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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철현 Apr 09. 2021

그게 왜 도와주는 건데?(Feat. 살림남)

지금 이 시점


누군가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잠깐, 생각해보니 요즘도 심심찮게 듣는 질문인 것 같다.

"너는 집에서 와이프 잘 도와주지?"

그 말인즉슨, 평소에 자상한 편인 너는 일이 끝나고 녹초가 되어 집에 돌아와도 곧바로 침대에 쓰러지지 않고, 가끔은 밥도 직접 하고 종종 설거지도 하며 무선 청소기를 돌리거나 물걸레 청소기도 밀겠지?라는 포괄적인 의미가 담겨 있었다.

질문을 받고 그 즉시 나는 반박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 질문 자체가 잘못됐잖아. 나는 그게 어째서 도와주는 거냐며 상대의 잘못된 질문을 바로잡았다.

"같이 하는 거지, 누가 누굴 돕는 게 아니라."

우리는 맞벌이다. 하물며 누가 조금 더 벌고 더 일한다고 해도 집안일의 주체가 결정되는 건 아니다. 내가 아내보다 출근이 조금 이르고 퇴근 때는 아내를 데리러 가는 날도 있지만, 그렇다고 내가 빨래를 돌리거나 화장실 청소를 하는 것을 두고 아내를 위해 집안일을 도와준다고 말하는 건 참으로 어불성설이다.

우리 부모님 세대만 해도 대부분의 아버지들이 집안일을 나 몰라라 해왔던 게 사실이다. 그도 그럴 것이, 아버지들은 바깥에 나가 사회생활을 했다. 반대로 어머니들은 주로 전업주부가 많았다. 예전에 학교에 다닐 때도 가정통신문을 나눠주면 부모님 직업란에 친구들 대부분이 엄마는 '주부'라고 적어 냈었다. 하지만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어나면서 이제 더 이상 아빠는 회사원, 엄마는 주부라는 인식은 유효하지 않다. 그런데 왜 아직도 집안일은 마치 아내의 전유물처럼 여기는 사람들이 있을까? 똑같이 나가서 돈을 버는데도 말이다.

결혼을 하고 나서 집안일을 잘 도와주냐는 질문 외에도 내가 자주 듣는 어리석은 질문들이 몇 가지 있다.

"결혼하니까 어때?"  "아이는 언제 가지려고?"
"주도권은 누가 잡고 있냐?"

어쩜 이렇게 하나 같이 다 듣기 불편한 말들 뿐인지. 사람들은 꼭 일부러 상대방이 듣기 싫은 말만 골라서 하는 것 같다. 고등학교에 다닐 때 공부는 잘하냐부터 성인이 되어 취업은 언제 할 거냐, 연봉은 얼마냐 등의 질문 세례가 쏟아지는데, 결혼을 하고 나서부턴 새로운 시선에 맞춰 질문의 스타일만 바뀌었을 뿐이다. 사람 마음 불편하게 만드는 건 별반 차이가 없다.

그렇게 다양한 질문들이 쏟아지지만 사실상 영양가는 제로다. 우연치고는 질문이 죄다 바보 같고 멍청하다. 적어도 내 관점에서는 그렇다. 위에서 언급한 질문들을 천천히 살펴보겠다. 먼저 결혼하니까 어떠냐는 질문에는 당연히 너무 좋다고 대답한다. 거창한 설명이 필요 없이, 늘 함께 붙어 있어서 즐겁고 행복하다고. 다음으로 아이는 언제 가지냐는 질문에는 사람 일은 모르는 거라 내가 갖기 싫다고 해도 생길 수 있고, 계획을 세운다고 해도 안 생길 수 있으므로 하늘의 뜻에 맡기겠다고 가볍게 넘긴다.(어차피 그들도 한번 떠본 것일 뿐, 내 2세 계획에 그다지 관심이 없을 테니) 이다음 질문이 정말 가관이다. 부부 사이에 주도권은 누가 잡고 있느냐고. 나는 아내와 함께하는 삶이 기쁘고 행복해서 한 지붕 아래서 사는 거지, 서로 알력 다툼을 위해 한 이불을 덮고 자는 게 아니다. 물론 상황에 따라서 서로를 대하는 태도나 입장이 달라질 때도 있지만 그게 주도권 싸움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럼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나와 아내의 가사 분장에 대해서 얘기해보겠다. 사실 그다지 꼼꼼한 편이 아닌 우리 부부는 딱딱 계획을 정해놓고 집안일을 하진 않는다. 변명하자면 즉흥적이랄까. 뭐 그렇다고 먼지가 눈에 보여야 청소하고 싱크대에 그릇이 쌓여야 설거지를 한다는 소리는 아니다. 그래도 나름의 룰이 존재하는데, 내가 요리를 하면 아내가 설거지를 하고 아내가 무선 청소기를 돌리면 물걸레 청소기는 내가 맡는 식이다. 우리는 이렇게 서로 공평하게 살림을 나눈다. 그래야 뒷말이 나오지 않고 꽁냥꽁냥 사이좋게 지낼 수가 있다.




아내도 그렇겠지만, 나 역시도 밖에서나 안에서나 우리 집의 모든 일에서 들러리가 되고 싶지는 않다. 또한 나중에 나이가 더 먹어서 한쪽으로 치우쳐져 바깥사람이나 바깥양반으로 불리기도 싫다. 아내도 마찬가지로 안사람, 안주인, 집사람 같은 호칭으로 불리기가 끔찍이도 싫을 것이다. 밖에 나가서 사회생활을 열심히 하고 집에서는 살림을 도맡아 하는 투잡 시대에 사는 우리는 진정한 현대인이다. 오늘부터라도 그에 걸맞은 호칭이 뭐가 있을지 고민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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