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ella L Jan 13. 2024

북유럽의 여름

백야를 만났다



출국 준비를 시작하세요. 

비행기 티켓을 보내드립니다. 

7월 31일이 당신의 출국 날짜입니다.  


반가운 이메일이 왔다. 

한국에 머무른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생각보다 빠른 일정으로 다시 출국 준비를 하게 되었다. 그래도 이번엔 저번처럼 아예 이사하는 것이 아니니 짐을 싸는 마음이 예전만큼 무겁진 않다. 


핀란드의 여름이라..

기온을 찾아보니 20도 언저리라고 하는데 평균 기온 30도인 사막에 살던 나로서는 20도라는 기온이 잘 실감 나지 않는다. 짐을 몇 번이고 쌌다가 풀었다가 했다. 코트와 경량 패딩을 몇 번이고 넣었다가 뺐다. 

미리 친해진 동료들과 상의한 결과, 모직 재킷 하나와 가죽 재킷 하나로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공항에서 앞으로 한 달이 넘는 기간 동안에 나와 함께 트레이닝을 받고 또 동고동락을 하게 될 동료들을 만났다. 나는 사람에게 마음을 아주 천천히 여는 편이다. 특히 다수의 사람들을 한 번에 만날 때에는 그 경계심이 더욱 커지는 것 같기도 하다. 한 사람과 진득하게 대화하며 알아가는 것이 좋은데 그러지 못할 상황에서는 차라리 알아가기를 포기하고 뒷선에 물러서 방청객 역할을 한다. 


헬싱키에는 14시간이 꼬박 걸려 도착했다. 핀에어를 타고 갔는데, 원래 인천-헬싱키 노선은 7-8시간이면 충분한 직항이라 한국에서 유럽까지 가장 빠르게 닿을 수 있다는 것이 큰 자랑거리였다고 한다. 그런데 러시아 전쟁이 터지면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영공을 쓰지 못하게 되자, 시간이 14시간으로 늘어났다. 

거의 두 배이다. 

전쟁의 한가운데에 있는 나라의 국민 중 한 명이지만, 세계 곳곳의 전쟁 뉴스를 보면서 딱히 내 일이라고 생각하거나 그 부분에 있어서 적극적으로 의견을 나누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렇게 우리의 여행 속에서도 전쟁으로 인한 불편함과 자원의 낭비가 깊숙이 침투해 있는 것을 보면 이게 내 일이 아니면 뭐가 내 일인가 싶기도 하다.  

가끔 북극항로를 이용할 때에도 있는데 그래도 거의 13시간이 걸려, 크루들의 건강을 생각하는 회사 입장으로 북극항로 이용은 지양한다고 한다. 






"승객 여러분, 헬싱키 국제공항에 도착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드디어 내린다. 

체질적으로 비행기에서 잘 자는 나도 이렇게 힘든 장거리 비행인데 비행기에서 잠들지 못하는 승객 또는 크루는 얼마나 그 시간이 지옥일까, 늘 생각한다. 



도착하여 짐을 부랴부랴 풀고 저녁을 먹은 후 밖을 보니, 오후 8시가 다 되어감에도 해가 아직 떠 있었다. 여름의 한가운데에 북유럽에 도착한 우리는, 백야를 만났다. 

컨테이너처럼 생긴 집이지만 다양한 색을 칠해놓아서 그런지 뷰가 나쁘지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점은, 큰 통창을 열어놓고 생활할 수 있고 그럼에도 우리 앞 집에 있는 이웃이 나의 동료이기에 편안한 생활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집은 2층집이었다. 

1층에는 공용 샤워실과 화장실, 그리고 키친과 거실이 함께 있었고, 2층에는 침대 방이 2개 있었다. 

다른 집들을 구경 가니 전통적인 핀란드의 집처럼 사우나도 있었다. 

우리 집은 사우나가 없다는 것이 조금 아쉬웠다. 



