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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생활이 즐거운 비혼 주의자

여기도 텃세가 있구나 편

by 이지속

지속도 이혼하자 내지르곤 깜짝 놀랐다. 솔직히 기선제압용 멘트였다. 갑의 연애를 해왔기에 결혼 후에도 지속은 자신이 갑일 줄 알았다. 연애 시절 병히는 지속에게 벌벌 떨었다. 식당이면 식당 영화면 영화 모든 예약과 데이트 코스를 짜는 건 병히의 몫이었다. 병히가 열심히 서치한 장소에서 먹고 쉬고 구경하며 지속은 데이트에 별점을 매겼다. 별당 아씨를 시는 돌쇠가 따로 없었다. 그래서 지속은 결혼 후 종년으로 격하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특히나 지속을 편하게 여기는 병히에게 실망했는데 신혼집에 들어서자마자 병히가 방귀를 부앙 뀌는 것이 아닌가! 지속은 둔탁한 소리에 누가 현관문을 발로 찬 줄 알고 뒤를 돌아봤다. 4년간의 연애 동안 방귀는 트지 않았는데 처음 들어보는 병히의 방귀 소리에 지속은 병히도 사람이 맞구나 싶다가 순간 욱해서 너도 당해봐라 하고 바로 맞방귀로 응수했다. 자신의 방귀소리보다 훨씬 더 큰 소리에 놀라 지속을 바라보던 병히. 그렇게 갓 결혼한 신혼부부는 방귀를 트고 브라더가 됐다.

부창부수, 병히가 방귀를 뀌고 부창을 외치면 지속은 맞방귀를 뀌며 부수를 외쳤다. 그리곤 둘 다 서로를 어이없어하며 웃었다. 그런 소소한 장난들은 결혼생활의 윤활유가 되어 한 번씩 건조해 쩍쩍 갈라진 지속과 병히 사이를 촉촉하게 메우곤 했다.

돌발 발언에 크게 놀란 병히는 원래 지속의 기억 속 모습으로 돌아온 듯했다. 일단 컴퓨터 게임을 안 했고 낮에도 몇 번씩 지속에게 전화를 걸어 일상을 물었다. 주말엔 분위기 좋은 파인 다이닝으로 데이트를 가고 새벽 심야 영화도 졸면서 봤다. 지속은 완벽히 병히가 제자리로 돌아왔다고 믿었다. 그래서 아기를 갖고 싶었다. 혼자만 있는 한낮에 작고 꼼지락 거리는 생명체가 있다면 활력이 돌 것 같았다. 무엇보다 병히를 닮은 아기가 갖고 싶었다.

그러려면 임신 전 건강한 몸을 만들기 위해 지속에겐 운동이 필요했다. 결혼 후 짧은 시간 동안 지속은 몸무게가 7킬로나 불었다. 그래서 보는 사람들마다 얼굴이 좋아졌다는 소릴 했는데 순진한 지속은 피부가 좋아졌단 소린가?팩도 안 하는데 갸웃하며 사람 좋게 웃곤 했다. 혼자 심심해서 상견례 때 입었던 원피스를 입어보곤 깜짝 놀랐다. 분명 사랑스럽고 귀여운 스타일의 원피스였는데 웬 조카 옷을 뺏어 입은 육덕진 욕심 많은 아줌마가 있는 것이 아닌가. 지속은 당장 집 근처 수영센터로 갔다. 수영을 처음 배우는 지속에게 스케줄 선택권은 없었다. 오직 아침 7시 반 수업만 가능해서 신청해놓고 의지박약인데 될까 의심하면서도 할인율 때문에 6개 회원권을 끊었다.

전업주부 지속은 출근하는 병히보다도 일찍 집을 나섰다. 설레는 마음으로 수영센터로 들어서는 지속은 그때까지만 해도 아무것도 몰랐다. 들어는 봤는가? 악명 높은 수영 학원 새벽반 할줌마의 위엄을. 수년간 매일 아침마다 다진 수영실력으로 한 마리의 돌고래가 따로 없으나 자신의 지정 샤워기와 지정 드라이기, 지정 라인이 있다는 사실을. 만약 멋도 모르는 지속 같은 풋내기가 아무 생각 없이 할줌마 돌고래의 영역을 침범했다가는 불호령으로 멘털이 탈탈 털린다는 사실을!

지속은 까맣게 몰랐다. 앞으로 자신에게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그리고 이제 전업주부가 되었기에 더 이상 사회생활로 인한 지긋지긋한 인간관계의 굴레에서 벗어났다 믿었는데 그 믿음은 수영장에서 보드에 매달려 열심히 뒷발질을 킥킥하던 지속의 얼굴에 니킥을 날리고 말았다.

아니, 수영센터에 도대체 텃세가 왜 있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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