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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신영 Apr 10. 2021

소설 같은 이야기 7

막내는 그리스로 떠났다.

 다시 소진이를 돌보며 서울생활이 시작되었다.

소진이는 오래 떨어져 있었는데도 잊지 않고 이모 이모 하며 좋아하며 잘 따라 주었고 예전처럼 밥도 잘 먹었다. 다섯 살이 된 소진이는 조금 컸다고 문화센터에 발레 수업도 받게 되어 어린이집에서 픽업해서 문화센터에도 데려가고 엄마들하고 얘기도 나누며 기다리는 시간은 특별했다. 젊은 엄마들하고 대화를 나누며 소위 신세대들의 생각들을 엿보게 되는 것이다. 조금 친하게 지내는 아이 둘 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오빠를 둔 아이들이어서 엄마들은 그다지 어리지 않아서 다행이기도 했다. 외동인 소진이는 늘 친구에 목말라 있었는데 소진이 집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가서 놀게 해주기도 했는데 다행히 소진이 엄마는 좋아했다.

"치다꺼리하려면 이모님께서 힘드실 텐데 저야 정말 좋죠."

소진이가 외롭게 자라는 것이 안돼 보였다.

하루는 소진이 할머니께서 오셔서 오랜만에 사를 나누었는데 다시 온 것을 무척 좋아해 주셨고 소진이한테 다행이라고 해주셔서 고마웠다.

"이모만 찾고 할머니는 별로 안 좋아해요. 밥도 안 먹었어요. 역시 이모가 있어야 해요." 듣기 좋으라고 한 얘기는 아닌 것 같다. 어린아이 입맛에 맞추는 것은 아무래도 할머니보다는 세 딸을 키운 내가 더 나았던 모양이다. 밤이 되면 소진이 재워주는 일까지 매일 하기 때문에 그들 부부도 이제 마음 놓고 늦게 들어와도 불안하지 않아 좋다고 했다.

소진이 아빠는 컴퓨터도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어서 싸이월드에 방을 만들어 아이들하고 소통을 하기 시작했다. 싸이월드에서 아이들하고 얘기를 나눌 수 있으니 살 것만 같았다.

소진이는 호야도 함께 있게 되니 참 좋아했다. 코코를 기억해내고는 코코는 어니 있냐고 물어본다. 좋은 집으로 이사 보내서 다시 볼 수 없다고 얘기해줬다. 호야는 작아서 겁을 내지 않았지만 코코는 중형견이라서 소진이가 아기 때에 좋아서 안아 주고 싶어도 가까이하지 못했다. 아기한테는 컸고 검은색 털이 윤기가 반지르르한던 코코가 겁도 났던 것이다. 그래도 코코를 기억하며 코코 이모를 찾아 줘서 고맙기만 하다.

 다시 편안한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아이들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아 마음은 언제나 돌덩이 한 개 매달고 사는 것처럼 무거웠다.



  부산 친구 재홍이 엄마는 이미 애들 아빠가 동물병원과 네일숍의 인테리어를 의뢰했을 때 눈치를 챘고, 친구 남편은 설비 쪽이라면서 공사를 사양했고, 다른 쪽으로 소개해준 인테리어 사장에게서 소식을 들었다고 한다. 공사를 하는 동안 외국 여자랑 함께 와서 보고 가는데 부부 사이 같더라는 이야기를 듣고 애들 아빠가 딴 맘이 있어서 우리를 서울로 보내고 그런 일을 꾸몄다고 안타까워했다. 또 애들 소식을 듣고는 둘째를 다른 인테리어 사무실에 취직을 시켜주기도 했다.

