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부 종소리
종종 해가 지는 노을을 바라볼 때면 가끔 어렸을 적 가물가물해지는 그리운 소리가 있다. 항상 그런 하늘이 될 때면 들리던 어머니의 저녁 식사 호출 소리이다. 놀 거리가 없기도 없던 시절이었지만, 나무 막대기 하나면 하루 종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던 어린 시절(정말 어린 시절이다).
서울 태생인 나는 태어난 이 동네를 벗어난 적이 없다. 국민학교가 초등학교로 바뀌어 가던 그때엔 맨션이라는 지금으로 보면 작은 아파트 개념의 주거 단지가 있었다. 맨션 입구를 지나가면 작은 놀이터가 있고, 지붕 없는 평상의 하늘은 큰 은행나무가 사시사철 지켜주고 있다. 3층 연립주택이 4~5개 동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내 또래 아이들끼리 저녁 시간이 되면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놀이터에 모여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다. 핸드폰 같은 건 당연히 없었다. 저녁 시간 때가 되면 누군가의 어머니의 목소리가 집으로 오라는 자연스러운 호출 소리 시작이었다.
그런 어머니의 목소리 말고도 기억나는 소리가 있는데, 작은 리어카 가득 두부가 실려 있는 두부 장수의 종소리이다. 큰 사각 판 속에 층층이 쌓여 있던 두부를 칼로 슥슥 썰어 봉투에 담아 줄 때면 아직 따뜻한 그 두부를 안고 집으로 돌아가는 그 길이 참 즐거웠다. 리어카엔 함께 콩나물도 가득 실려 있었는데, 신기한 것은 두부장수가 맨션을 나갈 때쯤 이면 수북하던 콩나물이 항상 바닥을 보였다는 것이다. 1000원이면 따뜻한 두부 한 모와 콩나물 한 봉지를 가득 살 수 있던 시절이었다.
우리 집 반찬엔 항상 두부가 올라왔었다. 어머니의 두부 조리법이 달랐었는데, 평소에는 노릇하게 구운 따뜻한 두부에 간장이 올라왔고, 매운 양념장에 버무린 두부조림은 넉넉히 만들어 놓았다가 냉장고에 보관하기도 했었다. 뜨거울 때 먹는 것도 맛있었지만 냉장고에서 차가운 양념 두부를 마가린과 뜨거운 밥에 녹여 비벼 간장을 살짝 뿌려 먹은 그 맛은 우리 집 만의 별미였다. 그중 가장 생각나는 맛은 아버지의 반주 반찬으로 드시던 데친 두부와 김치였는데, 어린 내 추억 속엔 두부와 막걸리가 어떻게 어울릴까 의아한 음식 중에 하나였던 것 같다. 젓가락이 잘 안 가는 두부 메뉴였는데도 기억이 나는 이유는, 시골 할머니 가 보내 주셨던 들기름의 향 때문이었던 것 같다. 깨와 들기름이 버무려진 따뜻한 두부가 접시에 모락모락 김이 올라올 때면, 방안 가득 고소한 들기름 향이 어린 나에게도 그렇게 정겹게 다가 올 수가 없었다. 더 어른이 되어가는 나에게 제육을 함께 볶은 김치와 데친 두부는 정말 고단한 하루를 마무리하기엔 정말 최고의 야참이며 술안주가 아닐 수 없다. 이제는 두부장수의 따뜻한 두부도, 할머니의 고소한 들기름 향도 그 전과 같을 순 없겠지만, 집에 앉아 그런 두부를 먹고 있자면 어렸을 적 두부를 부치는 어머니의 뒷모습과 아버지의 막걸리가 생각나기도 한다.
콩의 가공품인 두부는 약 2000원 전 중국 전한 시대의 기원전 2세기경에 만들어졌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많은 음식의 기원이 그러듯이 지금의 우리들은 기록으로 남겨진 문헌으로만 음식의 역사를 유추할 수 있는데 두부의 창조설은 그 보다 이후인 기원 후 7세기인 당나라 시대에 만들어졌다는 설이 있다. 우리나라에는 고려시대 때에 중국을 통해 두부 기술이 유입된 것으로 보이며 고려말 성리학자 이색의 목은집에서 두부에 대한 글이 기록되어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불교 국가였던 고려시대에 중국으로 유학을 갔던 스님들을 통해 넘어왔다는 설이 있으며, 육식을 멀리하는 사찰 음식 특성상 많이 식용되며 발전되어 왔다. 두부 제조는 스님들에게 꽤나 친숙한 일과였는데 유교 국가인 조선으로 넘어가면서 상대적으로 천대받게 되던 스님들에게 두부의 제조는 괴로운 일 중 하나가 되기도 한다. 조선 중기 스님들이 만드는 두부로 소식을 하는 ‘연포회’라는 모임이 선비들 사이에서 성행을 하나, 닭고기로 육수를 내야 하는 연포탕을 살생을 금하는 스님들에게 만들라고 하니 아주 고역이지 않았을까 싶다.
한국과 중국 말고도 두부를 가장 많이 생산하고 소비하는 나라가 바로 일본이다. 일본의 두부는 임진왜란 이후에 발전되기 시작했는데, 문화재뿐만 아니라 많은 조선의 기술자들이 납치된 그때에 조선의 두부 기술자도 납치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일본 두부로 가장 전통 있고 유명한 두부인 고지시의 당인 두부가 있다. 당인 두부의 당인은 당나라, 중국인 이란 뜻이 아니라, 외국인이란 뜻으로 임진왜란 때 끌려간 조선의 박호인 이 만든 것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전쟁 포로로 끌고 갈 정도로 조선시대의 두부 기술은 삼국을 통틀어 가장 훌륭하였으나, 임진왜란 후 쇄락한 국력과 피해로 점차 빛을 잃어 가기 시작했지만 근래에는 새로운 두부에 대한 개발과 맛에 대한 노력으로 다시금 전성기를 찾아가고 있다.
한국에서 유명한 두부 중 하나는 강릉의 초당 두부이다. 홍길동전을 쓴 허균 선생의 부친인 초당 허엽이 강릉에 거주하면서 강릉의 깨끗한 바닷물로 간을 맞추어 두부를 만들었는데 그 두부가 맛이 좋아 그 이름을 자신의 호인 초당을 붙여 초당 두부로 명명하였다. 지금 까지도 초당두부는 마을이 형성될 정도로 성업을 하며 수공업 전통 방식으로 만드는 곳에서 전국적으로 두부를 유통하기도 한다.
오스테리아 주연 오너 셰프 김동기 paychey@naver.com
재료: 두부 100g , 삶은 감자 50g , 새송이 버섯 30g, 밀가루 15g, 빵가루 50g, 계란 1알
마늘 1톨 , 양파 10g, 소금 1ts , 후추 some , 파프리카 파우더 1/2ts , 건 바질 some
튀김용 기름 1L
-두부는 으깨어 수분을 빼준다.
-새송이 버섯과 마늘, 양파는 다져준 후 볶아 소금 간을 해준다.
-두부와 감자, 식은 야채들에 파프리카 파우더와 건 바질 소금과 후추를 넣어 반죽을 해준다.
-밀가루 계란물 빵가루를 입혀 180도씨에서 천천히 튀겨준다.
-마요네즈나 케첩을 곁들여 먹으면 더 맛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