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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용사가 내게 말을 걸지 않는다

by 유이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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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2년째 다니고 있는 미용실이 있다. 우연히 네이버 검색을 통해서 찾아갔던 곳인데 솜씨도 나쁘지 않고 미용실 분위기도 괜찮았다. 그런데 이 미용사가 당시에 처음 입봉 한 상태였는지 나에게 문자를 보내왔다.


"유이언 고객님, 반갑습니다. ㅇㅇ 디자이너입니다. 다음에 다시 꼭 뵐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단체문자였겠지만 언뜻 보아도 나보다 열댓 살은 어려 보이는 청년의 간절함이 느껴져서 3주 후 다시 그 미용실에 찾아갔다. 두 번째 방문에서도 준수한 실력과 서비스로 퍽 만족을 했다. 그 후로 다른 곳에 한 눈 팔지 않고 이 미용사에게 찾아간 지 어언 2년이 넘어간다.


겉으로 보기에는 세상 수더분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감정이 요동치고 까다롭기는 또 지독하게 까다로운 내가 이 미용실만 주야장천 다니는 진짜 이유는 사실 따로 있었다.


미용사가 내게 말을 걸지 않아서.


가벼운 인사 후 내가 원하는 스타일에 대해 물어본 후 시술이 들어가고, 커트가 끝나면 스타일링 방법을 알려준 후 결제, 그리고 서로 안녕히 계시라고 인사를 건네고 나오는 아주 간단명료하고 깔끔한 루틴이다.


이 미용사도 나와 같은 내향인인 것인지 아니면 내향인인 나의 성격을 어찌 잘 꿰뚫어 본 것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만 내 신상정보와 근황에 대해서 일절 묻지 않는 이 미용사가 나는 너무 편하다.


나와 밀접한 상대이거나 업무적으로 서로 간 대화가 불가피한 상대가 아니라면 아무도 내게 말을 걸어주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실 위와 같은 상황이 아니라면 불특정 다수와 면대면으로 이야기를 나눌 일은 사실 크게 없긴 한데 내게는 3주마다 거쳐야 하는 억지 스몰토크의 현장이 바로 미용실에 가는 일이었다.


마음에 드는 실력을 가진 미용사도 없거니와 어떤 미용실을 가도 내 나이, 사는 곳, 직업, 더 나아가서 결혼 여부까지 물어대니 내 목에 둘러진 커트보를 집어던지고 '잠시만요' 하고 냅다 집으로 튀고 싶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또 기분 나쁜 티를 내거나 매몰차게 대답을 안 하는 성격은 아닌지라 사회생활할 때 쓰는 적절한 친절과 눈웃음으로 질문을 받는 족족 대답해야 했으니 이것은 내가 머리를 자르며 휴식을 하는 시간인 것인지 돈을 주고 시련을 사는 것인지 모르겠다 싶었던 적도 있다.


이토록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을 버거워하면서도 나는 사람들에게 퍽 친절하다. 웃음을 띄우고 말하는 것은 직업병인지 뭔지 인이 박히게 습관이 되어있고 말투 또한 나긋한 편이다. 그래서 눈치가 없는 사람들은 나를 MBTI 중 E(외향형)으로 보거나 I가 섞인 E로 착각한다. 사람들이 내게 말을 거는 것은 싫지만 또 그들에게 무례하게 대하는 것은 더 싫기에 가짜 친절로 대하는 법을 배운 것 같다. 그런데 사실 0.0000001초라도 대화 상대와 눈을 덜 맞추고 싶어서 인사를 하는 도중에 아이 컨택이 되고 슬쩍 동공을 돌려 눈을 피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제발, 이젠 그만해 주세요'라는 심정으로.


집에 오면 나는 실연당한 남자처럼 앉아 주저앉은 광대 아래로 썩어 있는 내 표정을 발견하곤 한다. 하도 사회생활을 하면서 웃어대서 이제는 집에 와도 얼굴에 경련이 나지도 않는다. 사회 초년생 때는 실제로 광대 주위가 얼얼했다.


누군가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고 나에 대해 알고 싶다는 것은 사실 참 감사한 일이다. 특히 대중의 관심을 받아야 더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내 직업상 더 그렇다. 그래서 나의 이런 모순적인 모습이 나도 혼란스럽기 짝이 없다. 나를 더 알려서 내 존재를 세상에 알리고 싶은 동시에 아무도 나를 몰랐으면 좋겠다. 혼자이면 외로우면서 막상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땐 어서 집에 가고 싶다. 집에 꿀 발라 놓은 것도 아닌데. 모든 하루는 기승전 귀가다. 빨리 집에 가야지, 빨리 집에 가야지. 내 마음을 나도 모르겠다. 서른일곱을 먹어도 인생이 혼란스러운 것은 스물 일곱 때랑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4편에서 이어집니다

2025년 02월 23일 (일요일)

'내성적인 게 죄는 아니잖아' - 유이언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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