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먼지가 심하지 않은 날이면 공기 청정기를 잠시 꺼두고 집 안 모든 창문들을 활짝 열어 환기를 시킨다. 이내 맞바람이 치면서 움츠려있던 내부 공기들이 순환하고 탁한 공기가 맑아지는데, 내 마음에도 산뜻한 기분이 스며든다.
허구한 날 공기 청정기를 돌려도 창문을 꼭 닫고 있으면자연 바람이 주는 상쾌함을 느끼기 어렵다. 그만큼 환기가 중요하다.
아내는 코로나19 이후한동안 재택근무를 해왔다. 재택근무덕분에 아내는 지하철에서의 숨 막히는 출퇴근 전쟁을 피할 수 있게 되었고,회사에 출근 도장을 찍지 않아도 되면서 일상이 한결여유로워졌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양면성이 있게 마련이다. 하루 종일 집에만 있다 보니, 활동 반경이 단조로워져일상에서의 활력을 잃을 때가 많아졌다. 북적대는 출퇴근 전쟁 대신 찾아오는 사막과 같은 고요함에 무기력해진것이다. 일이 바쁘고 말고는 상관이 없었다.활동이 제한적이고 사람들과의 만남도줄어들어 생긴 부작용이었다.
이런 게 코로나 블루인 걸까?
어느 날은 퇴근하고 돌아와 보니 아내의 얼굴이 많이시무룩해 보였다. 가뜩이나 아침부터 비가 많이 내려서 날씨도 우중충한 데다가누굴 만나지도 않고 홀로 집에만 있으니축 처진 모습이었다.
갑자기 걱정이 들었다. 혹시,코로나 블루인가?
남들 눈에는 그저 편하게만 보이는 재택근무의 이면이었다. (나 역시도 출근하지 않는 아내를 부러워하곤 했으니까.)
함께 저녁을 먹고 나서 아내에게 카페에 가자고 말했다.떨떠름한 말투로 돌아온 아내의 대답은"갑자기?"였다. 하지만,마냥 싫지만은 않은 기색이었다
우리는 옷을 갈아입은 뒤 차를 타고 카페로 향했다. 편한 옷 대신 이쁜 옷으로 갈아입고 드라이브를 하는 것만으로도 아내는 텐션이 올라오는 듯했다. 커피를 마시며 잡담을 나눈 뒤 집에 다시 돌아와서는넷플릭스에서 공포 영화를 보았다. 결말이 좀 아쉬웠지만, 오랜만에 무서운 영화를 보니 아내도 스트레스가 좀 풀린다고 했다.
창문이 닫혀있는집 안에서 답답한 건 공기만이 아니다. 그동안 아내 역시도 집에만 있으니 속이 꽉 막힌 듯 답답했던 모양이다. 그날 잠들기 전 아내의 환해진 얼굴을 보니 사람도 가끔씩은 이렇게 환기가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