그런데 그 사무실이라는 데가 일도 없고 맨날 파리만 날린다는 얘기를 한다. 함께 살던 제 언니는 유기묘를 몇 마리 데리고 들어 와 둘이 다퉈서 집을 나갔다. 방은 월세를 못 내서 방도 비워줘야 하는데 어떡하냐고 둘째가 고민된다고 말을 한다. 외갓집으로 올라와서 일자리 구해서 지내는 게 좋겠다며 얼른 올라오라고 했다. 귀한 딸이 마치 광야에서 길을 헤매고 천덕꾸러기 같은 삶을 살고 있다니 속이 썩어 문드러지는 아픔 속에서도  정신은 똑바로 차려 살아야겠다며 다시 다짐을 한다. 다행히 막내는 힘들어도 적절하게 그들과 섞여 지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데 큰 애는 싸우고 나가서 소식이 없다고 한다. 큰 애가 너무 고이 자라 방황하고 있는 것은 이해가 갔으나 한편으론 서운 했다. 혼자서 겪는 일도 아니고 어린 막내도 꿋꿋하게  지내고 있는데 저 혼자서 사건 사고는 다 일으키고 큰애가 정말 철딱서니 없어 서운하다. 서울 있을 중고 소형차 한 대 사 준 것도 부산으로 끌고 가더니 음주운전을 해서 면허 정지가 되고, 차도 대출받아 쓰고는 갚지 못해서 날렸다고 한다.  첫 아이라고 부족함 없이 키워서 그런지 힘든 상황을 헤쳐 나가지 못하고 속을 썩인다.

둘째는 바로 서울로 올라와서 지내게 되었다.

딸이 올라왔다는 소식을 들은 소진 엄마는 자기 사무실에 와서 아르바이트하라고 한다. 일손이 부족하다면서 둘째가 와서 일을 해주면 좋겠다고 한다. 둘째가 복이 있는 모양이다. 얼마나 다행인지 한시름 놓게 되었다.

우린 주말마다 친정에서 만나 함께 시간을 보내고 호야도 오랜만에 딸을 만나니 펄쩍펄쩍 뛰고 애교를 부리며 얼마나 좋아하는지 둘의 상봉을 보고 있자니 콧등이 시큰해지며 눈물겨웠다. 말 못 하는 짐승이지만 어찌 보고 싶지 않았겠나. 제 누나가 원 주인이 아니던가. 나야 워낙 예뻐라 하니 아기 때부터 나를 좋아하긴 했지만 속으로 그동안 제 누나가 얼마나 보고팠을까?

 친정 엄마께 죄송한 마음이 들었지만 부모님은 아무 말씀 안 하셨다. 자식이 잘 되던 못 되던 지켜봐 주고 기다려 주는 것이 당연한 듯이 말없이 받아들여 주셨다.




차츰 서울 생활이 안정이 되어가고 있으니 슬그머니 글이 쓰고 싶어 져서 문화센터를 기웃거리게 되었는데, 마침 유명 소설가의 강좌가 모 백화점에서 개설이 되었다. 그래서 한 학기 강좌를 듣게 되어  주일에 한 번씩 소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바로 문화센터로 향하는 발걸음은 나비처럼 가볍고 신이 났다.

소설을 쓸 수 있는 역량은 없지만 글은 어떻게 써야 하는 것인지 체계적으로 알고 싶어서 듣는 강좌였다. 매일 소설을 읽으며 스토리 구상을 나름대로 해보며 지냈고 단편을 써서 발표하는 시간도 있었지만 내 차례는 오지 않았다. 히말라야를 오른다고 티베트로 떠나는 선생님을 마지막으로 뵙고 소설 강좌는 끝냈다.


그즈음 막내가 갑자기 그리스로 떠난다고 했다. 3개월 일정으로 일하러 가는데 엄마하고 며칠 지내다 갈 수 있는 시간이 된다고 해서 무척 기뻤다. 오매불망 그리워하던 막내를 만나게 되니 꿈인가 생시인가 했다. 유학 보낸다고 내게서 데려가더니 고등학교 졸업도 안 시키고 남편이 그 여자랑 딸 학교에 가서 자퇴원을 제출해서 막내는 검정고시를 봐야만 했다. 자퇴 소식을 듣고 절망스럽고 무슨 아비가 미쳐도 단단히 미쳤지. 요즘 같은 세상에 대학도 아닌 고등학교를 졸업도 안 시키는 부모가 어디 있는지 상상이 안 갔다.

