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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lla L Dec 15. 2023

산타나라의 크리스마스 마켓

헬싱키에서 만났어요



핀란드 호텔의 눈 쌓인 정경

오늘도 헬싱키는 눈이 내린다.

많이도 쌓였다.


친한 친구와 오게 된 비즈니스 트립은 늘 즐겁다.

2023년의 한 해가 저물어간다. 12월에 헬싱키 여행을 한다면 크리스마스 마켓 방문을 빼놓을 수가 없다.

'산타 마을'이라는 별칭을 가진 곳의 크리스마스 마켓은 어떨까?


난 이제까지 프랑크푸르트, 뮌헨, 베를린, 프라하, 파리, 런던 등 여러 유럽 도시들의 크리스마스 마켓을 방문해 보긴 했다. 그중 나의 최애는 뮌헨이었는데 오늘 그 순위가 뒤집어질지 모른다.


우리는 핀란드 반타 국제공항 주변의 호텔에 머물고 있다.

핀란드 국제공항과 헬싱키 시내는 다행히 그리 멀지는 않다. 타 유럽에 비하면 교통 체증도 많이 심하지 않은 편이다. 버스를 이용하고 싶다면 호텔 앞의 버스 정류장에서 600번을 타면 약 50분 뒤 헬싱키의 중심 광장에 데려다준다. 참, 헬싱키 버스는 현금을 받지 않는다. 사실 유럽의 상당 도시들이 현금 쓰는 것을 지양하게 된 지 꽤 오래됐다. 헬싱키의 네이버 맵 같은 HSL이라는 애플리케이션을 다운로드하여 거기에서 Single Ticket 또는 Day Pass와 같은 티켓을 구매하여 이용한다. 애플리케이션의 티켓을 사면 헬싱키 시내의 버스, 트램 등을 이용할 수 있다. 하루 이용 기준  4-5유로이다. 특별히 티켓 검사를 철저히 하진 않지만, 무임승차를 하다가 걸린다면 80유로의 벌금이 적용되니 양심을 시험에 들게 하지 않는 편이 현명하겠다. 택시 이용 애플리케이션으로는 우버(Uber), 볼트(Bolt) 등이 있는데, 보통 30분이 걸리고 20-30유로이다. 나는 택시를 이용하는 날이면 우버와 볼트의 가격을 모두 찍어보고 더 경제적인 쪽으로 선택한다.


오늘 우리는 3명이기도 하고 찬 바람이 조금 두려웠기 때문에 택시를 이용하기로 했다.

Senate Square을 치고 가면 잠시 후 헬싱키 대성당 앞의 크리스마스 광장에 도착이다.


함께 나간 친구 중 한 명은 일을 하며 헬싱키 시티에 나가는 것이 너무 오랜만이라며 한참 신이 나있었다.

Senate Square


30분 정도 달린 후 크리스마스 광장에 도착했다.

헬싱키 대성당과 헬싱키 대학이 둘러싸고 있고, 구시가지로 이어지는 광장인 Senate Square에는 11월부터 크리스마스 마켓에 대한 예고가 한창이었다. 크리스마스를 크게 기념하는 헬싱키에서 크리스마스 마켓은 어떻게 꾸밀지 궁금했는데 오늘에서야 그 모습을 보게 되었다.


역시 다른 도시의 크리스마스 마켓과 같이 진저쿠키를 파는 상점이 많았다. 직접 만든 초의 모양이 특이해서 한참을 쳐다보기도 했다. 8유로이었는데 이 차가운 날씨에 봉지를 여러 개 들고 다닐 생각을 하니 막막하여 지갑을 다시 넣었다.


헬싱키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은 쌀빵이 가득하다. 우리 호텔의 조식으로도 몇 번 맛을 본 적이 있었다. 특별한 맛이 없이 그냥 겉은 바삭하고 안은 쫀득한 빵인데, 먹는 순간 당수치가 확 올라가는 느낌이다. 추운 나라 사람들일수록 탄수화물 섭취를 많이 하는 것 같다.