앞으로 나의 주식이 될 요구르트이다. 도착하자마자 핀란드의 이마트와 같은 'Alepa'라는 마트에 가서 그동안 먹고살 음식들을 잔뜩 사 왔다. 요구르트와 그래놀라 없이는 못 사는 내가 요구르트를 잔뜩 담았다. 혹시나 요구르트를 먹지 않는 홈메이트가 있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우리 식성은 잘 맞는 것 같다. 

앞으로 5주 동안 잘 살아봅시다!



밤 열 시가 되어서야 하루 일정을 끝내고 편안함에 이르렀다. 

오늘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이 남았다. 


숙.면.


내일은 주말이다. 

바로 트레이닝 일정이 잡히지 않은 것은 좋은 일인 것 같다. 아무래도 바이오리듬이 적응할 시간을 주는 것이 고된 트레이닝에 앞서 꼭 필요한 시간이다. 

주말이고, 날씨도 화창하니 홈메이트들과 함께 헬싱키 나들이를 갈 수 있으면 좋겠다.





숙면도, 날씨에 대한 소망도 모두 성공이다! 

홈메이트들과 버스를 타고 헬싱키 나들이에 나섰다. 이제부터가 내가 이 책에서 담고 싶었던 여름의 찬란한 헬싱키를 담으려고 한다. 



헬싱키를 생각하면 흐린 날씨가 종종 연상된다. 

덴마크나 스웨덴도 그렇듯 북유럽 국가들은 흐린 날씨 때문인지 시내 곳곳에 건물이라던지, 그래피티들이 쨍한 색감들을 이용한 것이 많다. 



공항 근처인 숙소에서 600번 또는 570번 버스를 타고 하카니에미 역에서 내려 강을 하나 건너오면 헬싱키 광장을 만나게 된다. 트램과의 사진 한 장도 빼먹을 수 없다. 



청소 도구함같이 생긴 곳 위에 새겨진 같은 테마, 다른 글귀의 그래피티들이 눈에 띈다. 


Marimekko Terrassi 매장


이 사진으로 7월-8월의 헬싱키 날씨가 충분히 예상 갈 것이라 생각된다. 

이 전에도 소개한 적 있는 헬싱키의 대표 브랜드인 마리메꼬, 이딸라, 무민 중 마리메꼬 매장이다. 핀란드에 도착하면 마리메꼬가 스페인의 자라(ZARA) 매장만큼이나 많은데 이곳은 '마리메꼬 테라시' 지점으로 '메종키츠네 카페'와 같은 개념이라고 보면 된다. 

역시 핑크색과 초록색의 조합이 헬싱키의 뜨거운 태양을 받아 더욱 반짝이고 눈에 띈다. 





헬싱키 비기너에겐 마리메꼬 쇼핑이 가장 만만하다. 보통 처음 여행 가는 나라에서 첫날에 쇼핑한 물건들은 나중에 보면 후회로 남는 경우가 많은데, 마리메꼬 물건들은 볼수록 질리지가 않고 또 실용성도 뛰어나 후회로 남지 않는다. 다만 정신없이 사다간 200유로를 훌쩍 넘기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그 부분은 조심해야 한다. 



현생을 사는 자들은 모두 육신에 갇혀 자유를 잃은 영혼들이란 말이 맞는 건가..?





정신없이 놀다가 집에 돌아오니 저녁 8시쯤 되었다. 그 새 해가 더욱 길어진 느낌이다.

해가 내내 떠있으니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저녁 후 디저트는 무민 쿠키와 시칠리아산 화이트 와인이다. 

첫 주말에 걸맞게 아담하고 귀엽고, 적당히 기념할만한 식탁이다. 


7월 말, 밤 11시의 헬싱키


그리고 이 날, 헬싱키의 태양은 밤 11시가 다 되어서야 조금씩 그 자취를 감추기 시작하였다. 


이전 04화 2023년을 보내줘야 2024년이 와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