막내에게 나중에 대학에 갈 수 있도록 검정고시를 합격해 놓으라고 당부했더니 엄마 말을 잘 따라 주어 다행이다. 그리스에 공부하러 가는 것 같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 여자 친구가 아테네에서 네일 샵을 하는데 네일아트 잘하는 사람이 필요한데 사람을 구해 달라며 항공권을 보냈다. '남이 갈 필요 있냐 너도 돈을 벌어야지' 하면서 애 아빠란 사람이 을 돈 벌어 오라고 이역만리 보내는 거였다.


  막내가 서울 오기 전에 소진이네는 친정식구들과 해외여행을 떠나 열흘 정도 집을 비운다고 말을 하면서

" 둘째 따님 오라고 해서 함께 지내세요. 혼자 계시려면 외로우실 텐데." 하는 것이 아닌가.

" 소진 엄마, 막내가 외국에 나가기 전에 저와 지내고 싶다는데 같이 지내도 될까요?" 양해를 구했다.

" 네 그러세요. 우리는 적어도 열흘은 있다 돌아오니까 나가기 전에 맛있는 거 많이 해주세요." 한다.

 참 고마운 사람이다. 남편이 우즈베크 여자와 결혼해서 산다고 했더니 나더러

 " 이모님 우즈베크 남자를 소개해 드릴까요? 우즈베크 남자 괜찮은 사람 있는데 필요하시면 말씀하세요." 그녀의 말에 빵 터졌던 일이 있었다. 참 유쾌한 사람이다.

소진네가 여행을 떠나고 바로 막내가 올라왔다. 둘째도 며칠 같이 지낼 요량으로 짐가방을 들고 왔다.

우리 셋이 감개무량한 순간을 어찌 글로 다 표현을 할 수 있으리오.


"며칠 동안 시간은 화살이었다.
막내가 그리스로 가기 전에 내 곁으로 와서 보낸 시간들, 꿈같이 흘렀다.
이쁜 모습, 다정 다감한 목소리. 종일 곁에서 차근차근 정이 묻어나는 소리로 지난 얘길 들려준다.
먹고 싶었던 음식들을 해주면
"어떤 식당에서도 이 맛을 느낄 수가 없었어. 도무지 이 맛이 안 나더라고요"
엄마에게 언제나 최대의 찬사를 아끼지 않는 아이는 재잘재잘 일에 대한, 남자 친구에 대한 얘기며를 쉬지 않고 해댄다. 그 아인 목소리가 유별나다. 이쁘다. 그래서 별명도 인어공주.

데리고 다니며 쇼핑을 하면 사람들은 성우냐고 묻는다. 그리고 지나던 사람들도 다시 한번 쳐다본다.
아기 같고, 재밌게 얘기도 잘하고... 어린이 만화영화에서 방금 튀어나온듯한 사랑스러운 목소리...
귀걸이를 사려고 할 때 마침 점원이 남자였는데 자꾸만 말을 시켰다. 너무너무 듣기 좋다나?
"남자 친구랑 싸워도 화도 못 낼 거예요. 그 친구는 그렇죠?"
난 옆에서
"그럼, 그럼, 이 목소릴 듣고 어떻게 화를 낼 수 있겠나?"

그런 그 애가 어제 떠났다.
공항에서 헤어지고 돌아와 난 이틀 만에 아파서 몸져눕다시피 했다.
며칠 동안 많이 써야 하는 글은 쓰지도 못했다.


