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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lla L Dec 08. 2023

겨울부터 시작할게요

겨울나라에 겨울이 찾아왔다.


헬싱키에 겨울이 찾아왔다.

작년 여름, 7월에 처음 헬싱키에서 생활을 시작했다.

꿈꾸던 북유럽 회사에 꿈처럼 입사하게 된 나는, 뜨거운 태양과 백야를 자랑하는 여름의 헬싱키에서 5주간의 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 일을 시작하여 때때로 헬싱키에서 머물며 헬싱키의 변해가는 풍경을 보곤 한다.

내가 처음 생활을 시작하던 헬싱키는 백야였는데, 이젠 극야의 헬싱키이다.


헬싱키 광장, 오후 3시 30분.


단지 오후 세시 반 즈음이 되었을 뿐인데, 태양이 비추던 거리를 이제 거리의 불빛들이 밝히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깨끗하고 많은 눈이 쌓여있는 거리를 본 게 언제쯤이었을까?

나는 헬싱키가 베이스인 회사에 오기 전에 사막에 있는 회사를 다녔다.

겨울의 평균 기온이 섭씨 20도씨로 유지되는 나라에 살면서 때때로 유럽으로 비즈니스 트립을 다니기도 했지만, 서유럽과 유럽 중부는 겨울에 보통 눈보다는 비가 많이 온다.

그런데 이렇게 11월 말부터 눈이 쌓여있는 곳이 있었다니, 산타가 산다는 말이 나올 만도 하다.


나는 같이 시티에 나간 친한 언니 1에게 연신, "아니, 눈이 이렇게 많이 오는 곳이 있었어?" 하고 감탄했다. 그리고 눈을 처음 보기라도 한 것처럼 하얀 발자국을 남기기 바빴다.


겨울에 겨울 느낌을 내고 싶다면 헬싱키가 제격이다.





테라스에 쌓인 눈, 오후 5시.

테라스에 쌓인 눈이라니, 너무 귀엽잖아..!

내가 겨울에 한국에 있어본 지가 너무 오래돼어 한국도 겨울에 이렇게나 많이 눈이 쌓이는 곳이 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신기했던 것은, 보통 눈이 땅에 닿으면 금방 녹고 사람들 발자국 또는 도로 위의 이런저런 바퀴들에게 뭉개져 곧 더러워지기 마련인데, 이곳 헬싱키는 시티임에도 깨끗한 눈이 도로 위에 깨끗한 채로 유지되었다.

딱히 제설 작업을 끊임없이 하는 분들이 계신 것도 아닌데 말이다.

마리메꼬와 이딸라 샵을 돌아다니며 야무지게 쇼핑을 마친 우리는 샵 건너편의 한 카페에 들어가기로 했다.


우리의 선택은 헬싱키 중심가에 핀란드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공원이라 불리는 Esplanadi 공원 바로 앞에 자리 잡은 Kappeli이다. 한눈에 보아도, 계속 보아도, 크리스마스와 연말 분위기를 잡기에 이곳보다 좋은 곳은 없을 것 같다. Esplanadi 공원은 여름에 핀란드 사람들이 자리를 가득 메우고 일광욕을 즐기는 모습으로 인상 깊었다. 이젠 그 자리를 거대한 트리와 그 트리를 감싸는 순록 모양의 불빛 장식들이 대신하고 있었다.

Cava 두 잔과 바닐라 크림이 올라간 블루베리 크럼블을 시키고 창 밖을 바라보니 눈발이 거세지고 있었다. 캐럴을 들으며 앉아있는 이 시간이 참 평화롭고 행복하다. 꽤나 북적거리는 카페이었지만 사람들이 큰 소리를 내지 않고 조용조용 말하는 것을 보며 각자의 공간과 시간을 존중해 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존중, 개인 공간 확보, 사생활 보호'


이 세 가지를 빼면 핀란드 사람들을 논할 수 없다.

핀란드 사람들은 때때로 너무 차갑다거나 다정하지 않다고 느껴질 때도 있는데, 각자의 공간을 그만큼 소중히 여겨 허락 없이 물리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상대의 공간을 침해하는 것을 아주 조심하기 때문에 그렇게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다. 같이 일을 해보면 마음이 참 따뜻하고 일도 열심히 하는 친구들이라는 것을 매번 느끼게 된다.


 Kappeli

카페 내의 인테리어도 인상적이었는데, 리스에 별 다른 장식을 하지 않고 전구로만 감싸도 예뻤다. 창 밖의 하얀 배경과 잘 어울려서 더욱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참 안 어울리지만 헬싱키에 오면 난, 핑클의 white가 생각난다.

헬싱키는 아무래도 배경이 다하는 도시기 때문에 특별한 트리 장식이나 전구가 필요하지 않은 듯하다.


바닐라 크림이 올라간 블루베리 크럼블은 기대 이상이었다. 사실 핀란드에 오기 전 음식은 별로 기대하지 않았었는데, 헬싱키에 은근히 맛있는 레스토랑과 디저트가 많다.


우리가 그날의, 그리고 연말의 분위기를 온전히 즐기는 동안 파란 슈트를 멋지게 차려입은 아저씨께서 피아노를 설치하시더니 캐럴을 불러주기 시작한다. 그러자 얇은 금발 머리를 질끈 묶은 카페 직원 한 명이 적절한 자리를 물색하더니 흐뭇한 표정으로 그가 노래하는 모습을 찍어준다. 그리고 그 노랫소리는 손님들의 대화 소리와 조화를 이루며 더욱 따뜻한 헬싱키의 한 장면을 연출해 냈다.


모두가 환영받을 수 있는 시간.

나는 그런 마음을 느낄 때에 연말의 따스함이 느껴진다.


이제 저녁을 예약한 오늘의 메인 레스토랑과 약속한 시간이 다가와 자리를 떠야 할 시간이 왔다.

Kappeli는 앞으로 겨울 동안 거의 매번 헬싱키를 올 때마다 종종 찾아올 예정이다.


Restaurant Locanda Scappi

치즈에 직접 볶아주는 파스타, 트러플까지 올린다면 참을 수 없다. 이 영상 하나 보고 이 레스토랑에 왔는데 우리 앞에서 직접 해주는 그 광경이 황홀했다.



헬싱키의 레스토랑을 가면 그릇과 접시도 북유럽 감성으로 가득하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모두 다 같은 접시로 통일하지 않고 색이나 모양을 조합하여 음식마다 담겨있는 각양각색의 접시를 구경하는 것 또한 헬싱키 맛집을 돌아다니며 느끼는 즐거움 중 하나이다.


우리는 치즈가 잔뜩 들어간 파스타에 잘 어울릴 피누아 그리지오 두 잔과 화이트 라구를 추가로 시켜 먹었다.

오늘도 실패 없는 레스토랑 투어였다.

다음 주에 다시 오게 될 헬싱키에선 또 풍경이 어떻게 달라져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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