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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속 Jul 10. 2024

자아성찰의 시간

  그녀는 남들에게 싫은 소리를 못하고 주변 눈치를 많이 보는 성격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녀 주변엔 늘 똥파리가 꼬였다. 누구보다 사람이 좋았지만 무엇보다 사람이 혐오스러웠다.

  그녀는 굉장히 예민한 성격으로 겉보기엔 그저 소심하고 내성적으로 보이지만 그건 말수가 없어서 그러해 보이는 것뿐, 속으로는 상대를 꿰뚫어 보는 통찰력이 남달랐다. 말이 아닌 눈빛과 표정, 행동으로 상대의 기분과 의사를 쉽게 알아차렸다. 그래서 누군가에겐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척척하는 센스 있는 인물이기도 했고 또 다른 누군가에겐 의뭉스러운 뭔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사람이기도 했다.

  그녀의 생일에 친한 친구를 만나 식사를 하는데 친구가 아이라이너를 선물로 줬다. 그녀는 평생 아이라이너를 써본 적이 없었는데 뭐 한 번 써보라고 선물해 줬구나 하며 화장품을 뜯으려는데 친구가 급하게 내가 뜯어줄게 하며 낚아채는 것이 아닌가. 그 친구는 공주과라 늘 대우만 받으려 해서 피곤했는데 이상했다. 그리곤 친구가 뜯어준 아이라이너를 딱 받는 순간 그녀는 그만 알아차리고 말았다. 이미 뜯어본 화장품이란 걸. 자기가 선물로 받았는지 직접 샀는지까진 모르겠지만 마음에 안 들어 그녀에게 준 물건임엔 분명했다. 그녀는 친구와의 관계를 생각해 그때는 모르는 척 넘어갔다.

  후에 자신에게 쓰레기를 선물로 준 친구의 생일에 그녀도 똑같이 자기가 하려 샀지만 마음에 안 드는 귀걸이를 예쁘게 포장해 선물했다. 유행 지난 귀걸이에 동공이 흔들리던 친구를 보며 그녀는 짜릿함을 느꼈다.

  그녀는 설사 좋아하는 사람일지라도 오분이상 함께 있으면 진이 빠졌다. 가짜를 연기하는데 온 힘을 써서 그랬다고. 신경질적이고 예민한 진짜 모습을 숨기고 배려심과 착함을 연기하는데 지쳐버렸다. 그녀가 타인에게 그토록 보이길 원한 수더분하고 둥글둥글한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만만하게 보인다는 걸 비로소 깨달았다.

  그녀의 환경이 풍족해지자 주변인들은 더욱 뻔뻔해졌다. 그녀가 축하받거나 챙김을 받아야 할 땐 나 몰라라 하다가 자신의 생일이거나 자녀가 돌잔치를 한다거나 초등학교 입학 같은 정당한 수금의 시기가 오면 집요하게 그녀를 만나고자 했다.

  초대를 안 했는데 그녀가 보고 싶다고 먼 길을 찾아온 주변인을 감히 내치지 못하고 밥값, 디저트값, 기념품값, 자녀의 용돈까지 울며 겨자 먹기로 챙기던 그녀였다. 상대는 그녀를 보러 쓴 교통비의 족히 열 배 이상의 이득을 야무지게 챙긴 언제나 그렇듯 입을  닦았다. 그녀는 얄팍한 수법에 수년동안 당하며 여유 있는 내가 더 쓰는 게 맞다고 정신 승리를 했지만 피를 하도 빨리다 보니 염치없는 이들이 징글징글해졌다.

  다행히 타고난 호구는 아닌지라 네댓  당하면 그녀는 지갑에 자물쇠를 채웠다. 늘 한껏 베풀고 선물을 주던 그녀가 인색해지자 달라붙던 이들도 이상함을 감지하고 서먹해졌.

  하원 셔틀을 기다리며 홀로 자아성찰 중이던 그녀의 어깨를 누군가 톡톡 두드렸다. 놀라 돌아보니 병원 빈대의 아들을 서너 번 데려다 케어한 도준맘이 우두커니 서있었다. 그녀는 도준맘의 피폐해진 표정을 보곤 드디어 때가 왔음을 직감한 채 그를 향해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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