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삶을 닮았다
시의 함축적 의미는 삶과 닮았다.
“책은 마음의 양식”이라는 흔한 말이 있다. 책 중에서도 시는 감정을 자극하고,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게 하며, 언어의 아름다움을 일깨운다. 그래서 많은 작가들이 시를 가까이하고, 읽기를 권한다. 그런데 나는 시가 어렵다. 여러 이유로 시와 거리를 두고 살아왔다.
나는 글을 흩어 읽는 습관이 있다. 공부할 때도, 일을 할 때도, 그리고 볼거리가 넘쳐나는 요즘엔 더욱 그렇다. 한 문장을 끝까지 곱씹기보다, 정보를 빠르게 읽고 넘기는 방식에 익숙해졌다. 그러다 보니 시처럼 함축적인 언어는 흐름을 끊고, 생각을 멈추게 만든다. 멈춘 그 자리에서 더는 읽지 않고 그냥 넘겨버리곤 했다. 그건 여유를 잃은 시대의 산물 같기도 하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는지도 모른다.
학창 시절 주입식 교육도 한몫했다. 시를 읽을 때마다 작가의 의도를 묻는 시험 문제가 따라왔고, 나는 그걸 자주 틀렸다. 내가 느낀 건 늘 ‘정답’과 달랐고, 결국 시를 보는 나만의 감각은 틀린 것처럼 느껴졌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나는 함축보다는 설명이 편해졌고, 시는 점점 멀어져 갔다.
그러다 김영하 작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자신의 글이 교과서에 실리는 걸 거부했다고 한다. 한 가지 정답으로 읽히고 싶지 않아서였다. 독자의 해석이 제한되는 순간, 글의 생명도 함께 사라진다는 말로 나는 해석했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작가의 의도도 중요하지만, 독자의 시각도 그 못지않게 중요하다.
조심스럽게 다시 시를 읽어 보려 한다. 시야말로 다 말하지 못하는 나의 일상을 닮았기 때문이다.
살면서 설명할 수 없는 상황을 자주 겪는다. 말로 다 표현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감정, 몸짓만으로도 느껴지는 분위기, 눈빛 속에 담긴 수많은 뜻들. 정보는 넘쳐나지만, 오히려 간결한 한마디가 더 많은 걸 담아내는 시대다.
‘괜찮다’는 말은 정말 괜찮을 때도 있지만, 때로는 “더 이상 묻지 마”라는 뜻일 때도 있다.
‘잘한다’는 말은 칭찬일 수도 있지만, 억양에 따라 잘 못하고 있을 때의 표현이기도 하다
같은 말을 다르게 이해하고, 다른 말을 같은 의미로 받아들이는 일이 삶에는 많다. 그래서 삶은 어쩌면 하나의 시 같기도 하다.
엊그제 아내와 다툼이 있었다. 나는 그것이 배려라고 생각했지만, 아내는 그걸 당연하게 여겼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란 두 사람이 평생을 함께 살아가는 일은 늘 쉽지 않다. 나름의 기준을 세워 지켜온 행동들이, 아내에게는 전혀 다른 의미로 전달된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서로 다른 언어를 쓰고 있었던 것이다. 시 한 편을 읽고, 시험지에 오답을 적은 기분이었다.
‘배려’는 돕고 보살피려는 마음이지만, 어느 정도까지가 배려이고 어디부터가 간섭인지, 어디까지는 이해고 어디부터는 무관심인지 기준을 정하기 어렵다. 나와 아내는 그런 기준을 말없이 나누고 있다고 믿었지만, 결국 서로의 함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던 셈이다. 시가 어려운 이유가, 삶도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근 브런치에 구독 중인 작가들에게서 시를 자주 접한다. 덕분에 시가 조금은 덜 낯설다. 시의 아름다움은 모든 것을 이해해야만 느껴지는 건 아닌 것 같다. 단어 하나하나의 뜻을 모른다 해도, 문맥이 주는 분위기나 흐름, 감정만으로도 충분히 가까워질 수 있다. 자주 보고, 자주 곱씹다 보면, 언젠가는 그 속뜻에 더 가까이 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
시는 그 자체로 인간의 삶을 닮아 있다. 복잡하고, 예측할 수 없고, 다 설명할 수 없는 여백 속에 의미를 숨긴다.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감정,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게 되는 마음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도 그와 닮아 있다.
또한 시는 역설과 반전을 통해 삶의 또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겉으로 들리는 말 너머에 담긴 진짜 마음, 상황 속에 숨어 있는 반전. 시는 단순한 문장이 아니라,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다. 우리는 시를 통해 세상을 더 깊이 이해하고, 그 속에서 자신의 삶을 투영하며 새로운 통찰을 얻는다. 시는 그래서 삶을 비추는 거울이자, 마음을 채우는 또 하나의 양식이다. 이제 시의 아름다움을 알아가는 것이 삶의 풍성함을 위한 또 하나의 방법이라 믿는다.
물리학자 김상욱 교수는 "이해란 느낌"이라고 말했다. 모든 정보를 알고, 사용할 수 있을 때 ‘이해한 것 같다’는 느낌이 찾아온다는 말이다. 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도저히 알 수 없을 것 같아도, 자주 접하고 마음을 열면 언젠가 그 느낌에 도달하게 되지 않을까.
내친김에, 아이가 어릴 적 썼던 시 한 편을 곱씹어본다.
아빠 마음도 모르면서, 흰 구름 이라니..
아내의 마음도. 아이의 마음도 시만큼이나 쉽지는 않구나.
#고군분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