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는 원래 이렇게 낳나요?
불쾌했던 출산썰 편
지속은 원이를 부러 여자 산부인과 의사를 찾아가서 낳았다. 진료를 봤던 의사는 분만과 후처치까지 신경 써서 봐주어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 좀 무뚝뚝하고 늘 무표정했는데 태아 시절 원이의 머리 크기가 4주를 앞서 한걱정을 했었다. 지속은 의사쌤에게 그럼 머리 크기는 계속 4주를 앞서 크냐 물었고 의사는 그렇다고 했다. 순간 속상한 마음에 남편에게 니 대가리를 닮아서 애기가 머리만 크다고 말했는데 그 소리에 무뚝뚝했던 의사쌤의 웃음보가 터지고 말았다. 쌤은 지속과 병히의 눈치를 보며 웃음을 참느라 힘들어 보였고 지속이 편히 웃으시라 말하자 깔깔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그 뒤로 벽이 느껴지던 쌤이 친근해졌고 출산을 마음 편히 할 수 있었다. 최경주쌤은 참 고마운 분으로 지속의 기억 속에 남았다.
둘째를 가진 지속은 기억 속 쌤을 찾아 같은 병원을 갔는데 쌤은 병원을 떠나고 없었다. 아쉬운 대로 그 병원의 고인물 여의사를 지정해 진료를 봤다. 친절하고 말이 많은 의사였다. 유명 부부동반 예능프로에 한 조연배우의 아내를 진료하는 모습으로 방송을 탔는데 그래서 그런가 인기가 많아 갈 때마다 한 시간은 우습게 기다렸다. 실력이 있으니 그런 거겠지? 지속은 그렇게 믿었다.
출산이 다가오자 의사는 전치태반 3기로 자칫 자연분만을 시도하다 잘못되면 출혈량이 많아 수혈을 받게 될 수도 있다고 게다가 코로나로 보유 혈액이 부족하다며 난감해했다. 지속이 어쩌는 게 좋을지 묻자 안전한 건 수술이라고 말해 지속은 고민 없이 제왕절개로 출산 방법을 정했다.
대망의 수술 날, 지속은 아침부터 수술받을 준비를 했다. 열 시에 호출을 해서 올라갔는데 수술대에 누운 지속을 간호사가 전화를 받고 오더니 다시 침대로 가라고 했다. 무슨 영문인지 묻자 앞 수술이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대기를 하라고 했다. 지속은 수술대 위에서 주섬주섬 내려와 바로 옆 커튼이 쳐진 침대로 자리를 옮겼다. 그때 흑인 임산부가 통역을 데리고 들어섰다. 정기검진 때 한 번씩 보던 여자라 같은 날 출산을 한다니 반가웠다. 내 옆자리에 누우려나. 기다리는데 여자는 지속의 옆자리가 아닌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오는 가족분만실로 쏙 들어가 버렸다. 지속이 듣기로 가족분만실은 예약이 안되고 선착순 이랬는데 왜 먼저 온 지속이 아닌 흑인 여자가 가족분만실을 차지했는지 궁금했다. 간호사에게 영문을 물으니 흑인은 미군이고 병원이 미군과 협약을 맺아 특별대우를 할 수밖에 없다고. 하도 까탈을 부리는 산모라 자신들도 피곤하다고 지속의 귓가에 조용히 속삭이다 미군 산모가 부르자 쪼르르 가버렸다.
조연배우의 아내 > 흑인 미군> 지속이... 푸대접의 이유를 확인하곤 기분이 불쾌했는데 예민하게 굴지 말자고 스스로를 달랬다.
