것을 완전히 막을 길이 없다.
그러므로 저배경 강철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1945년 핵실험전에 이미 존재했던 금속들을 찾는 것이다. 그래서 오래전에 침몰한 전함이 인기가 많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스코틀랜드 북부의 스캐파플로에서 침몰한 독일 함선들의 잔해에서 나온 강철 일부는 의료 장비로 다시 태어나기도 했다. 남중국해에서는 오래된 전함에서 금속을 훔쳐서 파는 도둑질이 성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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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곳에서 추출하는 금속량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호주, 브라질, 러시아의 철광석 광산이 추키카마타 광산을 쉽게 능가한다. 철광석은 구리에 비해 광물 함량이 매우 높다. 철광석의 철 함량은 60퍼센트인 데 비해, 동광석의 구리 함량은 겨우 0.6퍼센트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구리 1톤을 얻으려면 철 1톤을 얻을 때보다 훨씬 많은 흙을 파내야 한다. 구리를 채굴할 때는 다른 금속에 비해 흙을 훨씬 많이 퍼내야 하지만 그 최종 결과물은 매우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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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자동차는 센서와 전기 부품들을 연결하는 구리선을 약 1.6킬로미터 내장한다. 전기차는 일반 자동차보다 서너 배 더 많은 구리선을 내장하는데, 그중 절반이 모터로 들어가고 나머지는 배선 뭉치와 배터리로 들어간다. 배터리로 구동되는 버스는 모터와 회로, 일반 전선보다 훨씬 더 많은 전류를 전달하는 금속 막대인 버스바busbar에 거의 반 톤의 구리를 사용한다. 고속철도에는 더 많은 양의 구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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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셀링의 정유공장은 전 세계에서 온 대략 100가지 맛의 다양한 원유를 정제할 수 있다는 사실에 자부심이 있다. 이곳에서는 유럽연합이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금지한 일이 딱히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다른 나라에서 온 원유를 혼합하면 되었다. 대부분의 회사에서는 특정 종류의 원유를 처리하는 설비만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굉장히 곤란한 상황이었을 것이다. 이것은 언뜻 기술적인 이야기로 들리지만, 사실은 현대 사회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보여준다. 그 예로 미국이 현재 겪고 있는 곤란을 생각해보라.
대부분의 미국 정유공장은 캐나다, 멕시코, 베네수엘라에서 얻은 무겁고 시큼한 중질원유를 정제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미국에 매장된 원유가 금세 고갈될 것 같았던 때에는 이런 방식의 운영이 타당했지만, 그 후 셰일 혁명이 일어났다. 셰일 원유는 비중이 가볍고 품질이 뛰어난 경질원유이므로, 이는 중질원유를 중심으로 돌아가던 기존의 정유공장들에는 희소식이 아니었다. 그 결과, 미국은 소비량보다 훨씬 많은 원유를 생산하면서 산술적으로는 에너지 자립을 이루었으나 실제로는 자립 상태가 아니게 되었다. 기존의 정유공장들을 운영하기 위해서 해외에서 계속 중질원유를 수입하는 동시에 텍사스산 경질원유는 유럽과 아시아에 보내 정제 처리를 하고 있다. 그러므로 미국이 세계 에너지 체제를 벗어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상황이다. 이것이 바로 미국 대통령이 전 세계를 오가며 원유 문제를 계속 협의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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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탄가는 연료의 내폭성을 나타내는 수치이다. 내연기관에서 연료가 비정상적으로 연소할 때 일어나는 폭발을 '노킹knocking'이라고 하는데, 노킹이 일어나지 않고 연료가 얼마나 압력에 잘 견디는지를 옥탄가로 측정한다. 옥탄가가 높은 연료가 있으면, 스핏파이어, 랭커스터 등의 전투기에 롤스로이스 멀린 같은 고성능 엔진을 장착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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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튬이 물질 세계의 6대 핵심 물질로 자리 잡게 된 확실하고 실증적인 논리가 있다. 리튬은 매혹적인 금속이다. 빅뱅 당시에 수소, 헬륨과 함께 창조된 세 가지의 원시 원소로 우주에서 가장 오래된 물질 중 하나다. 리튬처럼 가볍고, 전도성이 있으며, 전기화학적 특성을 모두 갖춘 원소는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리튬처럼 에너지를 잘 저장하는 금속도 없다. 무척 가벼워서 기름 위에 뜨고, 아주 물러서 식칼로도 자를 수 있지만, 반응이 매우 빨라서 물과 공기에 닿았을 때 거품이 일거나 폭발하는 등 화학 실험실 외부에서 원소 형태로 본 적이 없는 물질 중 하나이다. 이런 반응성은 왜 리튬이 가장 강력한 배터리의 핵심인지, 왜 21세기 현대 사회의 핵심인지를 설명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