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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철현 Aug 08. 2022

한밤중 마주 앉아 복숭아를 깎아먹는 것

지금 이 시점



"오빠, 우리 복숭아 하나 깎아 먹을래?"


불쑥, 나란히 침대에 누워있던 아내가 말했다.

베개에 머리를 대고 핸드폰을 들여다보던 나는 썩 내키지 않은 목소리로 미적지근하게 되물었다. 사실 좀 귀찮았던 것이다.


"지금? 잘 밤인데?"



그러나 결국 장고 안에서 복숭아 하나를 꺼내어 작은 쟁반과 과도를 들고 안방으로 돌아온다. 화장대 앞에 걸터앉아 복숭아 껍질을 깎고 복숭아를 여러 조각으로 잘라 내가 두세 개 먹고 아내는 한두 개를 먹으 충분했다. 잘 밤이니까.

"처음엔 사실 귀찮았는데, 막상 먹으니 맛있네."
내가 그렇게 말하자, 아내는 그럴 줄 알았다 웃었다. 역시 더운 여름밤에는 시원한 과일만 한 게 없다면서.

한순간 내 마음이 바뀐 이유는 뭐였을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아내가 먹고 싶다는데 그깟 시간이 뭐가 대수인가 싶어서였다. 그대로 계속 누워있었다면 서로 핸드폰 좀 보다가 잠이 들었겠지만, 우리는 함께 복숭아를 나눠 먹으면서 그날 저녁에 놓쳤던 이야기도 나누게 되었다. 또한 핸드폰 대신에 서로의 눈빛을 바라보고 상대에게 더 관심을 기울일 수 있었다.


아삭하고 맛있는 복숭아는 그저 덤일 뿐이다. 이런 게 행복이지. 한밤중 마주 앉아 복숭아를 깎아먹는 것. 그렇게 또 새롭게 행복 리스트에 추가되었다. 행복은 별 게 아니란 걸 또 한번 깨닫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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