그렇게 두 시간 반을 멍하니 홀로 기다리던 지속은 수술실로 들어섰다. 속옷도 입지 않고 홀겹의 수술복을 입고 있던 지속의 다리 아래에 웬 처음 보는 남자가 자리 잡고 앉았다. 지속은 하의를 탈의한 채였다. 이게 도대체 뭐야, 저 남자는 누구야? 지속은 그동안 진료를 받았던 여의사는 어디 갔냐고 물었다. 곧 온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잠시 뒤 또 다른 마취과 남자 의사가 담배냄새를 폴폴 풍기며 지속의 머리 위편에 앉았다. 가슴에 간호사가 붙여준 심박 장치가 있었는데 갑자기 그 마취과 의사가 지속의 옷 속으로 손을 쑥 넣더니 누가 이렇게 붙였냐며 굳이 뗐다 다시 붙였는데 뭐가 달라진 건지 모르겠어서 정말 불쾌했다. 심지어 지속의 가슴 바로 아래 갈빗살을 꼬집으며 감각이 있는지 물었는데 진짜 짜증이 났다.
위에서 지속의 가슴을 훤히 보던 늙은 마취과 의사와 아래에서 홀딱 벗은 지속을 보던 남자 의사. 지속은 이건 폭력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해 눈물이 났다. 의료행위에 남자 여자가 어딨겠는가.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다 싶었다. 인간적인 배려가 없었다. 지속은 자신이 정육점에 걸린 곧 난도질 당할 거대한 고깃덩어리가 된 기분이었다. 수술 전 남편과 지속의 직업을 적는 란이 있었는데 전업주부라 적었더니 별 볼 일 없어 이런 대우를 받는 건가 없던 자격지심까지 생겼다.
그때 급하게 여의사가 들어왔다. 그리곤 뭔가 배가 출렁이는 느낌이 나더니 여의사가 아기를 꺼내 보여줬다. 진이였다. 그렇게 진이를 만났다. 처치를 위해 지속은 깊은 잠에 빠졌다 깨서 언뜻 보니 여의사는 사라지고 그 젊은 남자 의사가 열심히 후처치를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과연 조연배우의 아내도 이런 대우를 받았을지 궁금했다.
병원 지하에 엘리베이터 옆에 사진이 붙어있었다. 조연배우와 그의 아내, 그리고 여의사가 활짝 웃고 있는 사진이었다. 사진 아래엔 배우 모모 씨의 득남을 축하한다는 글귀가 적혀있었다. 지속과 병히의 낮은 사회적 위치가 진이와 만나는 성스러운 순간을 치욕적으로 만든 것이 아닐까? 지속은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지속은 성추행으로 마취과 의사를 고발하고 싶었다. 마음만 굴뚝같았고 차마 하진 못했다. 고소고발이 어디 쉬운 가.
진이를 보러 신생아실로 갔는데 유일하게 모자를 쓰고 있는 아기가 있었다. 그런가 보다 했는데 알고 보니 제왕절개 수술을 하다 의사가 메스로 아기의 관자놀이를 그어버린 끔찍한 사건의 피해자였다. 지속은 그저 진이가 무사한 것에 무한한 감사함을 느꼈다. 그렇기에 지속이 당한 치욕과 수치는 견딜만한 우스운 것이 되었다.
여의사는 두 시간을 넘게 지속을 기다리게 한 것이 맘에 걸렸는지 후에 미안하다는 사과의 인사를 전했다. 그리고 제왕절개 중 다친 아기를 언급하며 자신은 절대로 칼날로 자궁을 절개하지 않고 칼등을 쓴다며 묻지도 않은 소릴 나불거렸다. 한참을 가해 의사가 당직도 아닌데 새벽 한시에 불려 나가 직접 수술까지 했는데 다친 아기 부모가 고액의 보상금을 병원에 청구하고 지역 신문에 제보해 기사까지 썼다며 진짜 기자도 아닌 사이비가 쓴 기사로 병원엔 타격이 없다는 선 넘는 소리까지 했다. 백날 고소해봤자 일반인은 이 병원 법무팀을 이길 수 없다며 헛수고라는 말까지 지속에게 했는데 지속은 그녀의 말에 무력감을 느끼고 병원이 자신에게 저지른 무자비한 일을 가슴에 묻기로 했다.
지속은 혹여나 나중에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된다면 여의사와 핑크색으로 촌스럽게 외벽을 꾸민 병원의 만행을 세상에 알려 골로 보내주겠다고 다짐했다.(대표원장은 맥가이버 머리를 한 남자로 따로 있음)
이제라도 유명해지기 위해 연기를 배워 제2의 라미란을 노려봐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