상점에서 물건을 파는 사람의 표정이 참 밝고 행복해 보인다. 함께 나간 친구 한 명은 인생에서 크리스마스 마켓을 처음 와본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상대적으로 경험이 많은 나와 다른 친구보다 훨씬 더 즐거워 보였다. 거의 모든 상점의 사진을 찍고 이런저런 물건들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또 살지 말지 고민하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기념이 될 것 같다며 카드를 고르는 그 친구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나도 괜스레 설레는 감정이 들기도 했다.


유럽을 지겹게 다녀봤다고 생각했음에도 이렇게 자세히 들여다보면 또 내가 모르는 것이 생기고 또 새로운 것이 생긴다.


나 혼자 다녔더라면 다 아는 것이라 생각하여 그냥 지나쳤을 것들도 그 친구 덕분에 한번 더 들여다보게 되고, 그 친구를 기다리며 또 관찰하다 보니 내 마음속에도 새로운, 신선한 감정들이 싹트게 되었다.

아쉬운 점은 글루바인을 기념이 될만한 머그에 담아주는 것이 아니라 그냥 종이컵에 담아준다는 것이었다.

추운 날씨에 돌아다니다 시계를 보니 곧 레스토랑을 예약한 시간인 7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헬싱키 시티 가장 좋은 곳에 자리 잡은 앤티크 한 분위기의 호텔인 Hotel Kamp의 레스토랑 Kamp Brasserie에서 우리의 하루를 기념하기로 했다.






눈 쌓인 헬싱키 거리


헬싱키 강아지들은 눈을 참 좋아한다. 그리고 헬싱키 사람들은 또 강아지를 참 좋아한다. 레스토랑을 가는 길에 저번주에 방문했던 카페 Kappeli가 보인다. 그 앞에 제설 작업이 끝난 곳은 벌써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었다. 추운 날씨도 이 아이들에게는 전혀 방해가 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를 지켜보는 부모님들 또한 시간에 쫓기거나 또 다른 목적지에 갈길이 멀어 아이들을 재촉해야 할 이유가 없어 보였다. 충분히 여유가 있어 보이는 도시가 좋다. 온갖 전자기기 속에 둘러싸여 하루를 보내지 않으면 세상과 단절하는 것이 되어버리는 서울 생활과는 확실히 다르게 자유로워 보인다.



레스토랑 Kamp Brasserie


호텔과 레스토랑의 전체적인 디자인은 앤티크해 보였다. 이런 분위기를 참 좋아하는 우리 어머니를 언젠가 데리고 와서 며칠 지내다 가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헬싱키에 연어수프가 유명한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눈앞에서 따라주는 수프는 처음이었다. 큼직한 연어와 감자, 당근과 로즈메리가 들어간 연어수프는 언제 먹어도 참 맛있다. 핀란드 사람들에겐 겨울에 필수 음식이라고 한다. 파마산 치즈가 잔뜩 들어간 시져 샐러드와 오리 고기도 잘 어울린다.

좋은 사람들과 좋은 곳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니 레스토랑까지 오는 길에 얼어버린 내 발이 내 마음과 함께 금방 녹아버렸다.


이래서 '따뜻한 연말'이라는 말이 있구나 싶다.

연말은 늘 추운 법인데,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은 날씨와는 상관이 없는 일인 듯하다.

바깥세상은 늘 춥고 시리지만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할 음식과 술, 그리고 지붕이 있다면 그 모든 것을 헤쳐나갈 수 있는 용기와 힘이 생기는 것 같다. 그 시간이 너무 소중하여 추운 겨울이 지나가는 것조차도 아쉽게 느껴지니까. 그래서 그 힘으로 우리는 또 새로운 1년을 시작하고, 비록 어떤 일이 나에게 올지 모르지만 그 미지의 시간들을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주기 때문에 연말은 따뜻한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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