팔을 쓰면 통증 때문에 힘은 들지만 막내가 보고 싶어, 귓가에 담아 두었던 목소리가 사라질 까 봐 어서 글로 풀어내어 담아 두고 싶다. 고 2 겨울 방학에 헤어져 이제야 만났는데 훌쩍 내 곁을 떠난 딸. 언제 또 만나려나.
그 애가 떠난 날 제목과 몇 줄의 글을 써놓고 허전하고 막막하기만 해서 긴 글을 쓰지 못하고 보고만 있었다. 그리고 병이 났고 오늘에서야 이렇게 쓰고 있다. 그동안 딸내미는 그리스에서 전화를 하고 애교 섞인 목소리로 날 위로하고, 잘 지낸다고 했다. 3개월도 어서 화살처럼 지나 막내랑 멋진 만남을 하면 좋겠다. "




그렇게 떠난 막내는 3개월이 지나도 돌아오지 못했다. 막내가 돌아오려니 여름 시즌이 끝나면 보내주겠다고  딸을 붙잡았다고 한다. 그렇게 막내는 불법체류자가 되어 돌아오지 못한 것이다. 그 애는 네일숍의 주인이 공항에 나가면 너는 불법체류자라 공항경찰에게 잡힌다며 겁을 주었고, 네일아트 실력이 좋은 아이를 계속 잡아 놓고 일을 시켰던 것이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차일피일 미루는 사이에 세월은 흘러갔다. 또래들은 대학에 들어가서 공부를 할 나이에 내 나라도 아닌 타국에 가서 얼마나 무서웠을까? 나중에 만난 딸이

 여기서 나갈 수 없어서 난 죽어도 엄마를 만날 수가 없겠구나. 생각하며 절망을 했다고 한다.


 원래 가끔 아프던 어깨의 통증이 심해서 숨을 쉴 수조차 없다. 그동안 아파도 오십견인가 보다 생각하고 운동부족을 탓하며 팔 돌리기도 하고 산으로 산책을 나니기도 했는데 다시 찾아온 통증은 예사롭지가 않았다.

첫날은 집 근처 한의원에서 치료를 받고 돌아왔는데 통증이 한순간도 가라앉지 않아 소파에 앉아서  밤을 새웠다. 누우면 더 아프니까. 둘째한테 정형외과에 안 가고 한의원에 다녀왔다고 된통 야단을 맞고 정형외과엘 갔다.

 X -Ray 결과 어깨 관절에 칼슘이 새어 나와 굳는 바람에 신경을 눌러서 통증이 심한 거라는 설명. 예전에 어깨를 다친 적이 있냐고 물으신다. 전에 손가락 찍었던 사진에 어깨 부위가 조금 나왔는데, 그 사진 하고 비교해 보니 어깨에 작은 점이 지금은 강낭콩 크기로 변해 있다고 하신다. 몇 년 전에 팔을 다친 적이 있어요 했다.

 

어제 병원에서 간단한 처치를 하고 (사실은 간단치 않다. 초긴장 속에 식은땀을 흘리며 통증을 견뎌내야 했으니까) 방사선과에서 초음파 검사로 어깨의 관절에 침착되어 있는 칼슘이 어디에 자리하고 있는지를 정확하게 알기 위해 움직여지지 않는 팔을 뒤로, 옆으로, 위로, 다시 누워 검사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끊어져 나갈 듯한 통증에... 진 땀을 흘리며 어서 이 순간이 지나가기를 바랄 뿐이었다.
다시 진료실로 엉거주춤 들어 선 나. 과장님께서 사인펜으로 표시된 곳에 구멍을 냈지만 잘 되지 않아 다시 원장님까지 오셔서
 "엄청 아픈 부윈데..."
하시며 내 통증의 원인인 젤리를 뽑아냈다. 완전한 수술은 아니지만 응급조치를 한 것인데 흰 액체가 몇 mml쯤 주사기 안에 고여 있다. 의사 선생님이 보라고 하셨다.

 "이게 굳어져 신경을 누르니 장정들도 아프다고 울어요." 하시며 진통제인 데메 돌을 주사하겠다고 하신다.

 그 물질을 보는 것보다 난 내 아픔을 알아주는 원장님의 그 말 한마디가 너무나도 고마워 눈물이 다 맺혔다.

그래도 주사기로 몇 mml 빼냈다고 덜 아프지만 한동안 치료받아야 했고 의사 선생님 권유로 파쇄기로 파쇄시켜 흡수되도록 한 뒤에  물리치료를 꾸준히 받고 완쾌되었다.

 (다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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