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후 육아와 살림에 치인 지속은 그저 애엄마였을 뿐 여자가 아니었다. 병히도 애엄마 지속을 실감하게 만든 대표인물 중 하나였다. 연애시절 지속이만 보면 만지고 싶어 안달이었던 병히는 결혼 후 지속이 홀딱 벗고 돌아다니면 으악 비명을 지르며 눈을 가렸다. 망할 놈, 나도 씻으려고 벗은거거든. 어이가 없었다. 그래 이런 식으로 나오시겠다. 지속은 12킬로를 빼며 다이어트에 성공했어도 살이 좀 빠진 애엄마였을 뿐, 결혼 전 싱그럽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설렘이 뭔가요? 설레임 아이스크림은 좋아합니다만. 지속에게 지치는 일상 속 무덤덤한 지루함만 있을 뿐이었다. 이래서 사람들이 불륜을 저지르나? 지속은 이해가 가면서도 공감은 되지 않았다. 불륜은 영혼의 살인, 병히 심장에 칼을 꽂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다. 솔직히 그놈이 그놈 아닌가. 남자라는 성별에 학을 뗐기에 실사로 존재해 만지고 대화 나눌 수 있는 남자에겐 관심이 없었다. 그렇다면 이런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하는 건 연예인뿐이었다. 마음껏 망상의 나래를 펼치며 잊고 살았던 설렘을 느낄 수 있는 존재.
지속은 코로나에 걸린 병히가 격리소로 떠나고 두 딸을 열흘간 홀로 돌봐야 하는 극한 상황에 내몰렸다. 날벼락이었지만 그동안 병히가 있으나마나 한 존재로 과부처럼 지냈기에 지속은 괜찮았다. 두 딸을 일찍 재우고 넥플릭스로 헛헛한 마음을 채웠다. 그랬다. 지속은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를 시작으로 19금만 봤다.
병히랑은 눈치가 보여 못 보던 명작들을 밤 마다보며 고단한 독박 육아를 위로받았다. 특히 '365일'은 오우, 남자 주인공이 뜨거웠다. (여기까지만 설명하겠음 더 하면 큰일 남) 그렇게 병히가 없어도 눈이 즐거운 나날을 보냈는데 다음날 영상통화를 하는 병히의 표정이 어두웠다. 걱정되어 많이 아프냐 물었더니,
"남편은 코로나로 앓아누웠는데 넌 야한 것만 찾아봤더라 재밌었냐? 좋았냐?"
지속은 놀라 동공까지 흔들렸다. 말을 버벅거리며 호기심에 그냥 틀어본 거라고 어떻게 알았냐 물었더니, 병히 계정으로 봐서 시청한 프로그램 목록이 쫙 뜬다고. 지속은 그 사실을 몰랐다.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애를 둘이나 만든 사이지만 쪽팔렸다. 지속이 민망해하며 웃자 병히도 웃었다. 우리 마누라가 진짜 아줌마가 다 됐다며 껄껄댔다.
격리를 마친 병히가 돌아온 후 더 이상 넥플릭스19금 영화를 보지 못하던 지속은 궁여지책으로 드라마 해방 일지를 봤다. 그렇게 지속의 구씨앓이가 시작됐다. 구찌보다 구씨였다. 호빠 출신 마담이라니 현실이라면 좋아할 리 없는 인물이었다. 여자들 공사 쳐서 등쳐 먹고사는 막장인생 아니던가. 허나 그런 구씨를 연기하는 손석구씨는 달랐다. 지적인 섹시미가 있었다. 목소리도 좋았다. 지속이 좋아하는걸 다 가진 남자였다. 지속은 이십 년 전 겨울연가 속 배용준에 열광하는 일본 아줌마 팬들을 비로소 이해했다. 왜 그녀들이 한국까지 와서 욘사마를 외쳤는지. 배용준이 그녀들의 헛헛한 마음을 어떻게 채웠는지도. 지속은 손석구씨로 가득 차 충만해졌다. 지속은 놓친 그의 작품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찾아볼수록 그가 더 좋아졌다.
퇴근한 병히가 저녁을 먹다 말고 지속에게 물었다.
"손석구가 그렇게 좋냐? 또 뭘 찾아본 거야?"
넥플릭스 검색창에서 손석구를 찾아봤는데 그것도 흔적이 남았나? 지속은 그냥 심심해서 검색해봤다며 말을 돌렸다. 그리곤 더는 묻지 않는 병히에게 손석구가 잘생긴 건 아니라고 마음에도 없는 소릴했는데 믿지 않는 눈치였다.
유부녀 지속은 연예인을 좋아하면서 남편에게 미안함을 느꼈다. 그러고 보니 지속이 손석구씨에게 홀려 입을 벌리고 드라마를 볼 때 그런 지속의 옆모습을 말없이 바라보던 병히였다. 넋을 잃은 모습을 사진까지 찍어 놀렸는데 놀리는 병히의 쓸쓸한 눈빛을 애써 외면하던 지속이었다. 손석구씨가 주연인 범죄도시 2를 보러 가자고 했는데 병히가 싫다고 했다. 지속은 그럼 혼자 보겠다며 혼자 가서 영화를 보고 왔다. 악당을 연기한 손석구씨는 역시나 섹시했다.
톱스타가 된 손석구씨는 티브이 광고에도 나왔다. 광고 속 모습이 정말 멋졌다. 지속의 구씨앓이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그런 지속을 말없이 지켜보는 병히도 여전했다. 지속은 도둑이 제 발 저린 듯 병히에게 말했다.
"손석구씨가 백 명 있어도 병히 너랑은 안 바꿔."
병히는 뻥치지 말라면서도 입꼬리는 올라가 있었다. 아차차, 손석구씨는 오직 한 명이지 않은가. 일대일 맞교환은 가능할 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